【송괘(訟卦) 소모적인 감정싸움과의 이별
처음 운전대를 잡았던 날, 운전석에서 욕을 내뱉던 아버지를 이해했다. 운전은 분노를 학습하는 자리다. 정속으로 달리던 차 앞으로 갑자기 끼어드는 한 대의 차량은, 고요한 수면을 단숨에 뒤흔드는 파문이 된다.
삶도 비슷하다. 조용히 살고자 해도 어디선가 갑작스레 들이치는 상황에 얼굴을 붉힌다. 인간 세계에서 분노를 완전히 벗어던진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고금의 사유는 인간에게 한 목소리로 분노와 거리 두기를 요구했다. 『대학(大學)』은 “몸에 성내는 바가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한다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라 경계한다. 감정이 판단을 잠식하는 순간, 이성의 균형축은 쉽게 무너진다는 것.
『주역』 또한 여섯 번째 괘인 송괘(訟卦)를 통해 분쟁의 구조를 드러낸다. 송(訟)이란 단어는 재판과 다툼을 뜻하지만, 괘의 요지는 정면충돌이 아닌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물러남’에 가깝다. 감정이 팽창하는 순간일수록 물러섬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건, 분노의 순간이 인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연도 끝없는 충돌로 가득하다. 나뭇가지를 꺾는 폭설, 약자를 포식하는 강자, 생존을 위한 군집 간의 긴장.
벌의 세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먹을거리가 줄어드는 때가 되면 벌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벌통의 꿀 냄새를 탐한다. 꽃이 사라진 환경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구책이다.
훔치려는 자의 발걸음이 다른 벌통의 입구에 닿는 순간, 싸움은 필연처럼 시작된다. 처음 그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경악했다. 서로의 몸에 벌침이 갈마들고, 날개가 뜯기고, 잘린 머리가 땅에 나뒹군다. 격렬한 생존의 결말은 잔혹했다.
내 시선이 달라진 건 두 번째 해부터였다. 벌의 싸움은 이상할 만큼 ‘깨끗하게’ 끝났다. 인간의 싸움처럼 감정의 여파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분노도, 후폭풍도 없다. 복수라는 개념은 더더욱 없다. 싸움의 동기는 단 두 가지, 생존과 효율.
모든 싸움은 입구에서 시작해 입구에서 끝내 버린다. 침입을 막아냈다면 그만이고, 침투에 성공했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추격도, 보복도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소모를 아는 것. 벌에게 중요한 건 싸움 자체가 아니라 꿀을 모으고, 애벌레를 기르고, 군집을 유지하는 일이다. 생존의 비용을 계산하는 방식이 인간보다 훨씬 명확하지 않은가.
이 지점에서 다시 송괘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송괘가 말하는 회피는 비겁함이 아니다. 감정에 끌려 분쟁을 확대하면 오히려 자신의 기반을 허문다는 구조적 이해다.
사실 상대의 칼날보다 무서운 건 결국 자신의 내면에서 솟는 분노의 화살이다. 세네카가 “분노는 주인의 명령조차 듣지 않는 무기”라 한 이유다. 휘두르는 순간 자신을 찌를 수 있는 무기. 인간은 이 무기를 들고 더 깊이 상처 입곤 한다.
벌의 분쟁은 정해진 선을 넘지 않지만, 인간의 분쟁은 끝난 뒤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시 벌어진다. 외부의 사건은 이미 폐기되었는데, 내부의 송사(訟事)는 되레 길어지고 복잡해진다. 인간이 벌과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 끝난 감정을 마음에서 되감으며 밤잠을 잃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화를 내지 않는 법’이 아니라 ‘선을 넘지 않는 마음’ 일지도 모른다. 분노를 억압하기보다,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일. 감정의 요구가 밟은 욕구의 지점을 살펴야 한다. 그것의 발길은 생존으로 향했는가, 소모로 달리는가.
올해는 말벌까지 기승이었다. 말벌 애벌레는 단백질로 성장한다. 단백질을 찾아야 하는 말벌에게 양봉장은 자연 양식장에 가깝다. 그들이 일벌을 납치해 잘린 몸을 애벌레의 먹이로 가져가는 장면은 잔혹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꿀벌은 말벌의 집을 찾아 공격하지 않는다. 복수의 효용을 몰라서가 아니라, 생존의 효율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꿀벌에게 분쟁의 상한선은 방어에서 끝난다.
인간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갈등은 끊이지 않고, 분노는 늘 빈틈을 노린다. 끝없는 혼란 속에 우리는 생존해야 하고 역사를 이어야 한다.
분노가 치밀 때 생존의 상한선을 잡아 줄 무언가 필요하지 않은가. 벌의 방식과 송괘의 교훈을 떠올리는 일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싸움이 꽃을 향한 과정이 아니라면 이미 선을 넘었다는 신호다. 그때는 조용히 날개를 접고 이로운 방향을 모색할 때다.
벌통 앞의 짧은 전투가 끝나면 벌은 곧바로 생존의 삶으로 돌아간다. 불타듯 일어난 감정의 틈이 보일 때, 우리 또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