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사공은 하나로 족하다

【師卦】 중심축을 세우라는 자연의 교훈

by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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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정치의 근본을 덕(德)이라 말하며 이를 북극성에 비유했다. 굳건한 축 하나가 세워지면, 별들은 축을 따라 돈다는 의미다. 리더십을 권위나 과시가 아닌 중심의 구축이라 본 셈이다. 정좌한 별 하나가 우주의 질서를 잡는 방식이 간결하고 묵직하다.


『주역(周易)』 사괘(師卦)의 경고도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군대에서 여러 사람이 주장하면 흉하다 [六三, 師或輿尸, 凶.]”는 경고가 눈에 띈다. 떠드는 사람은 많은데 방향은 없고 각자 말이 가지처럼 뻗어 혼란을 불러오는 상황. 중심축의 부재가 만든 붕괴의 현장이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나는 땀나는 경험을 떠올린다. 여왕벌이 사라진 벌통을 마주한 순간이다. 겉으로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벌들의 날갯짓이 평소보다 활발해 보이긴 했다. 내부를 열어보았을 때 공기가 다름을 느꼈다. 조밀하게 이어지던 움직임이 흔들리고, 일벌의 꼬리가 불안정하게 떨렸다. 구심점을 잃은 자들의 혼선이다.


여왕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양봉업자의 실수, 기상 이변, 내부 충돌 등 각종 이유로 여왕벌은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다. 여왕벌이 사라지는 순간 벌통의 심장이 비어버린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 여왕벌은 리더가 아니라 중심축에 가깝다.


여왕벌은 페로몬으로 군집을 하나로 묶는다. ‘묶는다’란 말에 결집과 효율이 숨었다. 페로몬은 암컷인 일벌의 난소를 억제하고 ‘알 낳는 존재는 여왕벌 하나’라는 생리적 합의를 만든다. 덕분에 일벌은 산란의 의무에서 벗어나 맡은 일에 집중한다. 단순해 보이는 생리적 합의가 벌통 전체의 질서를 구축한다.


페로몬이 사라지는 순간 벌통 내부에 혼란이 도래하는 까닭이다. 질서가 무너지고, 역할의 경계선이 지워진다.


여왕이 사라진 이후 벌통에는 ‘골든 타임’이 적용된다. 벌들이 자체적으로 여왕을 양육하지 못했다면, 양봉인이 외부에서 여왕을 투입해야 한다. 중심축을 다시 세우기 위한 절체절명의 시기. 골든 타임은 2주 정도다. 이 시기를 놓치면 페로몬 잔향은 거의 사라지고, 미래를 위한 본능이 일벌의 몸을 두드린다. 억눌렸던 난소가 다시 부풀고, 일벌은 산란(産卵)을 시작한다.


일벌이 산란하는 순간 벌통은 되돌릴 수 없는 길로 접어든다. 일벌이 낳는 알은 모두 수정되지 않아 수벌만 태어나니 군집의 균형은 급격히 무너진다. 더구나 일벌은 정밀한 산란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한 방에 여러 알을 뒤섞어 두고, 애벌레 방과 꿀 저장고의 구분을 흐트러뜨리기 일쑤다.


질서와 구조가 무너지는 과정은 놀랄 만큼 빠르다. 오랜 기간 쌓은 건축물도 기초가 무너지면 한순간에 붕괴하는 것처럼. 일벌이 갸륵하게 자구책을 모색했으나, 들여놓은 발은 붕괴의 길을 밟을 뿐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양봉가에게 남은 선택이 둘뿐이다. 벌통을 싹 비워 폐기하거나, 그나마 살아남은 일벌을 다른 벌통에 넣어주는 것. 생명을 살린다는 점에서 후자가 고무적이지만, 역시 쉽지 않다.


산란을 경험한 일벌은 다른 벌 사회에 쉽사리 수용될 수 없다. 방종했던 개체가 벌 사회를 흔들 것이란 사실을 벌들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물론 여왕벌이 사라진 일벌의 절박한 심정이야 누가 모르랴. 다만 공동체 존속이란 명분은 공감을 외면하게 만든다.


이런 부류의 혼란은 인간 사회에도 분분히 일어난다. 리더가 휴직하고 보고라인이 갈라져 혼선이 생기거나 책임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공들의 난립으로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기도 한다. 회의에서 모두가 그럴듯한 의견을 내지만, 지나치게 많은 의견에 결정이 늦어지는 일도 있다. 리더십의 부재다.


결국 리더십은 위계의 높낮이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잡는 작업에 가깝다. 중심을 세우지 못한 조직은 최선을 지향하나 자멸의 길로 들어선다.


개인의 삶도 동일한 구조다. 개개의 사람도 삶을 이끌어가는 리더다. 중심 잡기가 어렵다는 점을 누구나 공감하는 이유다. 삶의 순간에 끼어드는 타인의 말, 불필요한 비교, 순간의 감정이 일벌 산란처럼 솟구쳐 마음의 질서를 교란한다. 교란당한 삶은 소란하기 짝이 없다. 발걸음이 바쁜데 마음이 텅 비고, 움직임은 요란하나 목적지는 흐릿하다. 방향을 잃은 군중처럼 주관 없는 방황의 막이 오른다.


삶에도 여왕벌의 페로몬에 해당하는 요소가 있다. 나만의 원칙, 굽히지 않는 신념, 그리고 절제와 방향감각 같은 것들. 내적 중심이 굳건히 자리해야 비로소 삶의 순간이 온전히 나에게 귀속된다.


『주역』 사괘(師卦)를 해석한 중국 북송 유학자 정이천이 “둘이나 셋에 맡긴다면 어찌 성공하겠는가 [倚付二三, 安能成功]”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성공의 단맛을 볼 수 있다는 것. 군집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적용되는 원리다.


우리는 고요한 호수 안에 살지 않는다. 고요한 마음으로 세상에 발을 딛고 섰지만, 사방에서 바람이 불고 곳곳에서 소음이 빗발친다. 순식간에 고요가 깨지고 혼잡이 들어선다. 누군가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내적인 풍요와 중심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이유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가슴 속 여왕벌의 존재가 굳건하냐고. 벌통을 살피듯 내면을 열면 종종 여왕벌이 사라져 마음이 요동친다. 새 여왕을 세워야 할 시기다. 내 마음의 양봉업자는 없으니 스스로 여왕벌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면 단단한 의지도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시간은 무엇이든 무르고 성글게 만든다. 때때로 손을 써 내면의 축을 손봐야 하는 이유다. 내면의 축이 사라지면 의지도 감정의 불꽃처럼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의지를 가지라”는 구호가 때로 공허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중심 없는 의지는 힘을 잃고 만다.


결국 삶을 지탱하는 힘은 의지보다 중심이다. 그리고 중심을 지키는 일은, 늘 조용한 내면의 검토에서 시작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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