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꿀벌관계론

내면을 살피는 관계의 법칙

by 이루리


영화 <스테이션 에이전트 (Station Agent)>의 주인공 ‘핀’은 난쟁이다. 세상이 그에게 쏟은 건 각종 왜곡된 시선들. 사람의 시선이 무서웠던 그는 죽은 친구가 물려준 시골 마을로 이주한다. 고요하게 살고자 하나 자신의 삶에 침투하는 핫도그 트럭 사장 조와 상처를 안고 살던 화가 올리비아. 핀은 열성적으로 선을 긋지만 쉽지 않다. 조와 올리비아는 그를 홀로 둘 생각이 없었다.


<스테이션 에이전트 (Station Agent)>는 인간 존재의 모순적 진실을 건드린다. 때로 홀로 있고 싶지만 끝내 혼자일 수 없는 존재. 타인과 얽히기 싫지만 누구라도 연결되고 싶은 마음. 인간관계에 환멸을 토로하면서도 인간관계론을 뒤적이는 우리의 모순 아닐까.


『주역(周易)』 「비괘(比卦)」는 인간관계를 논한다. 비(比)라는 글자는 ‘친하다’는 의미를 담는데, 때로 당파를 만든다는 부정적 어감도 보인다. 공자(孔子)는 “군자란 두루 사랑하고 관계를 맺되 당파를 짓지 않는다 [君子, 周而不比]”라는 말도 남겼다. 말은 쉬운데 실행은 어렵다. 관계를 맺으면 자연스레 올라오는 치우친 감정을 어찌 숨기랴.


그래서 「비괘(比卦)」 초효(初爻, 첫 구절)를 해석한 정이천은 “사람을 사귀는 방법은 진실함과 믿음을 근본으로 삼는 일이다 [相比之道,以誠信為本]”라고 천명했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서 겉으로 친한 척하는 관계가 건강하겠냐는 날카로운 질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누가 모를까. 바야흐로 정보의 바다인 세상. 우리가 가진 관계의 지식은 깊지만 관계 맺음에 날로 서툴러지는 모양새다.


사실 모든 이들과 친할 수 없다. 만인과 친하고자 하는 욕심이 상처와 아픔을 부르는 건 아닐까. 자연의 생명체들은 상처받기보다 선택적 사귐을 지향하곤 한다. 꿀벌을 보면, 모든 꿀벌과 친하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벌통의 동일한 여왕 페로몬 지휘 아래 있는 벌끼리만 관계를 맺는다. 신뢰는 자신과 같은 부류에게만 전달된다. 세상 모든 이들과 친함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것.


관계로 시간을 쏟기보다 벌들은 자신의 임무에 정신을 기울인다. 방을 청소하고, 애벌레를 키우며, 때가 되면 몸이 닳도록 꿀을 나른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벌통을 지키다 생을 마감한다. 외적인 친밀감을 쌓기보다 일상을 축적하는 모습이 상호 신뢰를 가미한다.


인간 사회도 그렇지 않은가. 때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분주히 애쓰기보다 자신의 역할에 몰두한 사람이 결국 사람을 부르기도 한다.


사실 PR과 홍보가 만연한 세상에 고고하게 역할에 몰두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를 믿기보다 상대의 도파민에 신경 쓰고, 내면의 알맹이보다 외면의 포장에 집착한다. 소소한 성실함의 가치란 쓸데없는 일로 치부되기 일쑤다.


생각하면 벌들의 친화력은 꽤 현명해 보인다. 꿀을 찾아 헤매던 벌이 꽃을 찾았을 때, 그는 벌통으로 돌아와 춤을 춘다. 벌들의 언어다.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 자신이 찾은 꿀의 위치를 알리기 위한 것. 위치를 알린 벌은 이내 자신의 임무로 돌아간다. 혹 자신의 신호를 무시해도 괘념치 않는다. 관계란 그저 선택과 합의의 영역으로 미뤄두는 것. 그들은 자신의 내실을 우선으로 고려한다.


「비괘(比卦」를 읽다 보면, 앞서 언급한 해석자 정이천은 이런 모습이 인간에게도 필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그는 “친구를 사귀는 일도 결국 나를 다스리고 진실된 마음으로 기다리되, 친분의 여부는 타인에게 있을 뿐이니 아첨하거나 자신을 굽혀 인간관계를 구할 것은 아니다 [在朋友亦然, 修身誠意以待之, 親己與否在人而已, 不可巧言令色, 曲從苟合以求人之比己也.]”라고 일갈한다. 인간관계는 나 혼자 집착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불교에서도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을 때 열매[果]가 맺힌다고 했다. 씨앗을 들고 열매를 갈망한다고 꽃이 피지 않는다. 씨앗을 심되 좋은 흙과 알맞은 햇빛, 그리고 시기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관계도 열매와 같다. 나라는 물체를 진실하게 채워 씨앗을 심되 적절한 시기와 상호 이끌림이라는 환경을 기다려야 열매가 열린다. 때 이르거나 강제적으로 맺힌 열매는 맛과 향이 자연스러울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영화 <스테이션 에이전트 (Station Agent)>의 핀은 결국 사람 곁으로 나온다. 외적 조건에 가려진 진실한 내면을 살핀 조와 올리비아의 선택 덕분이다. 결국 인간관계란 상호 내면을 소중히 다뤄줄 수 있는 자들과의 교류다. 핀이 사람과 교분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가 내면을 소중히 가꿔왔기 때문이리라. 나의 내면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관계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정이천은 「비괘(比卦」를 해석한 다른 부분에서 “급박하게 친분을 구하는 일은 군자가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도리가 아니니 스스로 잃을 것 [汲汲以求比者, 非君子自重之道, 乃自失也.]”이라며 쐐기를 박는다. 인간관계론을 주창하며 밖으로 내달리는 우리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 아닌가.


종종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내면, 우리의 알맹이는 성실히 채워지고 있는가. 스스로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자에게 진실한 관계란 힘들다. 껍데기만 남은 나의 옆에, 사르르 불어온 바람에도 바스라지는 관계가 버티고 있을 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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