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구름만 끼었을 때

【小畜卦】날개를 접는 시간

by 이루리


몸을 감싸는 축축한 이불. 시선을 옮기면 벽면을 타고 번진 곰팡이가 무늬처럼 박혀 있고, 머리 위로 손을 뻗으면 아스피린 한 알이 잡힌다. 잠을 유도하지만 무엇도 해결하지 못하는 약. 이곳은 회복의 방이 아닌 연명의 방이다. 이상의 『날개』 속 천재는 이 공간에 박제된다. 사회적 자아가 거세된 채 날개가 접혀버린 존재. 그는 더 이상 실패하지도, 시도하지도 않는다. 보존되고 있을 뿐.

종종 『날개』를 떠올리면 숨이 가빠온다. 밖으로 터져 나와야 할 자아가 안으로 숨어버린 상태의 현현(顯現). 언어는 멎어버렸고 내면에 부패한 욕망이 가득하다. 지나치게 밀집된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도 비 한 방울 쏟지 못하는 형상. 긴장만 있을 뿐 해소가 없는 시간이다.


소설 속 이야기라며 치부한 채 이런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건만. 인간의 삶은 늘 안개를 안고 가는 길이 아닌가. 그래서 『주역(周易)』의 소축괘(小畜卦)는 “구름이 가득한데 비가 오지 않는 형세[密雲不雨]”를 하나의 정당한 국면으로 수용한다.


소축괘가 그려내는 세계도 『날개』만큼이나 답답하다. 가능성은 충분한데 현실이 움직이지 않는다. 구름은 차고 넘치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다. 리더는 위축되고, 체계는 느슨해지며, 유약한 자 홀로 세파를 버텨내야 한다. 이 시기는 단순한 무기력이란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분명 힘이 내재해 있지만 활용할 수 없는 상태. 더욱 고통스러운 이유다.


가혹한 상황에 한숨을 쉬다가도, 동도이귀(同途異歸)라는 단어에 안심한다. 세상 모든 일은 선택에 달린 법. 『날개』 속 천재가 답답함을 내부로 침잠시켰다면, 자연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자연은 이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 오히려 응축한다. 날개를 접고, 몸을 낮추며, 다음을 준비한다. 겨울을 나는 꿀벌이 그렇다.


벌통의 먹구름은 가을의 찬 바람과 함께 시작된다. 가장 먼저 변화를 감지하는 건 여왕벌. 화분의 유입이 끊기고 공기의 결이 달라지면, 여왕벌은 스스로 산란을 멈춘다. 하루 수천 개의 알을 낳던 신체 리듬을 중단하고 몸집을 줄여버린다. 쇠퇴라기보다 판단에 가깝다.


하지만 여왕벌 홀로 겨울을 지낼 순 없다. 위축된 군주가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이 지점에서 소축괘의 구조가 또렷해진다. 소축괘는 군주인 양효가 힘을 잃고 유약한 신하가 강한 이들을 제압해야 하는 형국이다.


* 추가설명: 주역은 각 효의 위치마다 정해진 역할이 있다고 보는데, 네 번째 효(소축괘의 음효)는 신하 자리이고 다섯 번째 효(소축괘 음효 바로 위의 효)는 군주의 자리다.


유약한 음효가 전체의 흐름을 붙잡는 상황이 소축괘의 매력이긴 하다. 소축(小畜)은 ‘작은 것이 큰 것을 멈추는’ 모양새다. 유약한 음효가 힘으로 양효를 이길 순 없다. 그의 무기는 신뢰와 성실이다. 소축괘의 음효는 알고 있다. 모든 문제에 돌파가 해답이 될 수 없으며, 조용한 대응이 적극적인 개입일 수 있다는 사실을.


찬 바람이 거세지면 일벌은 고요하지만 빠르게 움직인다. 사방에서 강하게 몰아치는 찬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조용한 대응에 돌입하는 자세다. 서로의 몸을 엮어 거대한 공 모양의 대열인 봉구(蜂球)를 만드는 것. 날아오르려는 개별의 욕망을 집단의 온기로 묶는 선택이다.


봉구의 중심에는 늘 여왕벌이 있다. 벌들은 비축해 둔 식량을 헐어 여왕벌부터 먹인다. 동시에 자신들은 자리를 바꾸며 순환한다. 바깥의 벌이 안으로, 안의 벌이 다시 밖으로 나간다. 고통을 분담하고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꿀벌이 날개를 접는 건 겨울에 패배를 인정하는 일이 아니다. 가장 높이 날아오를 시기를 위해 몸을 낮추는 준비에 불과하다. 준비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은 자기 확신과 상호 신뢰임을 아는 자들의 지혜다. 시간의 순환은 언젠가 겨울을 몰아낼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소축괘도 혹독한 시간이 영구적이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마지막 효에 이르면 “이미 비가 내리고 자리를 잡는다[既雨既處]”는 말이 나온다. ‘비를 가두고 빽빽하게 뭉쳤던 [密雲不雨]’ 구름이 풀리고 비가 내려 대지를 적신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새로운 흐름의 시작이다. 다시 날아오를 시간이다.


봄을 맞은 벌들이 그렇다. 믿음 하나로 혹독한 겨울을 통과한 벌들은 다시 알을 낳고, 꿀을 채워 나간다. 생명의 리듬이 재개된다. 물론 다시 장마가 오고 꽃은 지며 또 다른 겨울이 올 것이다.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날아야 할 때 날고, 접어야 할 때 접을 뿐.


사실 벌 뿐 아니라 누구나 소축괘의 시간을 만난다. 능력은 충분한데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시기. 그리고 조직의 중심이 흔들리고 리더가 위축되어 방향이 사라진 때. 누구나 흔하게 조급해진다. 무리하게 돌파하고, 힘으로 상황을 제압한다. 파국의 서막이 열리는 신호다.


마음이 두근거릴 때 자연의 모습을 살펴보자. 그들의 기다림은 고요하지만 수동적이지 않다. 내부를 정비하고 관계를 점검하며 에너지를 보존하는 능동적 기다림이다. 소축의 시간은 외부의 정복이 아닌 내부의 재건이라는 의미를, 그들은 알고 있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움직임이 때를 만나면 결정적 한 방이 된다.


혹 지금 현실이 뻑뻑한 먹구름처럼 느껴지는가. 비는 내리지 않고 긴장만 쌓이는가. 하늘을 원망하며 소리 높일 때가 아니다. 꿀벌처럼 내 안의 소중한 여왕벌을 감싸안고 시간을 단속할 때다. 짙은 구름은 결국 비가 된다. 비를 기다린 자만이 다시 날아오를 힘 있는 날개를 갖게 된다. 봄철을 만난 꿀벌처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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