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履卦】 호랑이 꼬리를 밟았으나 물리지 않는 법
벌로 가득한 내 농장 끝자락에는 나이 많은 잣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거대한 나무. 농장 터를 구하러 다니던 시기, 이 땅을 선택하게 만든 건 팔 할이 저 나무였다. 주변 숲을 호령하듯 위풍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농장에 들여올 벌들도 든든히 지켜주리라는 믿음이 갔다.
잣나무는 본래 한파에 강해 소나무보다 생명력이 질기다. 역시나 내 농장의 잣나무도 강원도와 맞붙은 땅에서 사계절 푸른 잎을 자랑했다. 2024년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그해 겨울, 사람들은 폭설에 ‘기록적’이란 단어를 습관처럼 붙여댔다. 기록적인 폭설은 잣나무에 치명적이다. 잣나무 잎은 소나무보다 무성하고 촘촘하여 눈을 이고 있기에 불리한 까닭이다. 밤새 퍼붓던 습기 가득한 눈에 잣나무 가지는 비명도 없이 스러졌다.
다음 날 농장에 도착한 나는 입을 틀어막고야 말았다. 처참하게 널브러진 가지가 밤새 겪은 잣나무의 수난을 증명했다. 순간 나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간 듯 흉하고 처연한 모습이 곧 생을 마감할 존재처럼 위태했다.
세상의 단면은 이처럼 길(吉)하고 흉(凶)함을 갈마든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한순간의 변화로 처참히 변해버린다. 그래서 『주역(周易)』 리괘(履卦)는 ‘호랑이 꼬리를 밟는 순간’을 보여준다. 인생 길을 걷다보면 부지불식간에 밟게 될 호랑이 꼬리가 도처에 있음을 비유하는 대목이다.
마치 잣나무에 닥친 폭설과 같은 형국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맹수 앞에 나무가 도망칠 길은 요원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호랑이 꼬리를 밟은 채, 모골이 송연한 채로 멈춰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꼬리를 밟았다고 해서 반드시 물려 죽으라는 법은 없다. 리괘(履卦)의 첫 마디는 “호랑이 꼬리를 밟았으나 물리지 않았으니 형통하다. [履虎尾,不咥人,亨.]”는 말로 시작한다. 호랑이 꼬리를 밟았는데 어찌 물리지 않는가? 이 말은 극한의 상황에도 살아남을 지혜를 알려주기 위한 복선에 가깝다.
잣나무는 이미 생존의 지혜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계절이 바뀌어도 잣나무의 생명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부러진 자리에 송진을 내어 스스로 상처를 덮고 남은 가지에 집중하며 삶을 공고히 다졌다.
우매한 인간인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무의 부러짐은 패배가 아니라 고도의 생존 방식이었음을. 온몸에 힘을 주고 눈의 무게를 버텼다면 뿌리째 뽑히거나 밑동이 갈라졌을지 모른다. 잣나무는 과감히 부러짐으로써 가장 약한 부분만 희생시키고 폭설을 흘려보냈다. 강한 힘 앞에 유연한 태도로 생존을 기약하는 일이다.
리괘(履卦)가 짚어내는 생존의 지혜도 잣나무와 동일하다. 강하고 위험한 세상은 어찌할 수 없으니 유연하고 겸손하며 신중하게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것. 즉 살얼음 위를 걷듯이 [如履薄冰] 신중하게 살피고 자신이 올라탄 흐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런 방식을 보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 삭스가 겪은 여정이 묘하게 떠오른다. 사회라는 정글에 갓 발을 들인 앤디와 그의 상사인 미란다 프리슬리. 미란다는 호랑이에 가까운 재앙이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로 비서실 공기가 얼고, 직원들은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앤디는 처음에 자존심과 고집을 뻣뻣이 세우며 저항한다. “나는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오만함이 미란다를 자극했다. 매일 물어뜯기고 상처투성이가 되는 일상이 이어진 이유다.
삶에 생채기가 가득해진 후에야 앤디는 깨닫는다. 호랑이 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호랑이와 싸우는 방식이 아니라, 호랑이의 생리를 이해하고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란 사실을. 그녀는 촌스러운 스웨터와 낡은 자존심이란 가지를 스스로 부러뜨린다. 대신 냉혹한 패션계의 질서를 예민하게 파악하고 미란다의 필요를 빠르게 살폈다.
이후 앤디의 사회생활은 극적으로 변한다. 까다로운 미란다의 요구를 완벽하게 수행하며 뒤를 따르는 순간, 미란다는 더 이상 그녀를 물지 않았다. 오히려 미란다는 앤디를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데려가 사회의 원리를 알려준다. 잣나무가 눈의 무게에 가지를 내어주며 생명을 지켰듯, 앤디는 자신의 껍질에서 나와 사회적 생존으로 나아간 것.
영화적 수사라 치부하고 싶으나, 안타깝게도 인간의 삶은 앤디 삭스의 모습과 판박이다. 호랑이 꼬리는 도처에 깔려 있고 폭설은 예고 없이 날아든다. 사업의 실패,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급격한 건강 악화, 직장에서의 모멸감 같은 것들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와 삶을 짓누르는 집요한 존재들.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우리 모습은 때로 앤디 삭스의 첫 모습과 다르지 않다.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고개를 쳐든 채 세상을 원망한다. 자존심이 앞서니 생채기가 더해진다. 리괘와 잣나무가 보여주는 길과 정반대의 행보다.
잣나무의 부러진 가지는 상처와 실패의 상징이라 보기 어렵다. 혹독한 겨울을 건넌 통행세이자, 생존해 낸 존재의 훈장에 가깝다. 사라진 가지로 풍성함은 사라졌으나 빈 곳을 채운 겸허함이 돋보인다. 화려함이 사라졌을지언정 존재의 본질이 단단하고 순순하게 남은 모양새다.
고다 아야는 『나무』에서, 나무란 상처를 안으로 감싸안으며 나이를 먹는다고 적었다. 상처를 품에 안고 겉을 단단히 메우기에 나무는 굳건히 오랜 시간 버티는지 모른다. 위기는 언제든 찾아오니 과거의 상처를 미래의 디딤돌로 삼으면서.
존재하는 한 인간의 삶도 위기와 떨어질 수 없다. 두렵고 막막하며 아득할 뿐이다. 종종 밟아버린 꼬리에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달려들 수도 있다. 어찌할 수 없이 상처 입고 움츠려야 하는 형국이 벌어진다.
잣나무를 떠올리자. 가지 몇 개쯤 부러지면 어떠랴. 형세가 그러하다면 잠시 굽히고 겸허하게 흐름을 조망하자. 비굴함이 아니다. 더 크고 긴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柔能制剛]’ 지혜다.
호랑이는, 그리고 폭설은, 끝까지 살아남아 푸른 잎을 피우려는 당신을 결코 이길 수 없다. 부러지겠지만 새순이 돋을 것이고, 상처 입겠지만 안으로 품어 새 껍질로 감싸면 그만이다. 그러니 때로 지나치게 버티지 말고 꺾이자. 꺾임이 삶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