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왜'를 기억할 때

빛을 발하는 시기의 자각

by 이루리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카타르시스는 단순히 승리로 기인한 감정이 아니다.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건 드라마에서 보였던 만년 꼴찌팀의 ‘리빌딩 (Re-Building)’ 과정이었다. 무너진 팀의 썩은 살을 도려내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모습. 승리라는 화려한 결과 이면에 축적된 인내와 규율의 시간. 마치 평온한 백조의 쉼 없는 물장구 같은 역설적 긴장감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주역(周易)』의 흐름과도 꽤 유사하다. 특히 소축괘(小畜卦), 리괘(履卦), 태괘(泰卦)로 이어지는 흐름은 큰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보통 세 괘의 흐름을 군주국가의 모습으로 비유하는데, 군주가 백성을 기르고 [소축괘 (小畜卦)] 신중하게 국가의 체계를 세워 [리괘(履卦)] 비로소 태평성대에 이르는 [태괘(泰卦)] 과정이다.


즉, 축적의 시간과 체계의 확립 없이 평온함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피식 웃으며 드라마적 서사의 확대 해석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자연으로 눈을 돌려 꿀벌의 생태만 보아도 허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는 꿀벌이 꿀을 가득 채운 벌통만 생각하지만, 꿀로 가득한 벌통은 한순간에 생기지 않는다. 풍요를 담아내기 위해 꿀벌은 밀랍을 분비하는 고통을 감내하고 육각형의 집 구조를 만든다. 엄격한 건축의 미학이 완성된 후에야 꿀은 풍요의 상징으로 담길 수 있다.

생각하면 꿀벌의 모든 행위가 그렇다. 여왕벌이 약해졌을 때, 새로운 왕대를 짓고 새로운 페로몬을 뿌리며 질서를 잡은 후에야 벌통의 동요가 멈춘다. 비록 초봄의 벌통이 텅 비었더라도 애벌레를 먹여 살리고 역할 체계를 확립한다면 늦봄의 벌통은 가득 차기 마련이다.

인간이 미물이라 얕보는 벌의 서사가 이러할진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역사라고 다를 리 없다.

예컨대 벌을 돌보는 양봉가(養蜂家) 또한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함부로 벌통에 다가섰다가는 꿀벌에게 잔뜩 쏘이고 병원에 눕기 십상이다. 벌의 생태를 공부하여 지식을 기르고 엄격한 관리 체계를 확립해야 벌과 친해지고 농산물을 획득한다. 꿀이란 농산품은 벌이 주지만, 수확은 양봉가의 성장과 체계 수립으로 만드는 합작품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로 타인의 성공을 밤하늘 별똥별처럼 갑작스레 떨어진 행운이라 착각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순간만 기억하는 인지적 왜곡이다. 역사라는 필름에 새겨진 성취에 ‘축적’과 ‘체계’의 시간을 거치지 않은 일은 드물다.

단적으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보자. 위대한 문자는 급작스레 왕의 머릿속에서 번뜩이며 나오지 않았다. 집현전을 통해 수많은 인재를 기르고 방대한 음운학 지식을 축적하며 원리를 체계적으로 수립한 바탕이 있었기에 한글이란 문자가 탄생했다. 위업이란 지난한 축적과 고민을 담은 체계의 구축 위에서 자라는 법이다.

현재 어두운 알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고 위축될 이유가 하등 없는 까닭이다.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면, 정체와 답답함은 실패의 징후가 아닌 축적, 성장, 육성, 그리고 체계 확립 과정이란 증거다.

물론 성과가 없는 미동의 시간이 즐거울 리 없다. 다시 꿀벌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밀랍을 생산하는 벌도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그들이 집을 짓는 건 먹이가 부족한 초봄. 벌들은 없는 식량을 쪼개 나눠가며 꼬리에서 밀랍을 뽑아내 집을 짓는다. 즐겁진 않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 어쩐지 힘든데도 차근히 해나가고 있다면 당신은 내면의 밀랍을 분비하여 나만의 육각형 집을 짓는 중이다.

다만, 항상 ‘왜’를 기억해야 한다. 벌들이 지난한 시간을 버티는 건 꿀과 번영이란 신념이 가슴을 태우기 때문이다. 나무가 추위와 싸우고 양분을 모으는 건 자신의 계절에 피어날 꽃과 열매가 있는 이유다. 자연계의 생물들은 자신이 왜 기다리는 줄 안다. 기다림이 ‘생존’과 ‘번영’으로 이어짐을 알고 있다.

인간도 분명히 지각하고 있다. 기다림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성과가 따른다는 사실을. 불명확한 미래의 자각이라는 인간 고유의 형벌에 휩쓸려 망각할 뿐. 그래서 우리는 자주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양이다. 일례로 남들이 저만치 앞서갈 때 나만 제자리를 맴돌 때 어떠한가. 밀려오는 자괴감이 우리 안의 ‘왜’를 흐릿하게 지워버린다.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왜’를 가진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유를 가슴에 오롯이 담은 후에야, 경험을 축적하고 체계를 세워 자신의 무언가로 나아간다. 기죽지 말고, 위축될 필요 없는 이유다. 라일락과 국화는 같은 꽃이지만 다른 시기에 빛을 발한다. 우리도 서로 같은 인간이지만 다른 시기에 꽃을 피운다. 당연한 일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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