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정하는 직관의 힘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첫 문장은 방황하는 인간의 삶을 정확히 겨냥한다.
“우리 삶의 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서 어두운 숲을 헤매고 있었다.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ché la diritta via era smarrita.]”
단 한 줄의 문장이건만 삶의 방향이 꺾이는 혼란과 혼돈이 동시에 느껴진다.
다행히 『신곡』의 주인공 단테는 곧바로 베르길리우스라는 인도자를 만난다. 현실에도 그런 인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우리 삶에 베르길리우스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가 직감이라는 끈을 잡고 손을 더듬거려야 하는 이유다.
직감을 기르는 방법으로 흔히 언급하는 건 경험이다. ‘제한된 합리성’ 개념을 정립한 허버트 사이먼은 직감을 ‘재인식’이라 정의했다. 삶 속에 축적된 경험·실패·관찰이 직감의 정확도를 끌어올린다는 뜻. 우리는 실패와 불편의 당위성을 여기에서 찾는다.
‘실패와 불편’을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지만, 정도가 심한 경우도 보인다. 샘 월튼이 그랬다. 1918년 미국 오클라호마의 작은 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대공황 시기를 통과했다. 일자리를 따라 떠돌던 아버지와 신문 배달 등으로 생계를 돕던 어린 샘 월튼.
힘겨운 시간 속에서도 그는 간명하면서 중요한 신념을 포착한다. 돈은 절대 쉽게 벌 수 없으며, 한 번 손에 놓은 돈을 결코 가볍게 써서는 안 된다는 것.
미주리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샘은 졸업 후 J.C. 페니라는 백화점에 판매사원으로 입사한다. 이 시기 샘 월튼은 두 가지 중요한 언어를 배운다. 고객을 대하는 ‘서비스 언어’와 매장을 숫자로 읽는 ‘소매업의 언어’. 이후 2차 세계대전을 정보장교로 보낸 그는 종전 후 자신만의 가게를 꿈꾸며 제대한다.
돌아온 그의 눈앞에 펼쳐진 건 현실적 위기였다. 자금 부족. 고민하던 그는 장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장인은 2만 달러를 내놓는다. 샘은 자신이 모든 5천 달러를 보태 아칸소주 뉴포트에 있는 ‘벤 프랭클린’ 매장을 인수한다. 동네에서 별 볼 일 없다며 비웃음을 사던 가게였다.
세간의 평가가 샘 월튼의 열정에 물을 끼얹을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가게를 살리기 위한 실험에 돌입한다. 더 저렴한 도매상을 찾는가 하면, 프랜차이즈 규정의 틈을 아슬하게 활용하며 가격 절감을 위해 애썼다. 아이스크림 기계를 들여와 판촉을 진행하고, 새로운 진열 방식도 도입한다.
신선한 운영 방식에 손님의 발길이 이어졌고, 성공의 서막이 올랐다. 그는 연 매출 7만 2천 달러에 불과했던 매장을 5년 만에 연 매출 25만 달러 규모로 성장시킨다. 덕분에 해당 지역 벤 프랭클린 매장 중 매출·이익 1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불행은 행복의 틈으로 파고드는 것일까. 기뻐해야 할 순간, 사소한 실수가 판을 뒤집어 버린다. 임대차 계약서에 사인할 때 ‘5년 후 갱신 옵션’을 넣지 않았던 것. 샘 월튼이 가게를 인수할 당시, 5년 후 임대차 계약은 자동으로 갱신되리라 판단했다. 초보 사장의 무거운 실수였던 것. 계약 만료 시점이 돼서야 위험한 착각을 안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가게가 인근 최고 상권으로 성장하자 건물주는 갱신 옵션이 없는 계약서를 들이밀며 재계약 자체를 거부한다. 샘 월튼은 임대료 인상을 조건으로 협상했지만, 건물주의 마음은 굳건했다. 심지어 매입권을 행사해 가게와 집기, 재고를 통째로 인수해 아들에게 넘겨버린다.
샘 월튼의 나이 32세. 그는 첫 가게를 1등으로 만들었지만 하루아침에 고객·상권·매장을 모두 잃는다. 훗날 그는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바보 같고 암담했다”라고 회고했다.
다행인 건 샘에게 큰 장점 하나가 있었다는 점이다. 실패의 감정에 오래 머물지 않는 능력. 그는 자신의 실수를 냉정하게 되짚었다. 임대차 계약을 제외하면 가게 운영 능력은 입증되었던 것. 자신의 방식에 대한 내적 자신감이 올라왔다.
뉴포트를 떠난 그는 인구 3천 명 남짓한 아칸소 벤턴빌로 향한다. 그곳에서 새로 개업한 가게 이름은 ‘월튼스 파이브 앤드 텐 (Walton’s 5&10).’ 벤 프랭클린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 매장이었다.
가게를 열던 그는 목표 하나를 굳건히 세운다. 언젠가는 남의 간판이 아니라 내 이름을 건 간판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벤턴빌에서 그는 실험을 더 넓게 펼쳤다. 본사 규정의 최소 기준은 지키되 나머지는 철저히 현장에서 판단했다. 진열 방식, 프로모션, 주말 특가, 상품 구성까지 마음껏 실험했다.
운영 방식에 대한 철칙도 확고하게 수립됐다. ‘무조건 싸게 파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 일반 소매업자가 ‘원가 → 마진 → 판매가’ 순으로 계산했다면, 그는 최저가를 찾은 후 원가와 비용을 역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는 1960년 무렵 15개의 체인점을 운영하는 지역 소매 강자로 성장했다. 매출은 크지 않았지만, 실험을 통해 체득한 소매업의 관록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그의 눈에 유리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 판도가 가시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소매 유통업은 대형 디스카운트 스토어의 출현으로 지각 변동을 겪고 있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신설된 대형 매장들이 낮은 가격과 넓은 부지를 앞세워 시장을 장악했다. 자칫 머뭇거리다 상권을 빼앗길 위기. 그는 거리낌 없이 모험을 선택한다.
1962년, 그의 나이 44세. 샘 월튼은 아칸소 로저스라는 작은 도시에 ‘월마트 디스카운트 시티(Wal-Mart Discount City)’ 1호점을 개장한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은행 대출로 연명하다시피 하며 매장을 열었고, 상권도 작았다. 제조업체들은 매장의 실패를 예견하며 공급을 꺼렸다. 뉴포트에서의 트라우마가 어른거렸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료를 펼쳐 들었다. 자신이 운영했던 15개 매장의 재고 회전율, 매출 패턴, 프로모션 효과를 수치로 정리한 자료. 제조업체를 설득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동시에 물류 최적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최저가를 유지한다는 전략을 세운다. 훗날 월마트의 상징이 되는 ‘Everyday Low Price’의 씨앗이었다. 씨앗은 하늘을 뚫는 나무로 성장해 세계 1위 할인점의 위상으로 나아갔다.
월마트의 성공은 ‘필연’이라 말할 수 없는 실패와 실험의 축적이 응결된 결과였다. 실패를 딛고 또 딛어야 비로소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인생 방법론의 한 축이 아닌가.
누군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샘 월튼은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 아니라, 기존 사업을 확장했을 뿐이라고. 필자는 묻고 싶다. 반전의 순간만이 도전인가? 평생 빈약한 모습으로 위축됐던 사람의 도약만이 늦은 성공이란 말인가?
샘 월튼의 기록에서 ‘실패를 딛고 자신의 무기를 벼린 삶’이란 의미를 읽어 본다. 32세에 모든 것을 잃고 44세에 자신의 이름을 걸기까지. 그의 시간은 실험과 판단의 연속이었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바닥을 다시 쓸어 올린 경험이 결정적 순간 직감으로 드러났다.
허버트 사이먼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재인식’이란, 사방으로 불어온 바람에 수없이 꺼진 불의 새로운 타오름이다. 꺼지지 않았던 불빛은 더 강하게 타오를 준비조차 할 수 없다. 눈앞에 목도한 실패를 좌절과 실망의 감정으로 지우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물론 지지부진한 현실이 지속되면 누구나 두려울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먹먹하고 답답하다. 경험과 신념을 점검할 시기다. 자신의 기대치를 미래의 기준으로 삼고 가능성 있는 곳으로 자신을 인도하는 일.
직감이 성공을 예견하진 못하지만, 자신이 그려낸 기대치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까. ‘높은 기대치야말로 모든 것의 열쇠’라며 웃던 샘 월튼의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