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구워내는 리듬
북촌 계동길. 쿠키 향이 골목을 돌아 나오는 지점에 작은 가게 하나가 시간을 붙잡고 있다. 자그마한 간판 아래 문을 열면 네 평 남짓한 공간이 나오는 곳. 흔히 할머니의 쿠키집이라 불리는 ‘정애쿠키’다. 상호를 들으면 포근함을 느끼면서도 도전과 지속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문을 드나들며 오래 해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다.
가게 주인 이정애 씨는 예순여덟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 상당한 규모로 운영하던 만둣집을 정리하고 작고 느린 가게를 선택했다. 주변에선 그녀의 늦은 나이를 보며 쉬라고 권했지만, 정애씨는 멈추기 싫었다. 삶은 속도를 줄일 수는 있으나 단절되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저 하루의 리듬만 살리자는 심정으로 발을 내밀었다.
사실 그의 행보에는 오래 지켜온 관성이 있다. 주어진 하루를 감사로 받아들이고, 하루를 끝까지 살아내는 태도가 그것. 단순하지만 어려운 원칙이 80년 가까운 세월의 기둥이 됐다. 어떠한 상황에도 낙심이란 단어를 새기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이다.
30년 전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도, 언젠가 일하던 중 팔이 부러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서는 울며 걱정했지만 정작 본인은 더 씩씩했다는 고백이다. 병은 삶의 전부가 되지 않았고, 사고가 시간을 멈출 수 없었다. 쿠키 가게의 시작도 동일했다. 하루를 감사로 채우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흘렀단다.
토끼가 숟가락을 든 간판 아래 문을 열면 다른 속도의 세계가 펼쳐진다. 손으로 주문을 받아 적고 커피는 기계 없이 갈고 내린다. 반죽기 하나 없이 손으로 밀며 쿠키를 만드는 장면이 진풍경이다.
그러니 모든 과정이 느리다. 누군가는 느림을 노인의 관성이라 치부하겠으나, 틀렸다. 정애쿠키의 느림은 낡은 습관의 잔재가 아니다. 속도를 낮추고 자신만의 호흡으로 시간과 관계를 다루겠다는 의지의 표명에 가깝다. 거창한 미래보다 감당할 수 있는 오늘을 설계하겠다는 뜻. 자신에 맞춰 설계한 하루가 쌓여 공간을 구축하고 현재이 이르렀다.
메뉴 또한 그의 호흡을 닮았다. 단출하지만 결핍되지 않고, 정갈하지만 굳어있지 않다. 특히 ‘고추쿠키’는 가장 분명하게 유연함을 담았다. 우연히 떠오른 생각을 손끝으로 옮겨 만든 결과물이었다. 예상 밖의 조합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나이가 아닌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어쩌면 그의 자세가 한국에 온 전 세계 사람들이 가게를 찾는 까닭은 아닐까? 딸이 SNS에 글을 하나 올렸다지만, 글 하나가 모든 사람을 끌어들일 순 없다. 주름진 얼굴에 묻어나는 정감, 공간을 가득 채운 온기, 서두르지 않으며 배려하는 태도가 종합적으로 사람의 가슴에 스몄으리라. 정(情)을 미담이 아닌 일상으로 간직한 곳이니 말이다.
이정애 씨는 성공을 매출이나 확장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성취를 ‘오늘도 문을 열 수 있는 상태’로 표현한다. 몸이 허락하는 지점까지 문을 열겠다는 말에서 야망보다 의지가 읽힌다. 자신의 리듬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숨결이다. 세월이 가로막는 하루를 감사로 시작하고 끝내며 지속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또렷한 드라마가 따로 없다.
이정애 씨의 삶을 마주하며, 내가 자주 대던 핑계를 떠올렸다. 나이 때문에, 건강 때문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을 떼지 않았던 시간. 문득 뇌리에 이정애 씨가 미소 지으며 질문을 던지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것이 정말 당신을 가로막고 있느냐고.
68세의 시간이 살려놓은 가게가 속삭인다. 인생의 흐름은 속도가 아닌 자기 리듬을 만들고 조율하는 능력에 있다고. 이정애 씨가 자신의 삶을 조율한 덕분에 계동길 쿠키 향은 오늘도 이어진다. 아마 그는 지금도 반죽을 치대며 자신의 ‘오늘’을 굽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오늘은 굽고 있는가? 아니, 우리의 오븐은 지금 켜져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