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안도 모모후쿠

죽는 날까지 집요하게 매달리는 힘

by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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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 컵라면이 익는 시간은 단 3분. 우리야 편하게 먹으면 그만이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 있다. 열정, 좌절, 노력, 성취의 서사가 모두 담긴 시간. 수없는 시간이 3분에 담긴 덕분에 인류의 식생활을 바꾼 한 그릇이 세상에 나왔다. 컵라면의 아버지, 안도 모모후쿠의 이야기다.


1910년, 그는 일본 식민지였던 대만에서 태어났다. 대만식 이름은 오백복(吳百福).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넉넉한 집안 덕에 20대 초반부터 사업을 운영했고 타이완에서 꽤 잘 나가는 청년 사업가로 살았다.


순조롭게 쌓았던 사업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전쟁과 패전의 시기. 일본 패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로 개명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오사카에서 창업했지만, 연쇄 부도와 세금 문제에 휘말리며 붕괴했다.


1948년, 그는 탈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기에 이른다. 감옥에 들어가며 그의 사업은 자연스레 파업했고, 그에게 남은 건 오사카 이케다시의 작은 임대 토지 한 필뿐이었다. 부유한 청년 사업가에서 하루아침에 무일푼 전과자가 된 상황. 나이는 어느새 38세가 되어 있었다.


순조롭게 걷던 중 구덩이에 빠지면 누군가는 가슴에 삶의 끝자락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안도 모모후쿠는 다른 관점으로 삶을 바라봤다. 그는 새로운 시작을 꿈꿨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지 보였다”는 그의 말이 삶의 변곡점을 보여준다.


그 무렵 일본은 피폐함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전쟁을 주도한 건 국가지만 상처를 입는 건 국민의 몫.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며 길게 늘어선 국수 배급소에 줄을 섰다.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먹으려 아귀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와 보건성은 미국 원조로 들여온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 권장했다. 영세한 국수 회사들이 전 국민에게 보급할 만한 수량을 만들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국민은 암묵적으로 거부했다. 일본의 주식은 오랜 기간 밥과 국수였으니 빵이 식사가 될 수 없었던 것. 식량난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안도 모모후쿠의 가슴에 새로운 꿈이 생겼다. 국가가 국민을 챙기지 못하면 자신이 해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피었다. 국민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국수를 만들면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안도 모모후쿠는 집 마당에 작은 나무 창고를 짓고 실험실이라 불렀다. 당시 ‘닛신식품’의 전신인 소금회사를 운영하던 시기였다. 낮에 회사를 운영해야 했기에 실험실 불은 밤마다 켜졌다. 그는 밤새 반죽과 국물을 만지며 실험을 지속했다.


목표는 어디서나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국수를 만드는 일인데,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 실험이 이어졌고, 수많은 실패 끝에 그는 답을 찾았다. 바로 국수를 튀기는 방식으로 만드는 것. 그는 면을 가늘게 뽑아 뜨거운 기름에 순식간에 튀겨 건진 뒤 건조했다. 이른바 ‘유지유화(油脂油和)’의 방식.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튀기는 와중에 면 안에 수많은 구멍이 생겼고, 뜨거운 물이 빠르게 스며드는 길이 되었다.


1958년, 48세의 안도 모모후쿠는 첫 번째 제품인 ‘닛신 치킨라멘’을 세상에 출시했다.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인스턴트 라면의 첫 탄생이었다.


식품계 판도를 바꿀 제품이었지만 시장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가락국수보다 6배 비싼 가격과 낯선 느낌에 사람들은 거부감을 표출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식회를 열고, 직접 조리하며 간편함을 홍보했다. ‘3분’이라는 조리 시간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졌고, 1년 만에 하루 생산량이 1만 봉지를 넘었다. ‘닛신식품’의 성장 궤도가 시작됐다.


하지만 물 흐르듯 순조로운 일은 없는 법. 시장에 복제 상품이 나오며 성장세가 꺾이는 조짐이 보였다. 안도 모모후쿠가 세계 시장에 눈을 돌린 까닭이었다. 일본에만 집중하기에 한계가 보였던 것. 그는 출장을 다니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단서는 미국에서 드러났다. 미국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발견한 특이한 식습관이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스티로폼 컵에 라면을 넣고 부순 뒤 뜨거운 물을 부어 먹고 있었다. 돌연 그의 머리에 면과 그릇을 하나로 합친 제품이 떠올랐다. ‘컵누들’의 발단이었다.


1971년 61세의 안도 모모후쿠는 컵누들을 출시하고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 면의 길이를 컵 높이에 맞춰 세로로 세워 담는 구조를 고안한 덕에 뜨거운 물은 면에 더 잘 스며들었다. 컵누들은 미국, 유럽, 아시아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본 시장도 덩달아 들썩였다.


큰 성공을 이룬 후에도 그의 집요함은 끝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도 그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고,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라면’을 개발하기도 했다. 실제로 2005년에는 ‘스페이스 라면’이 개발되어 일본 우주사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시식하는 일도 있었다. 90세가 넘어서도 라면을 즐기던 그는 96세에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새로운 라면을 만들 수 있다’며 도전했다.


하나의 단어가 삶을 지배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불길이 타오르는 것일까. 안도 모모후쿠의 삶을 지배한 글자는 ‘배부른 한 끼’였다. “배부르게 먹어야 평화가 온다”라고 선언하던 그의 삶은 ‘한 끼를 만드는 일’로 그려졌다. 사명에 손에 그린 자에게 실패는 또 하나의 도전이 아니었을까.


안도 모모후쿠는 “영감은 발명으로 이어지지만, 발명의 토양은 끈기다. 끈기가 없으면 발명도 없다”는 말을 남겼다. 문장 곳곳에, 넘어지고 방향을 바꾸며 ‘한 끼’에 집착한 사람의 우직함이 느껴진다.


오늘날 바쁜 사람들의 책상 위에 컵라면이 놓이곤 한다. 3분이란 짧은 시간이 그들의 열정을 이어주는 끈이 된다. 열정으로 만든 3분이 또 다른 열정으로 피어나는 현장이다. 열정이 열정을 낳고, 낳은 열정이 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 우리 인간의 삶은 그렇게 이어져 왔는지 모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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