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는 공간의 이야기
차디찬 금속 침대에 눕혀진 순간, 나는 결정의 방에 들어왔음을 직감했다. 이유는 삭제되고 결과만 남는 곳. 절망의 한가운데 누군가 내려놓은 최종 명세서처럼 침대의 촉감은 차갑고 축축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잠시라도 사건을 기록하려는 펜촉처럼 요동쳤다.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짧은 숨이 가빠질수록, 나의 시간은 이미 서류 한 장으로 정리되고 있음을.
문득 처음 이 곳에 오던 장면이 되살아났다.
그 날 나는 평소처럼 길을 걸었다. 목적을 두지 않고 바람에 맞춰 걷는 일.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뒤편에 기척이 거슬렸다는 점. 짜증을 담아 뒤롤 돌아보려는 순간 시야가 가려졌다. 설득보다 폭력으로 제압하는 힘. 이유 없이 끌려간 장소는 어둠이 가득한 통로였고, 그 끝의 철창 하나가 내 삶을 분류하는 서류함처럼 벌어졌다.
철창에 던져진 내 얼굴 위에 가느다란 빛이 누웠을 때, 나는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며 무너진 가슴을 끌어안았다. 무릎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떨군 많은 이들. 여기서는 그 누구도 스스로의 주인이 아니었다.
몸을 떨며 철창에 기대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니 듬성한 치열 사이로 숨을 몰아쉬는 여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잔뜩 뻗쳐버린 머리털과 절뚝거리는 다리에 경계하던 것도 잠시. 그녀는 가만히 다가와 내 등을 쓸어내렸다. 순간 몸 어딘가에 묻혔던 오랜 감각이 살아났다. 따뜻함. 누군가 나를 위한다는 기미. 기억이 생생한 ‘가족’이 남긴 흔적과 닮아 있었다.
“괜찮아.”
불안과 혼란으로 무너지던 마음에 그녀의 말이 스며들어 기둥이 된다.
“다 잘 될거란다.”
공간을 둘러싼 폭력적인 흐름을 위반하는 말투. 눈물 그렁한 내 표정에 그녀는 살며시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품에 들어갔을 때만큼은, 이제 철창이 내 세계라는 사실이 머리에서 지워졌다. 철창은 폐허였지만 그녀는 폐허의 진동을 막아준 임시 거처였다.
그러나 임시 거처는 오래 남지 않는다. 갑자기 철창 문이 열리던 날, 그녀는 끌려나갔다. 옆 방의 다른 이들과 함께. 저항하는 이들의 소리가 공간을 채웠지만 그녀의 얼굴은 고요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아는 사람처럼. 백내장 낀 동공은 끝없이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녀의 눈에 담긴 문장을 읽어내지 못했다. 견디라는 “견뎌라”였을까, “받아들여라”였을까. 혹 “이해하려 노력하지 말라”였을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함께 나갔던 이들도 자취 없이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곳은 어디인가. 나는 상상 속에서 그들을 들판에 풀어놓았다. 악취와 어둠으로 가득한 이 곳과 비교할 수 없는, 햇살과 바람으로 가득한 곳. 상상은 하나의 도피처이자 숨구멍으로 작용했다. 그날따라 썩은 물 한 모금조차 몸을 버티게 하는 미량의 희망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철창 문이 열리고 낯설고 차가운 손이 겨드랑이 밑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 손길을 자유로 가는 관문이라 믿기로 했다. 다른 선택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풀 냄새, 바람 소리.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잎 한 조각 물고 뛰던 기억. 모든 것이 너무 생생해서 나는 정말 다시 그곳으로 가는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금속 침대 위에 눕혀져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묶여 있다. 법정에서 마지막 서명을 받는 피고처럼. 침대는 나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 옆에 누워 있던 존재는 이미 이유도 모른 채 숨을 멈추고 사라졌다. 이제 내 차례다. 모든 것이 절차로만 존재하는 곳. 자율성은 처음부터 허용된 적이 없었다.
누군가 다가왔다. 심드렁한 표정. 무표정이라기엔 감정의 근육을 일부러 닫은 듯한 얼굴. 비명이라도 지르려는 내 입을 그는 거칠게 틀어 쥔다. 다른 손에 들린 가느다란 금속은 곧 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짧은 따끔함. 폐는 천천히 자신의 리듬을 잃어간다. 마지막 순간에 떠오른 건 나무 그늘 아래에서의 아련한 졸음. 아프지 않은데 아프고, 그립지 않은데 그립다. 엄마, 보고싶어요. 가족분들….보고..ㅅ…
“끝났어요. 가져가세요.”
미래의 목소리가 판사처럼 건조하게 흐르고, 김씨는 축 늘어진 그것을 들고 나간다. 미래의 손에 들린 빈 주사기 사이로 남은 체온이 미세하게 진동한다. 미래는 미동을 지우듯 한숨을 쉰다. 어린 시절 강아지가 좋아 그들을 살리려 의사가 되었건만. 현실의 장벽에 결국 생명을 정리하는 집행관이 됐다.
절차는 반복적 일상에 적응을 요구했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반복된 마음을 거부하는 중이다. 특히 두 해도 살지 못한 작은 존재의 숨결은 몸 어딘가 쓰라림을 남겼다.
사무실로 돌아온 미래는 달력을 바라본다. 내일도 다섯. ‘2주 규정’은 효율의 명패를 달고 살생을 정당화했다. 순간 속이 뒤틀린 그녀가 책상 밑으로 구토를 쏟아낸다.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게워낸 그녀가 눈을 뜨니 형체도 알 수 없는 물질이 펴져 있다. 더럽고 형태도 정돈되지 않은 그것.
문득 더러움의 정의를 떠올린 미래였다. 더러운 건 토사물일까. 아니면 불필요와 효율을 핑계로 생명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사회의 시스템일까. 아니, 어쩌면 기분에 따라 생명의 존엄성조차 가슴에 담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들인지 모른다.
질문에 답을 채우지도 못한 채, 미래의 가슴은 내일을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