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스탠 리

불완전성의 전환

by 이루리

1929년 10월, 뉴욕 증권가에서 터져 나온 검은 목요일의 비명은 맨해튼의 마천루를 타고 흘러내렸다. 대공황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미국 전역을 집어삼키던 시절. 그해 가을, 브룽크스의 좁고 퀴퀴한 아파트에서 창밖의 벽돌담만을 바라보며 하루를 견디던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스탠리 마틴 리버. 그의 현실은 버텨내는 일에 가까웠다. 아버지의 실직, 부모의 다툼, 가난의 냄새가 곰팡이처럼 배어든 집.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고 에롤 플린이 등장하는 모험 영화를 보며 스스로 현실에서 유배시켰다. 언젠가 위대한 소설가가 되어 이 비루한 세계로부터 탈출하겠다는 야망과 함께.


재능은 일찍 모습을 드러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그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이 주관한 고등학생 에세이 공모전에서 두 차례 가작을 수상한다. 그러나 재능이 생계를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꿈을 붙들기에 삶이 너무 거칠었다. 결국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소년은 1939년, 친척 마틴 굿맨의 소개로 타임리 코믹스(Timely Comics)에 들어가게 된다.


훗날 마블의 전신이 되는 회사였지만, 당시 타임리 코믹스는 담배 연기와 잉크 냄새, 타자기 소리가 뒤엉킨 혼란의 공간이었다. 스탠리는 ‘그래도 글과 관련된 일’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작가가 아니라 심부름꾼이었다. 잭 커비와 조 사이먼이 펜을 내려놓으면 잉크병을 채우고, 점심 샌드위치를 나르고, 바닥에 흩어진 지우개 부스러기를 치우는 잡역부. 문학의 꿈은 그저 구석에 밀려 있었다.


뜻밖의 기회는 난장판 같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인력난에 시달리던 회사는 그에게 펜을 쥐여준다. 입사 2년 만의 일이다. 그는 곧바로 ‘스탠 리(Stan Lee)’라는 필명을 만들고 〈캡틴 아메리카〉의 텍스트 스토리를 쓰며 데뷔한다. 곧이어 폭풍 같은 변화가 몰아쳤다. 사이먼과 커비가 회사와의 불화로 퇴사했고,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스탠 리는 편집장 자리에 앉게 된다.


이후 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 통신부대에서 훈련 매뉴얼과 시사만화를 그리던 시기를 제외하면, 그는 줄곧 마블의 중심에 있었다. 제대하며 DC 코믹스의 이직 제안을 받았으나, 그는 마블에 남아 편집장·아트 디렉터·수석 작가라는 1인 3역을 떠안는다. 겉으로 보기엔 안정과 권력의 자리였다.


그러나 ‘무엇을 쓰느냐’는 질문은 그를 끊임없이 갉아먹었다. 1950년대, 슈퍼 히어로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그는 시장이 원하는 것만을 찍어내야 했다. 로맨스가 팔리면 멜로를, 서부극이 유행하면 카우보이를, 괴기물이 뜨면 묘지에서 기어 나오는 괴물을 그렸다. 그의 손끝은 타율의 옷을 입고 말았다.


편집장으로서의 지위와 급여는 보장됐지만, 창작가로서의 자존심은 바닥을 쳤다. 영혼 없는 복제와 유행의 아류들. 20년 가까운 커리어에 자부심보다 참담함이 자리했다.


마흔을 목전에 둔 1961년, 그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사장이었던 마틴 굿맨은 경쟁사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를 본떠 또 하나의 팀 히어로물을 지시했다. 스탠 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소설가의 꿈을 버려가며 이어온 삶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 조안에게 만화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조안이 건넨 한마디가 역사를 바꿨다.


“어차피 그만둘 거라면, 마지막으로 당신이 쓰고 싶은 대로 써보고 잘리는 게 어때요? 잃을 게 뭐 있나요?”

그 말은 꺼져가던 내부에 작은 불씨를 던졌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떠올렸다. 완벽하고 고결하며 정의만 외치는 영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인간의 결함과 불안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이야기. 아이디어는 곧 새로운 형태를 얻었다.


바로 〈판타스틱 포〉였다. 이야기 속 영웅은 ‘영웅’답지 않았다. 가족은 늘 다퉜고, 돈 문제로 고민했으며, 자신의 능력을 저주했다. 바위 인간 씽은 외모 콤플렉스로 우울과 분노에 시달렸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독자들은 월세를 걱정하는 불완전한 영웅에 열광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지질한 고등학생 피터 파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파이더맨,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헐크, 장애를 안고 세상을 감각으로 읽는 데어데블, 차별과 소외에 고통받는 엑스맨. 그의 영웅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고장 나 있었다. 신의 힘을 받았지만, 인간의 고뇌를 짊어진 존재들이었다.


스탠 리의 전환은 만화를 싸구려 오락에서 현대의 신화로 격상시켰다. 독자들은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열등감과 외로움, 실패를 공감받았다. 스탠 리의 결핍이 자아낸 위로였다.


40대에 비로소 시작한 그의 진짜 창작은 이 결핍에서 나왔다. 대공황의 빈곤, 상업 작가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후회, 직업적 피로와 부끄러움이란 결핍이 없었다면 스파이더맨의 고난도, 엑스맨의 상처도 존재하지 못했다.


그는 편집장 레터마다 ‘엑셀시어(Excelsior)’라는 말을 남겼다. ‘더 높이, 더 멀리.’ 약점을 감추지 않고 이야기로 바꿔 날아오른 한 사람의 주문이었다.


인간은 늘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순 없다. 환경과 조건은 우리를 불편한 자리에 밀어 넣는다. 힘들기 짝이 없다. 벗어날 방도는 없을까. 스탠 리는 방법을 찾았다. 그는 자리를 비틀어 영웅을 인간의 자리로 끌어내렸다. 늦었지만 늦지 않았음을 보이는 그의 증명이다.


2018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도 끝내 별을 올려다보던 한 소년의 주문은 아직 남아 있다. 완벽해지려 애쓰기보다, 불완전함 속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찾으라는 메시지로. 그리고 불완전하기에 판도가 바뀐다는 위로로 말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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