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미셸 여

황금기를 결정하는 기준

by 이루리


무대 위 가녀린 불빛 아래 선 프리마돈나의 발끝은 중력을 잊은 모양새다. 날아오르고 착지하는 몸짓의 행간에 미(美)의 극한을 담는 모습.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움이 아픔을 담고 있음을, 우리는 망각한다. 날갯짓 한 번을 위해 발레리나의 발은 수없는 비명과 골절로 물들곤 한다.


‘양자경’이라 잘 알려진 미셸 여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발레의 역설을 닮았다. 말레이시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인대회를 거쳐 할리우드의 정점에 선 배우. 표면적으로 보자면 흠잡을 데 없는 황금빛 수레의 궤적으로 보인다.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 그들의 강점과 아름다움에만 집중하게 마련이다. 강점과 아름다움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 미셸 여가 입은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조금만 걷으면 시대와 편견이란 벽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생긴 멍 자국이 지도처럼 새겨져 있다. 자신만의 길을 구축하기 위해 끝없이 펄떡이던 시간이 남긴 상처다.


그녀의 첫 꿈은 10대라는 이른 시절 폐기됐다. 네 살 때부터 꿈꾸어 왔던 프리마돈나의 꿈. 런던 왕립 무용 아카데미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척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의사는 춤과의 이별을 선고했고, 미셸 여는 절망했다.


10대의 좌절은 방황으로 이어지곤 한다. 미셸도 예외가 아니었다. 발레를 접고 공연예술 전반으로 전공을 바꿨지만, 자신의 길을 찾기 어려웠다. 표류하는 딸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말레이시아 미인대회 출전을 권유했다. 새로운 길의 서막이었다. 미셸 여는 우승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홍콩 광고에 출연하게 된다.

광고에 등장한 그녀는 홍콩 영화사 관계자의 눈에 띈다. 그는 발레리나 출신의 미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홍콩 영화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당시 홍콩 영화 시장은 액션물로 가득했고 남자 배우가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여성 배우는 꽃병과 같은 협소한 역할만 담당했다. 영화 관계자는 홍콩 영화계의 고질적이고 형식적인 틀을 깨고 싶었다. 미셸 여가 액션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였다.


사실 액션 영화는 미셸이 진심으로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훗날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액션 스타가 아닌 그저 배우이길 바랐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 다만 미셸 여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그저 ‘배우’가 됐다면 그녀 또한 꽃병에 갇힌 타율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주체가 되기 위해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다.


미셸은 위험한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하기로 유명했다. 자동차 보닛 위에서 직접 싸우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뛰어내리는가 하면 높은 곳에서 낙하는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했다.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폴리스 스토리3>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언덕길을 질주하다가 지붕 위로 뛰어내리는 장면. 한 번의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촬영이었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과감한 액션으로 이름을 알린 그녀는, 1997년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시장에 진출한다. 제임스 본드 영화 <투모로우 네버 다이>의 본드걸로 섭외됐던 것. 당시 본드걸은 섹시함의 상징이자 장식품에 가까운 존재였다. 미셸은 다시 한 번 꽃병을 깨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제임스 본드와 동등한 역할을 수행하며 본드걸의 새로운 모델상을 자아냈다.


하지만 동양인 여성에 대한 할리우드 시장의 고착된 관점을 바꾸긴 어려웠다. 그들이 미셸에게 바라는 모습은 늘 ‘이국적 동양 여성’, ‘무술 잘하는 아시아 여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미셸이 <와호장룡>,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의 작품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만족하지 못한 이유다. 연기력 하나로 성공을 견인했지만 마음이 답답했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지 못했다는 긴장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시간이 흘러 미셸은 50대 후반의 나이가 됐다. 여전히 만족스러운 배역을 찾지 못한 채 연기를 지속하던 시기. 미셸의 손에 들어온 하나의 시나리오가 인생을 통째로 뒤집는다. 영화 제목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다소 황당하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년 이민자 엄마, 낡은 건물, 세무조사, 멀어지는 남편과 딸에 갑작스런 멀티버스와 우주, 초능력, 그리고 뜬금없는 바나나의 등장까지. 처음 보면 대체 무슨 영화인지 감조차 잡기 힘들다.

미셸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울었다고 한다. 평생 보고 싶었던 여성 캐릭터를 처음 찾았던 것. 이후 인터뷰에서 그녀는 영화 속 주인공 에블린이 지치고 무너지며 후회하고 욕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고 고백한다. 60대 아시아 배우에게 쏟아지던 ‘조용하고 신비한 어머니’나 ‘신비로운 동양 여성’의 틀에서 벗어난 역할이 가슴을 울렸다.


수많은 멀티버스를 넘나들어야 하는 혼란한 배역이었지만 미셸은 에블린을 연기하며 수많은 자신을 만났다. 발레리나의 꿈을 접었던 어린 시절, 홍콩 액션 현장에서 몸을 던지던 20-30대, 할리우드에서 관성적인 역할로만 쓰이던 40-50대,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된 주연을 만나지 못했던 50대 후반의 모습. 배우가 진심을 담아 인물상을 드러냈을 때, 관객은 배우의 인생을 함께 비춰보게 마련이다. 에블린이 컨트롤 룸에서 눈을 감고 멀티버스의 기지를 건널 때, 관객은 어느새 한 배우의 40년 커리어를 훑고 지나갔다.


2023년 3월 12일, 미셸 여는 오스카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 위에 섰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연기가 만든 성과였다. 오스카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여우주연상 수상자였다.


시상대에 선 미셸의 시상 소감이 인상적이다. 그녀는 “이 상은 모든 소년과 소년에게 보내는 등불입니다. 여러분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말과 함께 “누구에게도 ‘너의 황금기는 지났다’는 말을 듣지 마세요”라고 덧붙인다.


소감을 듣는데 문득 가슴이 저렸다. 우리는 살면서 황금기의 후퇴를 몇 번이나 되뇌었던가.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그만두며,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넘기며, 아이들이 자라 떠날 때.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많이 던지던 말이 아니던가.


‘당신들의 황금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강력한 메시지는 어쩌면 직접 겪어 본 사람이라야 던질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생각하면 미셸 여의 인생은 한 번도 정해진 길로 흐르지 않았다. 발레를 포기하고, 광고 모델이 되고, 액션 배우가 되고, 할리우드에서 방황하다 중년의 이민자 엄마를 연기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길. 모든 단계에서 그녀는 눈앞에 놓인 상황에 집중하며 훗날을 기약하는 태도를 유지했다는 느낌이다.


어느덧 필자가 13명의 인물을 글로 풀어낸 시점, 후반전에 골을 넣은 사람들을 꺼냈던 이유를 다시 되새긴다. 거창한 성공담을 보여주자는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마음을 괴롭히는, “늦었다”는 목소리를 잠재우고 기회를 찾자는 의미였다.


우리는 누구나 일상이란 작은 무대 위에서 발을 내딛다 집으로 돌아온다. 지나치게 평범하기에 스스로 낮추고, 비이성적으로 피곤하기에 자주 버려두는, 작지만 거대한 무대. 우리가 자각해야 하는 건 발을 내딛는 모든 순간이 나만의 황금기를 향한 여정이란 사실이다.


얼마 전 망설임으로 손끝을 배회할 때, 미셸 여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망설임과 도전 의식 사이에 그녀의 말이 불쑥 손을 뻗는다. 황금기가 언제부터 나이와 상황으로 대변되는 단면이던가. 지금, 이 순간 한 번 더 해보자는 마음 자세가 황금기를 결정하는 건 아니던가.


그 누구도 나의 황금기를 결정할 수 없다. 그건 내가 정의하고 규정하는 자율적 형태다. 평소 자각하지 않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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