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卦】멈춤은 도태가 아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후배가 회의실에서 잠든 일이 있었다. 악마 같던 팀장이 그냥 넘길 리 없었다. 팀 기강이 무너졌다는 이유로 3시간이나 불호령이 떨어졌던 날. 후배의 고개는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했고 선배들의 눈꼬리는 사정없이 하늘로 올라섰다.
회의를 빙자한 팀장식 고문이 끝나고, 나는 흡연장으로 후배를 불렀다. 혼내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저 궁금했다. 긴박감 넘치는 회의 시간에 졸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문제는 『미라클 모닝』과 『아침형 인간』이었다. 대학 시절 게으름의 대명사였던 후배는 대기업에 들어오며 다짐을 새겼다고 한다. 이제부터 부지런한 생활을 하겠다고. 마침 『미라클 모닝과 』『아침형 인간을 』위시한 자기 계발 열풍이 한창인 시기였다.
새벽 헬스장, 아침 영어학원이란 무리수를 두었던 후배는 늘 피곤해 보였다. 이유를 몰랐던 나는 회사 일이 힘든 줄로만 알았다. 힘내라고 홍삼까지 챙겨줬건만, 결국 회의실 수면이라는 대참사로 귀결되고 말았다.
지난해 가을, 노을이 양봉장을 스치던 시간에 문득 그 후배가 떠올랐다. 대지가 낮의 소란을 지우고 어둠의 호흡을 시작하는 시간. 공중을 가르던 벌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주황빛 잔광을 등지고 벌통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쉬어야 할 시간에 쉴 줄 아는 존재들. 쉼을 죄악으로 여기며 스스로 혹사하는 인간의 삶과 어찌 이리 다른가.
고전에도 휴식에 대한 통찰은 적지 않다. 그중 『주역(周易)』이 인상 깊은 까닭은 자연의 형상으로 원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특히 열일곱 번째 괘인 택뢰수괘(澤雷隨卦)는 직설적이다. 연못 아래 잠긴 우레의 형상. 한때 역동하던 강한 생명력이 깊은 물속으로 침잠하는 모습이다.
수괘(隨卦)의 풀이를 보면 “날이 저물면 집에 들어가 편안히 쉴 것 [嚮晦入宴息]”을 요구하면서 “때를 따르는 의리가 크도다! [隨時之義, 大矣哉]”라고 일갈한다. 휴식은 단순한 생리적 수면을 넘어선다. 움직임을 멈추고, 멈춰야 다시 움직인다는 순환의 법칙이다.
쉼 없이 전진하는 일만이 미덕이 된 시대다. 멈추는 순간 도태될 것이라는 공포와 불안이 사람들의 날개를 억지로 펼쳐 놓는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날개를 접고 벌통으로 돌아가는 꿀벌에게는 지속 가능한 삶의 밀담(密談)이 스며있다. 우레가 연못에 깃든 건 기운의 소멸이 아니라 내일의 비행을 위한 응축이다.
‘때를 따르는 일’은 나약한 굴종이 아니다. 자연의 순환과 다투지 않고, 시간과 다투지 않으며, 주어진 상황에 정직하게 응답하는 태도다. 빛이 오르면 나아가고, 어둠이 찾아오면 돌아온다. 이런 지극한 순리(順理)를 『주역(周易)』에선 때를 따른다 [隨時]라고 지칭했다.
이러한 지혜를 톨스토이는 다른 방식으로 증언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톨스토이는 인정과 성공만을 좇다 끝내 삶의 온기를 잃어버린 인간을 그려냈다. 이반 일리치는 평생 휴식을 사치로 여겼고, 가족과의 기쁨을 일의 방해물로 취급했다.
거대한 밤, 죽음이 찾아온 뒤에야 그는 절규한다. 단 한 번도 편안한 밤을 허락하지 않았던 삶에 영원한 밤이 내려앉았음을 깨달았기 때문. 사회가 규정한 정답이 자신의 정답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통찰이 너무 늦게 도착한 밤이었다.
사실 멈춘다고 전원 꺼진 기계처럼 완전히 정지하는 것도 아니다. 벌을 살펴보면 저녁의 벌은 단순히 죽은 듯 잠들지 않는다. 벌통 밖은 적막하지만 내부는 분주하다. 수만 마리의 벌이 미세하게 날개를 떨며 온도를 높이고, 하루의 찌꺼기를 걷어낸다. 역동은 사라지지 않고 수면 아래로 내려가 준동할 뿐이다.
뇌과학자들이 말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MN)’도 이와 닮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뇌는 정보를 정리하고 경험을 재구성하며 창조의 씨앗을 빚는다. 쉼 없는 가동은 오히려 기능을 마모시킨다.
그러나 멈춰 섬은 단절이 아니라, 깊은 곳에서 도약의 씨앗을 길어 올리는 행위다. 씨앗을 건져야 새싹이 올라온다. 삶의 순환이고, 인생의 결이다. 결을 따르는 건 자기 삶에 대한 책임 있는 응답이다. 나뭇결대로 도끼질을 해야 장작이 쉽게 쪼개지듯, 인생의 결을 거스르지 않아야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물론 인간은 벌이 아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고,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날이 많다. 해야 할 일은 쌓이고, 책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치열함이 세상을 앞으로 밀어내는 힘이라면, 멈춤은 그 힘을 보존하는 장치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젠가 스스로 발걸음을 늦추고 숨을 고를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현대인의 진정한 덕목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되짚는 일인지 모른다. 날이 저물면 다른 벌들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집으로 향하는 벌들처럼. 남들이 달려도 내가 걸어야 하면 걷고, 남들이 걸어도 내가 앉아야 하면 앉는 일.
저물어가는 하루의 끝자락, 당신의 숨결은 어느 연못에 깃들어 있는가. 고요한 침잠을 패배나 실패로 오인하지 말자.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의 역동을 기다리자. 이제는, 기쁘게 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