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효율성의 함정

【地澤臨卦】리더의 불안과 조직의 마비

by 이루리


박사 수료 후 지인의 부탁으로 잠시 몸담았던 회사는 의사결정 구조가 기이했다. 사소한 일도 대표가 직접 개입했다. 자그마한 먼지 한 톨 치우는 것조차 대표의 승인이 필요했고, 구성원은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회사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이 대표에게 보고되고, 하나의 창구에서 결정되니 혼선이 없으리라 예상하기도 했다. 착각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는 늘 “대표님 답변 나왔나요?”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거래 조건을 조금 조정할지, 프로젝트 일정을 하루 앞당길지 같은 사소한 판단조차 대표의 승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업무는 항상 멈춰 있었고, 사람들은 일하는 대신 결정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대표가 우유부단하고 지나치게 생각이 많다는 데 있었다. 무엇을 결정하든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승인 대기 중인 업무는 쌓여만 갔고, 거래처가 기다림에 지쳐 계약을 철회하는 일까지 생겼다. 예측 불가능한 일정에 구성원의 업무 태도는 무기력 일색이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효율성의 함정’이라 부른다. 맡기느니 직접 하는 게 빠를 것이란 판단. 일견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오해다. 효율성의 함정은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을 남긴다. 구성원은 성장의 기회를 잃고, 조직은 의존성을 학습하며, 리더는 점점 더 많은 짐을 짊어지다 번아웃에 이른다. 효율을 추구했으나 가장 비효율적 구조가 완성되는 셈이다.


실제로 그 회사는 비효율적이었다. 회사 구성원은 “어차피 늦을 것”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해외에 본사를 둔 프랜차이즈였기에 생존의 끈을 이어갔을 뿐, 대표가 희망한 신사업 추진은 신기루처럼 요원했다.

문제의 뿌리는 능력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저 ‘통제의 환상’이다. 위임은 단순히 업무를 나누는 행위로 볼 수 없다. 통제권 일부를 내려놓는 일이며, 자신이 모든 일을 장악했다는 만족감에서 멀어지는 행위다. 자연스레 상실에 대한 불안이 동반한다. 리더가 가진 권위는 종종 ‘내가 결정한다’는 감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감각을 놓는 순간, 존재의 중심이 흔들리는 듯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통제를 붙잡을수록 조직의 역량은 갇혀버리고 만다. 모든 일을 결정하려는 태도가 결국 리더 자신의 한계 안에 조직을 가두는 결과를 낳는 까닭이다.


이 문제의식은 『주역(周易)』 지택림괘(地澤臨卦)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임(臨)’이란 글자는 ‘임하다’, 즉 위에서 아래를 굽어본다는 의미를 품는다. 글자에서 느껴지듯 지택림괘(地澤臨卦)는 통치자의 자세를 논하는 괘다. 그 가운데 육오효(六五爻)이 나오는 구절이 흥미롭다.

지택림괘(地澤臨卦)의 육오효(六五爻)는 ‘지혜로써 임한다 [知臨]’고 말한다. 이를 두고 중국 송나라의 정이천은 “자기만의 지혜를 믿고 스스로에게 맡기는 자는 오히려 지혜롭지 못하게 된다”라고 지적하면서, “천하의 총명한 이들에게 임무를 맡겨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여기에서 ‘지임(知臨)’은 많이 아는 자의 통치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지혜가 유한함을 아는 자의 현명한 태도를 말한다. 리더도 결국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지능과 에너지, 통찰력에 모두 한계가 있다. 독점이 아닌 수용을, 장악이 아닌 개방을 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역사에서도 ‘지임(知臨)’의 여부는 큰 차이를 야기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장량의 전략을 따르고, 소하에게 행정을 맡기며, 한신에게 군권을 위임했다. 유방의 능력은 ‘내가 무엇을 아는가’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무엇을 잘하는지 아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덕분에 그는 권력을 움켜쥐기 전에 사람을 먼저 품었다.


반면 수나라 양제는 뛰어난 지식과 심미안을 지닌 군주였다. 지나치게 똑똑했던 탓에 자신의 총명을 과신했고, 신하를 도구로 여겼으며, 모든 대형 국책 사업을 스스로 통제하려 애썼다. 혹 반대하는 사람은 곧바로 숙청했다. 결국 영원할 듯했던 자만심은 판단 착오로 이어졌고, 거대한 수나라의 몰락은 한순간에 일어났다.


살펴보면 자연의 질서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러 차례 언급했듯 꿀벌 사회에서 여왕은 지배하지 않는다. 페로몬으로 질서를 유지할 뿐, 세부 운영은 일벌이 전임(專任)한다. 그 결과 집단은 분산된 판단과 결정을 통해 유연하고 유기적인 체계를 유지한다. 만약 여왕이 모든 꿀 채집 경로와 분봉 시점을 통제했다면 세상의 꿀벌은 사라졌을지 모른다.

대개 모든 자연의 존재는 유사한 구조를 따른다. 숲의 ‘어머니 나무’ 역시 지하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만 수행하고, 모든 영양분을 독점하며 전횡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우두머리 코끼리조차 지혜를 공유하며 방향을 제시할 뿐이다.

이처럼 생태계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은 리더가 군림하여 지혜를 나누되 독점하지 않는 구조를 구축해 왔다. 흐름을 만드는 존재가 있었을 뿐, 소유하려 애쓰지 않았다.


인간 세계로 다시 돌아오면, 어떠한 문제는 리더의 집착에서 비롯된다. 리더도 하나의 인간이고, 인간은 권력을 쥔 순간 욕심을 부리며 권력의 상실을 두려워하게 된다. 소유를 존재의 증명처럼 느끼며 권력을 도구로 삼아 마음껏 부린다.


그렇기에 지택림괘(地澤臨卦)의 육오효(六五爻)의 ’지임(知臨)’은 리더십의 본질이 ‘소유’가 아닌 ‘비움’에 있다고 강조한다. 권력은 휘두르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조직을 다스리고 타인의 잠재력을 깨우는 통로에 가깝다는 의미다.


자신의 지혜를 내려놓고 천하의 총명함을 빌리는 행위가 리더의 힘을 빼앗지 않는다. 오히려 리더의 세계를 확장한다. 쓸데없는 일을 줄이고, 리더 본연의 의사결정에 몰두할 수 있다. 붙잡을수록 좁아지고, 놓을수록 넓어지는 구조다.

물론 인간은 욕망을 드러내는 존재이기에 쉽지 않다. 손에 들어온 권력의 달콤함에 취하지 않을 자가 얼마나 있으랴? 역사는 권력의 표상을 꾸준히 보여줬고, 인간의 선택은 반복됐다. 알면서도 움켜쥐는 우매함이 오랜 시간을 채워 왔다.

다만 조직의 영속을 원한다면 리더십의 본질을 생각할 시점이다. 비움은 포기가 아니라 확장의 방식이라는 점. 권력을 소유하려는 순간 리더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울타리 안에 들어간 리더의 조직은 병에 걸리기 마련이다.

비워야 채워진다. 지혜를 내려놓아야 더 큰 지혜가 모인다. 리더는 바다다. 수많은 물길을 잡아야 온 세상 물길이 순환한다.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이러한 역설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 속 리더들이 그랬듯, 쉽지 않은 일이다.

금요일 연재
이전 20화[휴재 공지] 하루, 쉬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