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연료전지 부서에서 배터리 기술개발 부서로
수소연료전지 개발 부서를 떠나 배터리 기술개발 부서로 이동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의 Audi AG 배터리 개발 조직은 크지 않았다. 조직도에 이름이 빼곡히 들어차 있던 다른 부서들과 달리, 부서가 자리한 사무실에는 비어있는 자리가 많았고 프로세스도, 심지어는 표준화된 언어조차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수소연료전지 개발을 하며 익숙해졌던 개념들—스택 효율, 막 전극 접합체, 수소 공급 전략—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니었다. 대신 셀 화학, 에너지 밀도, 열관리, 수명 열화, BMS, 모듈 구조 같은 단어들이 매일같이 등장했다. 익숙했던 전문성이 한순간에 ‘이전 경력’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배터리라는 분야는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단순히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화학, 기계, 전기, 소프트웨어가 한데 얽혀 있는 복합 시스템이었다. 하나를 이해하면 다른 하나를 잘 모르겠고 셀의 내부 반응을 알면 열 문제를 생각해야 했고, 열을 생각하면 패키징을, 패키징을 생각하면 충돌 안전과 생산성을 고민해야 했다.
매일 배움과 일을 동시에 해야 했다. 아침에는 논문과 기술 자료를 읽고, 오후에는 실험 데이터와 씨름했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를 메모장에 적어두고, 퇴근 후 집에서 다시 찾아보는 날도 많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게 느껴졌다. 모두가 배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 혼란 속에서 나의 방향을 잡아준 동료가 있었다. 공식적인 직함은 아니었지만, 그는 사실상 나의 사수였고 그는 배터리 분야에서 나보다 경험이 많았지만, 스스로를 전문가처럼 포장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아직 정답이 없어. 우리가 만들어야 해.”
그에게서 내가 배운 것은 단순한 기술 지식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 우선순위를 세우는 태도,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였다. 그리고 어떻게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지 회의 내용은 어떻게 정리하는지와 같은 일상의 업무의 스킬도 그 동료를 통해 바울 수 있었다.
그는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지금 풀어야 할 진짜 문제는 뭐지?”
그 질문 하나로 회의의 방향이 정리되곤 했다.
또 한 번은 이런 말을 했다.
“일을 잘한다는 건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복잡한 걸 단순하게 만드는 거야.”
그 말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배터리 개발이라는 복잡한 세계 속에서, 나는 기술보다 사고방식을 배웠다. 물론 그 동료가 했던 말을 현실화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복잡한 걸 단순하게 만들기보다 단순하게 존재하는 것 마저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은 일들이 자주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불안했지만 동시에 생동감이 있었다. 조직은 작았고, 프로세스는 미완성이었지만, 우리는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만들고 있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전동화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그 일부를 직접 설계하고 있었다.
그때 이후 몇 년이 지난 지금 배터리 기술개발 부서는 어느새 회사의 핵심부서로 자리 잡았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회사의 분위기 속에서도 유일하게 기술개발부서 내에서 인원 감축이 아닌 인원 충원을 허락받은 부서라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에서 배터리로의 이동은 단순한 부서 변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산업의 방향이 바뀌는 지점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배치하는 일이었다. 한 기술에서 다른 기술로 옮겨가는 과정은, 익숙함을 내려놓고 다시 초보자가 되는 선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는 배터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전환기에 일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정답이 없는 환경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 법. 완성된 시스템이 아닌, 만들어지는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질문과 태도를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을.
산업은 빠르게 변한다.
기술은 더 빠르게 진화한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사람에게서 배운다.
그 작은 배터리 개발 부서의 책상 위에서, 나는 그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