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과 속도 사이에서

by Eins

독일에서 처음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배운 단어는 ‘프리미엄’이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에 가까웠다.


이직 전, Mercedes-Benz 디자인 센터에서 들었던 한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 고객이 기대하는 수준은,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기술적 수준보다 항상 더 높다.”


그 말은 단순한 자부심이 아니었다. 경고에 가까웠다. 우리가 만족하는 순간, 이미 늦었다는 뜻이었다. 그곳에서의 엔지니어링 문화는 철저한 기술적 완벽주의였다. 도면 한 줄, 공차 0.1mm, 표면의 미세한 질감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왜 독일 자동차가 오랜 시간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아 왔는지, 나는 그 회의실에서 체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 **Audi AG**로 옮겨 수소연료전지 개발을 거쳐 배터리 기술개발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도 비슷한 감각을 느꼈다. 실수가 쉽게 일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촘촘한 프로세스. 리뷰, 검증, 재검증. 하나의 부품이 양산되기까지 수많은 승인 단계와 문서화 과정이 따라붙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은 전통적으로 ‘기계 제조 강국’의 문화 위에 세워져 있다. 정밀한 제조기술, 높은 품질, 반복 가능한 공정. 자동차는 오랫동안 ‘정밀한 기계’였다. 그리고 기계는 완벽해야 했다.


그런데 전동화가 시작되고, 이제는 자율주행 시대로 향하면서 자동차는 점점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Software-defined vehicle**라는 개념이 보여주듯,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거대한 스마트 디바이스에 가깝다. 업데이트가 필요하고, 데이터가 흐르며, 소프트웨어가 기능을 정의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기계 공학의 완벽주의는 ‘오류 제로’를 지향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세계는 ‘빠른 배포와 수정’을 전제로 움직인다. 완벽히 검증한 뒤 출시하는 문화와, 일단 출시하고 개선하는 문화. 이 두 사고방식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다.



“그건 내 일이 아니야”


독일에서 일하며 가장 존경하게 된 부분은 각자의 전문성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깊이 파고든 동료들. 열역학, 전력전자, 셀 화학, 차체 구조… 분야는 달라도 모두 자기 분야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다.


그들과 일하며 매일 배웠다. 내가 독일 자동차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고 싶었고, 실제로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 전문성은 때때로 또 다른 장면을 만든다.


“Das ist nicht mein Thema.”

그건 내 주제가 아니야.


회의 중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프로젝트 일정이 촉박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명확했지만 담당 부서 경계에 걸쳐 있었다. 모두가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누구의 공식 책임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개개인의 그리고 각 부서의 전문성은 강력하지만, 경계가 단단할수록 유연성은 줄어든다는 것을.



수평적 문화, 느린 결정


독일 기업의 또 다른 특징은 수평적인 토론 문화다. 직급과 상관없이 회의에서 의견을 낼 수 있다. 인턴이라도 기술적으로 타당한 논리를 제시하면 진지하게 검토된다.


이 문화의 장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빠르게 수면 위로 드러난다. 다양한 관점이 모이고, 결정은 충분한 논의 끝에 내려진다. 누군가의 독단이 아니라, 합의의 결과로 움직인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하다. 결정이 매우 느리다는 점이다.


특히 지금처럼 산업이 빠르게 재편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전동화, 자율주행, 커넥티비티, 그리고 소프트웨어 중심 구조로의 전환. 글로벌 경쟁은 치열하고, 미국과 중국 기업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과감한 결단으로 방향을 정한다.


그에 비해 독일 기업은 한 번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검토와 리스크 분석을 거친다. 특히 Volkswagen 그룹 안에는 디젤게이트 이후, 기술적·법적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은 조직 전반에 깊이 남아 있다. ‘혹시 또 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라는 질문이 항상 따라붙는다.


그 신중함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 문제를 결정하는 데 정말 이렇게 오래 걸려야 할까?’



기계는 독일에서, 소프트웨어는 밖에서


요즘 산업 내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하드웨어는 우리가 잘한다.”


맞는 말이다. 정밀한 차체, 안정적인 주행 성능, 고품질 내구성. 독일 자동차의 강점은 여전히 분명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다른 게임이다. 속도, 업데이트, 플랫폼 생태계. 완벽한 출시보다 빠른 개선이 중요하다. 이 영역에서 독일 기업들은 아직 적응 중이다. 일부 기능은 미국 기업과 협력하고, 일부 시스템은 외부 파트너와 공동 개발한다.


기계적 완벽주의와 소프트웨어 속도전 사이의 괴리.


그 사이에서 독일 엔지니어들은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완벽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나는 여전히 독일 엔지니어 문화가 가진 힘을 믿는다. 철저함, 전문성, 책임감. 이 세 가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위에 ‘속도’라는 새로운 층을 어떻게 쌓아 올릴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완벽함은 독일 자동차를 세계 최고로 만들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는 완벽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완벽함과 속도 사이에서,

독일 엔지니어들은 그리고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지금 새로운 균형점을 찾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한가운데에서, 매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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