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방향을 동시에 보는 것의 비용
전동화로 향하는 길 위에서,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아직 지도를 완전히 펼쳐 들지 못한 것 같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서로 다른 답이 존재한다.
한때 전동화 전환의 최전선에 서 있는 듯했던 고성능 브랜드들조차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Porsche AG를 비롯한 일부 스포츠카 브랜드들은 전기차 전환 계획을 다시 조정하며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Mercedes-Benz Group, BMW Group,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Audi AG는 여전히 내연기관과 전기차 개발을 동시에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방향이 둘일 때, 비용도 두 배가 된다는 점이다.
내연기관의 완성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전기차라는 전혀 다른 기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엔진과 배터리, 변속기와 소프트웨어, 기존 생산라인과 새로운 플랫폼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한다. 기술적으로는 도전이고, 조직적으로는 끊임없는 긴장 상태다.
아우디 배터리 기술개발 부서로 이동한 뒤, 나는 비교적 빠르게 하나의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새로운 전기차 모델을 위한 개발 프로젝트였다. 처음 회의실에 들어갔을 때의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미래 로드맵이 화면에 펼쳐지고, 몇 년 뒤 시장에 나올 차량의 모습이 조심스럽게 공유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참여한 차가 언젠가 도로를 달리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엔지니어에게 그것은 특별한 감정이다. 자신이 기여한 기술이 실제 세계에서 움직이는 순간을 상상하는 일. 수많은 계산과 테스트, 회의와 수정 끝에 하나의 제품이 현실이 되고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된 배터리가 들어간 자동차를 보는 경험…그 기대감이 때로 일을 버티게 만드는 힘이 된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오래가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회의의 주제가 기술 문제에서 시장분석으로 이동했다. 경쟁사 동향, 판매 전망, 플랫폼 전략, 비용 구조. 같은 데이터를 두고도 해석은 조금씩 갈렸다. 배터리 공급사와의 현장 미팅을 하는 등 활발한 프로젝트 업무는 지속되었지만 스멀스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무용론이 올라왔고 어느 날, 프로젝트 일정이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잡히던 회의가 취소되었고, 공유 폴더는 조용해졌다. ‘실패’라는 단어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전략 재검토, 포트폴리오 조정, 우선순위 변경 같은 표현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끝났다.
부서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모습을 보며, 솔직히 아쉬움이 컸다. 아우디로 이직하면서 내가 바랐던 것은 단순했다. 내 손을 거친 개발이 결국 어딘가의 도로 위를 달리는 것.
엔지니어에게 프로젝트는 단순한 업무 단위가 아니다. 시간과 고민, 그리고 자신의 일부가 담긴 과정이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사라진다는 건 일정 하나가 지워지는 일이 아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가 함께 사라지는 것에 가깝다.
나는 곧 새로운 프로젝트로 이동했다. 새로운 목표, 새로운 일정, 새로운 방향.
그리고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이것이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도 여러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멈추고, 다시 시작된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 안에서도 수정은 반복된다. 목표 사양이 바뀌고, 출시 시점이 조정되고, 기술 우선순위가 재배열된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전동화 전환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다. 산업 전체의 구조가 동시에 움직이는 과정이다.
시장 수요는 예측하기 어렵고, 인프라는 국가마다 다르며, 배터리 가격과 규제 환경은 계속 바뀐다. 어느 방향이 정답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는 불안이 남는다.
우리가 방향을 고민하는 동안, 누군가는 이미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을 바라보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너무 신중한 걸까, 아니면 아직 최선의 길을 찾고 있는 걸까.
전동화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하다. 기술적 난이도 때문만이 아니다. 결정해야 할 것은 너무 많고, 동시에 잃을 수 있는 것도 너무 많다.
독일 자동차 산업은 오랜 시간 완벽함을 통해 신뢰를 쌓아왔다. 그래서 쉽게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모습이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잘못된 선택 하나가 브랜드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멈추고, 다시 시작되는 사이에서 나는 점점 이것을 배우고 있다. 전환기의 엔지니어란 정답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도 계속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언젠가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차가 어떤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방향을 찾기 위해 반복했던 수많은 시도들이 결국 그 한 대의 자동차 안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우리는, 아직 그 길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