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의 길에서 숨을 고르는 회사들

by Eins

도로 위를 지배하던 내연기관의 웅장한 배기음이 머지않아 과거의 유산이 될 것만 같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자동차 브랜드는 앞다투어 ‘100% 전동화’라는 장밋빛 미래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자동차 회사들이 최근 들어 슬그머니 엑셀에서 발을 떼기 시작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테슬라처럼 처음부터 전기차로 출발한 신생 기업과 달리,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엔진을 다듬어온 전통 브랜드들에게 ‘완전한 전동화’란 뼛속까지 체질을 바꿔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리고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전기차 수요 둔화—이른바 캐즘—는 이들에게 숨을 고를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멈춰 선 전동화의 질주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볼보다. 2030년부터 전기차만 판매하겠다는 급진적인 목표를 세웠던 이 스웨덴 브랜드는, 2024년 9월 결국 그 선언을 공식 철회했다. 현실의 고객 수요를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함께 팔겠다는 실용적인 노선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볼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텔란티스, 포드, 재규어 랜드로버 등 수많은 브랜드가 호기롭게 내걸었던 전동화 청사진을 조용히 수정하며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럭셔리 스포츠카의 딜레마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단연 럭셔리 스포츠카 시장이다. 포르쉐를 필두로 애스턴마틴, 맥라렌, 람보르기니, 페라리가 포진한 세계다.

초반만 해도 포르쉐는 전동화의 모범생처럼 보였다. 아우디와 공동 개발한 J1 플랫폼 기반의 첫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는 아우디 e-tron GT를 훌쩍 뛰어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에 고무된 포르쉐는 베스트셀러 마칸마저 과감하게 전기차로 출시했다.

하지만 축포는 너무 일찍 터졌다. 전기 마칸과 페이스리프트된 타이칸은 초기와 같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중국 시장에서는 비슷한 성능에 가격이 5분의 1 수준인 현지 전기차들에 밀려 판매가 급감했고, 북미 시장 부진과 관세 문제까지 겹쳤다. 결국 2025년 포르쉐는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5% 급감하고 영업이익률이 1%에 머무는 전례 없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26년 새롭게 부임한 CEO는 결단을 내렸다. 급진적인 전동화 전략에서 한발 물러서 당분간 내연기관 라인업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자체 배터리 생산 계획도 연구 조직만 남긴 채 사실상 백지화했다. 스포츠카의 생명은 숫자가 아니라 심장을 울리는 배기음과 기계적인 교감에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으로 돌아온 셈이다.


폭스바겐 그룹의 최상위 브랜드 람보르기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준비 중이던 첫 순수 전기차 란자도르의 출시를 미뤘다. 정체된 시장에서 람보르기니 엠블럼을 단 전기차가 기대만큼의 수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고용량 배터리와 엔진을 결합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에 집중하며, 환경 규제와 퍼포먼스 사이의 영리한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다.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고성능 럭셔리카일수록 전동화가 더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브랜드의 영혼—폭발적인 진동, 청각을 자극하는 배기음, 그 모든 기계적 감성—을 하루아침에 모터로 대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동화를 잠시 늦춘다고 해서 고객들이 이 브랜드들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드는 장인들이니까.

다만 자동차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작은 기대 하나는 남겨두고 싶다. 잠시 숨을 고르는 이 시간이 그들에게 단순한 후퇴가 아닌 도약의 준비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훗날 다시 전동화의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포르쉐와 람보르기니가 만들어낼 ‘궁극의 전기 스포츠카’는 과연 어떤 짜릿함을 선사할까. 잠시 늦춰진 속도만큼, 더 완벽해져 돌아올 미래의 머신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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