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성격이나 화법에 크게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상대와 나 스스로에게 오해를 사는 법을 줄인다.
혹시나 내가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상대의 오해를 살 부분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웬만하면 포장 없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화법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사람이 따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은근하게 나의 말에 방어를 하는 경우들 말이다.
분명 내가 하는 말은 사실에 의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내고 있음에도 어쩐지 나의 의견이 상대에게 차지 않음을 느끼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곤 했다. 상대방들은 에둘러 포장된 감정적인 공유에 많이 치중하며 자신의 의견을 합리화했다. 그럴 때면 내가 했던 말들이 무색하게 여겨짐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내가 팩트폭행을 했더래도 나의 말은 상대를 향한 배려가 가득한, 나름의 심사숙고한 내용들이었는데 그런 내 마음과는 다르게 튀어나오는 직설적인 말들에 상대는 나의 마음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근래에는 상대에게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남편에게 이런 상황을 많이 공유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대해서 점검을 받는데 '여보는 정말 T야'라는 말을 매번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 앞에서도 나는 사실관계에 치중하여 이야기를 하는 경우들이 참 많아서 결혼 전 MBTI를 전혀 모르던 남편이 나를 만난 뒤 MBTI 성향을 많이 알고 나의 말에 성향을 진단해 주며 조언을 곁들인다.
예전 같으면 그런 조언들이 '네가 뭔데?'라고 무시했을법한데 최근의 몇 번의 경험으로 남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돌아보면 인간관계로 피로감을 느낀 적이 없던 이유는 이런 나의 성격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게 된다. 뭐든 확실히 '예', '아니요'로 나의 상태를 표현함으로 인해 모호하게 태도를 유지하는 이들은 내게 큰 호감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 여긴다. 그래서 나의 주변에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고민과 피로감을 호소할 때면 크게 공감하지 못하기도 했다. 왜냐, 나에게는 그런 피로한 관계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이 내 곁에 남을 거라는 확신이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강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 보니 좋은 사람을 만나기보다 나쁜 사람을 덜 만나는 게 답임을 느끼게 된다. 두 마음이 공존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반면 개새끼를 덜 만나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렇다고 3N년간 굳어진 나의 성격을 조금 유하게 바꾸는 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나의 성격에 대해 탓만 하지 말고 이런 나의 성격으로 인해 내 인생이 조금 윤택해졌음을 인정하고 내 주변에 나에게 조언을 하며 이전과는 다르게 나의 말투나 태도를 다듬어줄 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