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이 밥 먹여 줄 힘은 준다!
언제부터인지 주변에 이야기를 한다. 찌질한 것도 나이 때가 있는 거고, 구질한 것도 어울리는 상황이 있는 법. 때와 상황을 구분하지 못한 채 찌질 구질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나 또한 때와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고 찌. 구 할 때가 많았으니깐. (지금은 좀 꼿꼿해졌다)
올해 2월부터였을까. 그전부터였던 거 같다. 나는 영상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져서 영상제작을 기획하려고 의지가 활활 불타올랐다.
내가 낸 아이디어는 큰 호평을 받았고, 기술자만 구해지면 (당시 나는 프리미어를 다루지 못했다) 바로 제작 돌입이었다. 그러나, 기술자는 하고 싶지 않아 했고, 우리는 그 사람을 맞춰주기 위해 어르고 달래고를 반복했다.
나중에는 어르고 달래고 연락하는 것조차 나에게 짜증으로 닥쳤다. 단지 영상을 제작하는 재능 하나만 갖고 있다고 오만한 행동을 하는 그 사람의 모습에 나는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으니깐 이라며 참았다.
당시 나는 당연하게도 모르면 아는 사람한테 납작 엎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의 마음보다 그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의 영상이 나에겐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영상을 제작해본 경험이 있는 그 사람은 우리를 진두지휘 할 수 있는 팀장의 위치가 되었다.
내가 기획력이 좋고, 팀을 이끌 리더력도 있었지만 그 사람이 당연하게 팀장이 되었던 말던 나는 상관없었다.
그 사람이 평판이 좋든 나쁘든 그 사람이 가진 전문적인 경험은 우리의 조직력을 만드는데 중요했고, 지식이나 기술도 많았기에 존중해줬다.
그렇게 어떤 영상물을 찍을 것인지 회의를 했다. 그때부터 내 자존심이 조금씩 갉아먹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디어가 많았던 나는 이런저런 내용 구성을 이야기했는데 내가 하는 말들에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대고, 본인의 머릿속으로 말이 안 되면 안 돼!라는 말부터, 아니!라는 말부터, 그리고 한숨.
그런 상황에서 나 또한 설득하며 이해시키며 이야기했지만 어쩐지 내가 내는 의견이나 말은 번번이 부정적인 반응으로 되받아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전에도 같이 작업을 했는데,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내가 지시한 내용이 더 나은 영상으로 제작이 되었다. 물론 나는 전문적인 과정으로 배워본 적이 없고, 머릿속으로 구상만 해대서 그걸 설명하고 표현하는 것이 매끄럽지 못하다. 그러나 그런 몇 번의 과정 속에서 영상물은 굉장히 호평을 이루며 탄생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여전히 나의 의견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안돼! 안돼! 만을 외쳤다.
내가 낸 의견들을 제대로 된 기획서를 만들어서 어떤 내용으로 할지 참가자들에게 설명해보자고 했고, 다소 엉성하지만 큰 테두리들을 만들어보았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매 회 어떤 에피소드를 넣고, 어떻게 흥미 유발을 시킬 것인지. 하나하나 채워갔다.
온전한 기획서는 아니었다. 우리끼리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큰 방향 설정만을 제시하는 내용들이었다.
대학교 시절에 내가 하던 일이 피티 만들고 기획서 제출하고 발표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이 영상팀에 본인의 아이디어나 뛰어난 연출 구상력 혹은 기획력에 대한 힘은 보태주지 못할망정 제출된 기획서를 통해서 '너 기획서가 뭔지 모르냐?'라는 한소리를 듣고 빡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빡친 마음을 정갈한 기획서로 보여줬음에도 그 사람은 여전히 나의 의견에 부정적이었다.
솔직히 진이 빠졌다. 그 사람의 그런 반응으로 인해 나도 포기가 되었다. 영상을 제작하는 것에 신이 나서 한다고 자원했는데 도움이 되진 못하더래도 적당하게 타협할 줄도 알았으면 좋겠는데 모두의 마음을 짓밟아 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때 '자존심을 짓밟아가며 사람 관계를 유지하지는 말자.'라고 스스로에게 새겼다.
나는 착한 사람도 아니고 인내심이 엄청 많은 사람도 아니지만, 관계에 있어서 관대한 사람은 맞다.
사람 관계가 틀어지면 그 사람을 탓하기보다 '내가 더' 이해하고 보듬어 주려고 애쓴다.
당연하게 영상 제작이 무산되었고 나는 여느 날처럼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와서 보이는 소파에 잠시 누웠는데 문득 '차단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삭제해야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날 그 사람과 부딪힌 것도 아니었고, 영상 제작 카톡방에 알람이 마구 울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잠시 소파에 누워있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잠깐의 생각이 스쳐가는 와중에 나는 행동으로 옮겼다.
관대한 관계를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불쑥 '안 되겠다. 정리하자'라고 결정 내버렸다.
물론 그 사람에 대해서 쌓인 인내심이 바닥을 쳤기 때문에 그런 단호한 결정이 갑자기 난 거지만, 그 순간 깨달아진 거지.
하루에 오만가지 잡생각이 드는 그 순간 깨달아진 거지. '정리하자'라고. 빠른 결정은 빠른 실행을 선보인다.
지금껏 나는 개소리를 사람 소리로 착각하고 받아왔다. 그렇게 연락처에서 삭제하고, 차단하니 마음이 정말로 편해졌다. 더 이상 그 사람과 연결고리가 없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앞으로도 엮일 일이 없다는 것이 나는 더더욱 좋았다. 무척이나 홀가분했다.
매번 이런 건 아니다. 매 순간 정 없이 정리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지만 최근에 내가 자존심을 내버려가며 이 사람에게 매달릴 매력적인 이유가 있는가? / 나는 내가 손해를 보고 있음에도 왜 바보처럼 호구처럼 이 사람을 받아주고 있는 것일까. 하는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확 들었다.
그렇다 그간 나만 지랄 발광을 해댔다. 우리가 낸 아이디어를 같이 실현시키고 같이 보람을 느끼고자 했던 마음은 이미 온데간데없다. 난 의지력이 굉장히 높은 사람임에도 이렇게 사기를 떨어뜨리는 사람을 마주하니 맥을 영 못 추더라.
난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내 곁을 내줄 마음도 의향도 없다. 그 사람은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일 뿐이다.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도 더러 해보았다. 그렇지만 복수한들 무엇하리.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인 걸. 하지만 그 사람에게 복수할 마음보다는 그 사람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프리미어를 독학했다.
결국 그 사람이 나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내 스스로 좋은 과정을 거쳐 유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들로 그 사람을 예쁘고 보기 좋게 포장하고 싶진 않다. 여전히 별로다 ^^ㅗ
나에게 그 사람이랑 일해보자. 그 사람한테 연락 한번 해볼래?라고 물어오는 사람이 더러 있다.
난 단호하게 싫다고 답한다. 나의 자존심을 짓밟아 가며 나 스스로를 소용돌이로 몰고 가게끔 하는 기분을 나는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말만 하면 목소리를 높이고, 말만 하면 안 돼! 싫어! 아니! 를 답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사는 게 정답인 거 같다. 상식이 통하지 않으면서 불퉁한 마음만 가득하게 가지며 누군가 계속 달래주고 얼러주는.
어느 정도 나를 지켜가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난 어른과 어른으로 만나서 대화가 통하고 의견을 조율할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래서 사람에게 함부로 굽히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구? 자존심이 밥을 못 먹게는 할지언정 밥 먹을 힘을 나게는 한다. 뭐라도 씹을 수 있는 힘은 나게 한다.
내가 나를 잘 모르건 잘 알건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나다. 누구도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할 순 없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지키려면 하나씩 구분해 나가야 한다. 나에게 유익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게 구분해 나갈수록 나의 내면과 자아가 다져지고 관계에 대한 해방감이 든다. 그 해방감은 나의 삶에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 관계에 대해 관대할 예정이지만,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오는 관계에 대한 막막함과 풀리지 않은 답답함으로 인해 손절할 타이밍엔 가감 없이 하려 한다. 쓸데없이 낭비되는 나의 감정 소모보다는 씹을 힘으로 감정 소모를 하는 것이 더 득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