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스케치_ 끝내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한 이름, 사랑합니다
그날은,
2025년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일요일이었고,
30여년만에 삶으로 전도한 듯 하여 기쁜 날이었다.
10시30분까지... 내가 다니는 교회로 온다는...
태어나 처음으로 교회간다는 후배녀석을 볼 생각에
약간 긴장도 되었다.
평소엔 마을버스를 탔는데, 그 날은 차를 타고 교회에 갔다.
좁은 주차장에 들어갔고, 나가기 쉽게 주차를 하는 도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장모님이셨다.
"아버지 쓰러지셨어... 지금 119와서 병원으로 가셨는데, 심장마비가 왔었고...강남성심병원 응급실..."
(사실, 당황하셔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았지만, 요약하면 그랬다)
"저희 바로 병원으로 갈게요.."
만나기로 한 후배에게는 급해서 바로 가야한다고 사정을 얘기했다.
외려 그 후배가 울먹이며 어떻게 하냐고 물었지만,
실감은 안났다. 뭔가 확 몰아치는 느낌만 들뿐.
평소에 듣는 플레이리스트는 차분한 발라드였지만, 소리를 더 줄였다.
기껏해야 사랑의 세레나데일텐데... 들으면 안되는 분위기였다.
나보단 아내가 더 상심이 클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나에겐 장인어른이라기보다.. 그냥 아버지였으니까.
...
23년 전에 서울아버지를 처음 뵈었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종로에서 떡바구니를 준비해서... 여자친구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오바 육바 였는데...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집안 식구가 될 지도 모르는 면접으로 여겼다.
현관문이 열리고, 처음으로 뵌 분이 아버님이었다.
런닝에 반바지를 입으셨고, 우리를 맞아주신 후 거실로 복귀하셔서
신문지에 깔아놓은 마늘을 다듬으러 다시 앉으셨고, 잠깐 기다리라 하셨는데...
자라오면서 한 번도 뵌적없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부산의 아버지는 주방에 안가신다.
비법을 전수하듯... 남자는...주방에 가는거 아니야... 하신다. 정말 그러신다.
거실에선 바둑을 복기하시거나, TV를 보시거나 그러신다.
1년에 한 두번.. 요리쇼를 하실 때는... 거실에서 상을 깔아놓고, 칼국수 반죽과 썰기 등을 보여주셨다.
말그대로 퍼포먼스였다.
부산의 아버지는 그렇게 역할을 하셨다. 일찍이 아버지의 아버지를 여위셨고,
할머니의 유일한 아들로서, 귀하게 크셨고, 거기다 경상도였다.
아버지 잘못은 아니지만, 가족입장에서는 꼰대같은 사람으로 어른이 되신거였다.
나이가 같은 서울의 아버지는, 똑같이 월남전쟁에 참전하셨지만...
부산의 아버지와는 달리 국가 유공자도 아니셨고, 공무원 연금도 없는,
직장인으로 정년퇴직하시고, 잠시 창업하셨다가, 지금은 동탄의 아파트를 주택연금으로 받으신다.
젊었을 때는 영업직에도 계셨고, 자식들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생겨도,
그런 일에는 신경쓸 틈도 없을만큼 바쁘셨다 한다.
오로지, 장모님께 올인하셨던 아버님...
장모님이 이거해라 저거해라면... 군말없이 행동하시는,
노인이 되었을 때 잘해줄 사람이 어머님밖에 없다는 걸 아셨는지,
가정적이고, 인자하신 아버님.
뒤 늦게라도 자식들 위해 늘 기도하시고,
큰 소리없이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말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분.
서울의 아버지는 내게 그런 분이셨다.
쓰러진 이유는,
5년전 수술하신 인공심장판막에 혈전이 쌓여서 심정지가 와서였다.
평생을 헌신하셨던, 교회에서 원로 장로님들이 모인 방에서
스르르 쓰러지셨고, 머리를 부딪힐까 머리를 잡아주셨다고는 했는데,
CPR(심폐소생술)이 15~20분가량 늦었다.
그 시간에 모든 손상이 왔다.
의식이 없었고, 음식물이 폐로 들어가 폐렴이 생겼고,
신장에도 문제가 생겼다.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했으나, 의식은 돌아오지 않으셨다.
4일간 뵙지도 못하고, 병원에서 대기했다.
하루에 30분간 딱 1명만이 면회가 가능했다.
난 아들이지만, 사위여서... 순서가 밀렸다.
생전에 연명치료를 거부하신 유지를 받들었으나,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것이,
지금 하는 모든 치료를 멈추고 인공호흡기를 떼어야 하는 행위인 줄 몰랐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치료를 멈추는 것인데도, 가족의 입으로 그렇게 해달라 말하는 건...
너무 죄스러웠다.
의식이 없어 고통을 느끼지는 못하신다고는 하지만,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의사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 한다.
그래서, 기적이 있을 수도 있다 한다.
주사기를 꽂아댄 아버지 손과 발은 이미 괴사되었고, 청색증이 생겼다.
혈압이 약해서, 피를 공급해야한다.
신장이 나빠져 투석을 하고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계속 살려두시고 있다.
하루에 얼마의 치료비가 들어갈까? 이런 못난 생각도 한다.
아버지랑 같은 증세인데도 조용히 호흡하는 사람이 옆에 누워있다.
친자식들은 차마 말을 못하고 있다.
사위따위가 치료를 멈추고 보내드리자는 말을 하기엔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면회순서가 돌아왔다.
의식이 없는 아버지가 눈을 뜨셨다.
그러곤 헐떡이신다.
의식이 있는건가 생각했다.
의식이 없다한다.
머리, 목, 옆구리 거의 모든 곳에 관이 꼽혀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고통을 못 느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크게 불러보려했는데, 목이 매였다.
말은 안나오고, 눈물만 나왔다.
그 와중에 관을 빼었다가 피를 넣는다.
간호사와 젊은의사에게 물었다.
의식이 돌아올, 살아돌아올 가능성이 있느냐?
없다한다.
어머님과 딸 둘, 아들하나, 사위하나, 며느리 하나, 손녀 하나, 손자 둘...
이렇게 유족이 다 모였다. 10살짜리 손녀는 안왔다.
어머님께서...이렇게 혼자서 치료받는 의미가 없다고,
차라리, 온 가족이 모여 아버님 보내드리자 하신다.
베테랑 의사는 이제야 가족의 의도를 이해한건지,
젊은 의사에게 방을 하나 잡으라 한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의 빈방 하나로 옮겼다.
거기서, 어머님부터 처형, 처남, 그리고 와이프가
아버님에게 하고싶은 말을 했다.
"여보 없이 어떻게 살라고~ 고생 많았어~ 천국에서 봐요..."
"아빠.. 아빠한테 잘 못해서 미안해."
"아버지... 수고 많았어요..."
"아빠... 아빠가 우리아빠여서 고마웠어요.."
식구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날 창밖만 보게했다.
눈물은 막을 수 없이 흘렀고,
아버님은 그렇게 부인과 자식들의 고백을 들으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셨다.
난 끝내 큰 소리로 외치지 못했다.
내 아버지보다 어쩌면 더 좋아했던 내사랑의 아버지...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보고싶어요. 감사합니다....
아직, 너무 많은 말을 못했는데....
안녕히 가십시오. 아버님....
천국에서 다시 만날게요.
그리고, 아버님 딸 잘 챙길게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