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계급과 서민들의 취미
1990년대까지만해도 골프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사장님들의 사치스런, 그들만의 우쭐한 취미였다. “사장님 나이스샷~~!“ ”언제 이렇게 연습하셨습니까?“ ”필드에 나오니 회사 생각 안하고 참 좋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계약건은 전무님께서 잘 준비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끝나고 좋은 자리 마련했으니 기대하셔도 좋을겁니다“… 이런형태로, 최소한 대기업 임원이상의 사람들의 은밀한 정보를 얻거나, 비공식적인 업무가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다고 여겨졌다.
반대로 모든 걸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영업이라는 정식업무 범위였고, 골프 외에도 술도 잘 먹어야했고, 사전 스케쥴 조율하고, 새벽 일찍 모셔와야 했고, 라운지 조식을 주문하고, 그들보다 먼저 움직이고, 라운딩 후엔 지역 맛집과 술집을 꾀차고 있어야했고, 결재하고, 안전하게 댁에 들어가는 것까지 다 챙겨야하는 고된 일이었을거다. 그들이 우쭐할 수 있게 우쭈쭈 해주는 낯간지러운 멘트를 전체시간 내내 자연스레 해줘야 됐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접대를 하고, 접대를 받는다고 했지만, 어느 한쪽도 돈을 잃는다고 생각지 않았고, 투자나 사례(謝禮)라 여겼다. 한번의 라운딩은 회사간의 거래에 대한 기록이었고, 다음 거래의 투자이자 약속이었고, 인맥관리의 시발점이었다. “느그 서장이랑 사우나도 가고~ 밥도 묵고~ 마 다했어~~!” 할 수 있는 꺼리가 되는 거였으니까.
시간이 흘러 골프 대중화의 큰 물결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회원권이 없는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는 대중형 골프장이 생겼고, 그린피(골프장 이용료)도 내렸고, 저렴한 퍼블릭 기준으로 카트비/캐디비 다 합해도 뭐 인당 20~30만원이면, 정말 저푸른 필드에서 회장님 놀이를 할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굳이 영업이 아니라도 개인적인 취미로다가 접근한다해고 아주 큰 무리가 안되는 그런 날이 온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근무했던 제주도 현장에서는 울현장 경비아저씨 카톡 프사에도 골프장에서의 스윙장면과 연습장에서 맥주 한잔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지게차 기사님도 나보다 자주 필드에 나가시고, 골프도 더 잘 치시고, 현장 막내 기사도 스크린에서 언더를 쳤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아는 필드의 라운딩을 하기 전에 준비해야할 게 많다. 먼저, 칠 줄 알아야하니까 연습장에 가서 레슨도 받아야되고, 업무시간 이후에 열심히 훈련도 해야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골프채도 있어야되고, 적절한 옷도 구비해야 된다. 시간도 많이 할애해야 한다. 왠만한 사람들 명절에 고향가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여전히 높은 그린피와 부대시설 비용으로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당구는 뭐라할까... 공의 사이즈 빼고는 모든 면에서 작다고 해야할까?
왠만한 동네에는 당구장이 있고, 장비도 필요없고, 그냥 걸어서 가면 된다. 당구를 치는 도중에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심지어 음료수는 서비스로 준다.
입에 담배를 물고 치던 시절은 지나갔고, 별도의 흡연장에서만 담배를 피워서, 예전의 어둡고 침침한 깡패소굴 같은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당구의 위상도 높아져서 1998년~2010년 동안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었고, 2030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정식종목으로 재체택되었다. 스포츠채널에서는 당구와 당구예능을 보여주는 채널도 여러개가 생겼고, 인기 많은 선수들은 TV광도에도 출연하는 등, 여성과 청소년에게까지 나름 친근하게 어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30~40년전에 비해 당구비용은 올랐지만, 물가상승에 비해 그리 오른 것은 아니다. 만원 안팎이면 한 게임 칠 수 있다. 점심시간 잠깐 짬내서도 칠 수 있고, 여러명이 단체로도 가능하고, 4구/3구/포켓볼 등 형식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과도한 탄식과 흥분은 공공연하게 금지되어 있지만, 억지로 아부하듯 응대할 필요없이 자연스런 감정표현이 가능한 스포츠다. 두뇌회전에도 도움이 되고, 골프처럼 무리하게 내리쳐서 엘보가 나갈 일도 없다.
한편, 두 스포츠가 공통적으로 가진 특징들이 있다.
1. 함께 즐기지만 자신만의 점수가 있다.
2. 상대가 플레이할 땐 정숙하게 지켜보고, 운이 좋았을 땐 고개숙여 미안함을 표현해야 하는 매너경기다.
3. 실력이 좋아도 멘탈이 무너지면 절대 이길 수 없다.
4. 실력차가 많이 나면 재미가 반감된다.
5.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신, 핸디캡을 적용한다. 핸디캡 기준은 음 글로 적기에도 손이 아프지만, 나름 간략히 말해본다.
골프의 경우는 18홀 72타 기준으로, 72~81타까지는 한자리수 핸디캡이 적용되어 소위 말하는 싱글이라고 하고, 81~90타까지는 1홀마다 보기(+1타)를 했을 때를 기준으로 보기플레이를 한다고 하고, 100타 언저리로 치면 100돌이라고 하고, 처음 치는 사람들은 이제 머리를 올렸다고 한다. 만약, 싱글 치는 사람과 100돌이가 함께 라운딩을 하면, 비슷한 위치로 공을 보내지 못해, 100돌이는 싱글치는 사람과 대화할 시간이 없고, 저 멀리 잃어버린 공을 찾으러 다니느라 헥헥 거리기만 할 테니 공을 함께 치는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당구는 사실 G.A(General Average) 기준으로 세밀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이를 실제로 기록에 기반하여 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당구의 수지는 대부분 4구를 기준으로 했다. 큣대를 처음 잡으면 30부터 시작했고, 10점당 1개의 (주판)칩을 내리고 올렸다. 길을 어느정도 알면 100, 조금씩 잘 칠 때마다 120, 150, 200, 250, 300,... 이런식으로 50점씩 올라가는 수준으로 200이상이면 3구(3쿠션)를 칠 수 있을 정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점수기록도 디지털로 간편하게 기록되고, 이전 플레이를 되돌려 볼 수도 있는 최첨단 장비가 대부분 갖춰져 있다. 핸디캡 적용도 대다이(선수용 정식다이) 기준으로도 많이 책정한다. 사구 수지 250기준- 3쿠션 핸디캡 17~18점, 300점 기준은 19~20점, 400점 기준은 21~23점 기준... 이런 식인데, 4구든 3구든, 딱 정해진 기준은 없고, 동호인들 모임별로 다르고, 특히 지역별로 심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바닷가 지역인 인천 같은 경우, 다른 지방보다 핸디를 적게 놓는 걸로 유명해서, '인천 짠물다마'라는 별명도 있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는 다른 지역보다 4구기준 거의 절반 수준이라 보면 된다. 80이나 100정도의 동호인이 타지역 250정도 되니까 말 다했다. 어찌보면 상당히 이상하지만 막상 플레이하면 거기에 맞는 핸디가 자연스레 정해지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사기당구'와 구별하기가 힘드니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현재 나는 골프는 내려놓고, 당구에 매진하고 있다. 함께 하는 동호인들이 골프에 대해서 자꾸 물어보면서 글로 한번 써보라고 하기에, 골프와 당구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어느정도 쉽지않게 설명드렸다.
요약컨데, 골프는 지배계급?의 취미이자 스포츠이다. 아직 자신이 사업상 인맥관리를 해야하거나, 접대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거나, 영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골프를 도전하거나, 계속 쳐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그런 입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횟수를 줄여서 한달에 한번, 분기에 한번정도 마음 맞는 친구들이나 동료들끼리 즐기는 것이 재정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무리되지 않는 선이라면, 적당히 감각을 잃지않고 사는 것이 좋을 것이고, 골프 못치면
부담없이 지인들과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두뇌도 발달시키기 위해 가까운 당구장에서 가볍고 즐겁게 당구를 치는 것, 아주아주 행복한 일탈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강력히 당구를 추천한다.
두 운동들은 분명 취미이자 스포츠이기에 무엇보다 마음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오래동안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저는 오늘 저녁 당구를 칩니다. 여러분들 일상에 좋은 취미가 생기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