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문학_ 내가 선택하는 삶과 직업 part 3.
많은 이들이 '목표 설정'과 '실천'을 성공의 열쇠로 꼽는다.
본업을 지키며 새로운 가능성에 투자하라는 조언은 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지침이다.
그럼에도 삶의 진정한 변곡점은 이론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다.
억지로 쥐어짜는 시간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기울고 손길이 머무는 일.
그런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길로 접어들 가장 적절한 때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확신은 명료함에서 온다.
스스로에게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함 속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아직 가야 할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시작은 결국 위태로운 여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말을 살펴보자.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잘 이해한 게 아니다” - 아인슈타인
“리스크를 감수하고 무모하게 무언가를 실행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 일론 머스크
아인슈타인은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면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했다.
나의 인생 행로 역시
누군가에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갈라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 분명한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지금은 더 깊이 침잠하며 시간을 견뎌야 할 때다.
일론 머스크가 말하는 무모한 리스크의 감수는
중년의 문턱에서 새 삶을 설계하는 내게 다소 결이 다른 이야기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가 강조한 것이 '무모함' 그 자체가 아니라 '후회 없는 삶'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침없는 실행력 밑바닥에는 자신만의 명확한 해석과 결단이 깔려 있을 것이기에,
결국 아인슈타인의 '이해'와 머스크의 '실행'은
하나의 뿌리에서 만난다는 확신이 든다.
... (결론적으로 지금의 난)
마음의 정리와는 달리,
여러 갈레의 무빙워크 중에 등떠밀리듯 하나에 올라탔다.
뛰쳐나오거나 머물거나의 선택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건 내가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다만, 무모하게 점프하여 이탈하는 실행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AI시대에 걸맞게,
자동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난 있었던 것 같다.
우려보다 훨씬 좋아서, 참 다행이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