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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빈 Aug 26. 2021

디자인 학부생, 취준생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

떨어진 게 아니라 안 맞는 거예요

면접 경험만 15번


슬픔에는 5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던가. 부정-분노-타협-우울을 넘어 상황을 수용하고 해탈하기까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달려왔다. 나중엔 약간의 재미까지 느끼며 도장깨기처럼 면접을 다니는 경지에 이르렀고... 마침내 마음이 통하는 회사를 만나 지금은 IT기업의 브랜드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1년이 내 인생 중 가장 많이 성장하고 스스로를 가장 많이 알아간 시간이었다. 그 시행착오와 배움을 디자인 학부생, 취준생에게 공유하기 위해 글로 남긴다.



저에게 맞는 회사는 도대체 어떻게 찾나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요?



일단 피드백을 구하자


첫 번째 단계는 바로 피드백을 구하는 것. 방구석에서 장인처럼 한 땀 한 땀 포트폴리오를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드백받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주니어 디자이너일수록 내 실력이 부끄러워서, 혹은 이미 혼자서도 충분히 잘한다고 생각해서 혼자 고민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이런 자세부터 바꾸는 게 시작이다.


나도 피드백을 자주 구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열심히 찾아다니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이전에 인턴으로 일했던 스튜디오에 정규직으로 지원한 적이 있었다. 아쉽게 불합격했고, 이후 감사하게도 실장님께서 '포트폴리오를 리뷰해줄 테니 사무실에 잠시 놀러 오라'라고 따로 연락을 주셨다. 누군가에게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피드백받는 일이 익숙지 않았기에 긴장 반 기대감 반으로 찾아뵈었는데, 처음 들어보는 날카롭고 구체적인 조언에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쓴 기억이 난다. 현실을 직시하며 마음은 살짝 아팠지만.. 그 피드백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 그 맛을 본 이후엔 현업에서 활동 중이신 선배 디자이너분들께 연락해서 자주 조언을 구하며 포트폴리오를 다듬어 나갔다. (이렇게 하다 보니 나중엔 '너는 다른 사람 의견을 늘 들어보려 하는 게 큰 장점인 것 같아'라는 말까지 듣게 되더라.)


여기서 중요한 건 칭찬보다 비판을 환영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그래야 작업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고 남는 게 생긴다. 멘탈이 약하거나, 반대로 고집이 좀 세더라도 이런 자세를 갖추기 위해 행동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실제로 비판을 건강하게 수용하는 태도가 길러진다. 이런 태도는 취준뿐 아니라 현업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되니 꾸준히 노력해보자.




보답하자


커피 한 잔이든, 든든한 밥이든, 혹은 맛있는 술이든 보답을 해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자.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배움을 공유해주신 분들이다. 마음이 조급하거나 힘들수록 필요한 것만 구하고 그에 대한 보답을 전하는 걸 소홀히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겪어보니 베풀수록 더 많이 돌아오더라.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을 빌미로 실제로 만나서 얘기하면 더 많은 꿀팁을 얻을 수도 있다. 또 나중에 당신도 현업에서 일하게 되면 서로 업계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든든한 동료가 될 수도 있다.




자기 객관화를 해보자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는 중인데,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지, 어떤 직무를 맡고 싶은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회사도 인재가 고프고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싶다. 또 스스로를 아는 만큼 회사에게 내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 내 경우엔 이 부분이 정말 힘들었다. 스타트업, 디자인 스튜디오, 그리고 대기업에서 모두 일해본 경험이 있었고 각자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았다. 업계를 정하기도 어려운데 하필 제너럴리스트라 어떤 직무에 지원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다양한 그래픽 작업도 재밌지만 꾸준히 한 브랜드를 다듬는 것도 매력적이고, 비주얼도 비주얼인데 프로덕트 디자인도 참 보람찰 것 같고..


다행히도 만약 당신이 피드백 단계를 잘 수행했다면 조금은 자연스럽게 자기 객관화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피드백을 구하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 틈틈이 정리해두자. 내가 리스트를 만들며 정리해뒀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내 디자인 강점이 무엇일까

어떤 부분이 약한가

보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나

혼자 일하는 것보다 조직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

지원하는 회사와 내 역량이 비슷한 수준인가 (or 이 회사에 이 정도 역량이 필요한가)

지원하는 직무 관련 경험이 있나 (or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

이 회사에서 내가 공감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or 내가 회사의 이런 방향에 공감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가 (or 내가 이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까)

나는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일까

다양한 단기 프로젝트가 좋을까, 진득한 장기 프로젝트가 좋을까

나는 어떤 서비스/브랜드를 좋아할까

내 성격의 장단점은 뭘까 등등..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정리해도 결국 행동보다 확실한 해결책은 없다. 또 피드백을 열심히 구해도 조언은 조언일 뿐, 선택과 책임은 내 몫이다. 자기 객관화의 과정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바로 지원해보며 나와 회사를 더 알아가는 것. 지원 공고를 보면 회사마다 JD(Job Description), 추구하는 인재상이 친절히 정리되어있다. 피드백을 구하며 느낀 내 특기, 내가 가고 싶은 환경 등을 그 공고에 대입시켜보고 그 모습에 가까운 것 같으면 일단 지원해봤다. 그리고 실무 면접에서 회사가 나를 파악하듯이 나도 그 회사와 팀 분위기를 파악해봤고,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내가 맡게 될 일이 무엇일지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이 단계부터는 지원한 회사에서 불합격 연락을 받더라도 실망할 일이 적어졌다. 연락은 회사에서 오지만 나 또한 느끼는 바가 비슷했다. '아, 아쉽지만 저도 여기는 아닌 것 같네요.'


어떤 시행착오를 통해서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면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뜻이다. 노력하는 만큼, 자주 지원하는 만큼 불합격의 횟수도 늘어날 테지만 두려워하지 말자. 잃을 것은 없다. 오히려 얻는 게 배로 많다.




당신은 충분히 대접받을 필요가 있다


회사를 찾다 보면 정말 다양한 회사를 만난다.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를 몇 개 꺼내 보자면.. 정규직 경력 포지션으로 지원했는데 면접도 잘 보고 나서 갑자기 주 2회 알바를 제안한 회사도 있고 (놀란 와중에 그에 따른 급여와 계약사항을 물어봤지만 대담하게도 답이 없었다), 면접 도중 갑자기 내 말을 끊어먹고 설교를 늘어놓는 곳, 제출한 과제와 터무니없이 비슷한 신규 서비스/제품을 출시한 곳도 있었다. 지원자를 막연히 '을'로 대하는 회사들 때문에 자존감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하지만 사이사이 내 강점을 알아봐 주는 좋은 곳도 많았고 나중엔 대우받는다는 느낌, 말이 잘 통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회사를 만났다. 직무 면접도 보고, 과제도 내고, 정신 차려보니 최종 면접도 끝나고. 소개팅하듯 조심스럽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봉 협상까지 마치고 나니 아, 그래도 나 정말 열심히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 도장깨기의 마침표.


결국 나는 충분히 대접받을만한 사람이었다는 것. 내 가치를 깎으려는 회사에 고개 숙이지 않은 게 참 다행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충분히 열심히 자신의 역량을 갈고닦고 있다면,


1.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지 마라.

당신이 추구하는 바가 확고하다면, 가치를 낮추면서까지 아무 회사에 가지 마라.


2. 떨어진 이유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

반대로 오버 스펙이라 회사가 당신을 뽑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 실력이 부족해서인지는.. 피드백을 통해 알아보자, 그래야 보완할 수 있으니.) 또 실무 능력은 좋은데 바로 투입될 프로젝트와의 직무 적합도는 부족할 수도 있고, 팀원들과의 케미 등 그 환경과 당신이 잘 맞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맞지 않는 환경에 가면 힘든 건 당신이다. 그러니 무작정 자책하지 말고 다행이라 생각하자.


3. 당신을 알아봐 주고, 대접해 줄 회사는 분명 있다.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내 역량을 잘 갈고닦아서 언젠가 만날 날을 위해 대비해두자. 당장 취업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회사를 만나야 당신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성장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길을 택하든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나도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 최선의 하나를 고르고 싶어 조급해했었다. 하지만 해보기도 전에 최선의 것을 고르고 싶어 하는 건 요행을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살다 보니 인생에 지름길은 없고, 스스로 필요한 만큼 얻을 수 있더라.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설령 내가 택했던 길이 알고 보니 잘못된 길이었을지라도 배움은 똑같이 크니 실망할 필요 없다.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는 건 값진 일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자. 한 단계 나아갔을 뿐, 입사 후에도 인생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너무 따져보지 말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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