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영감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지금 내가 읽고 느낀 감정들을 어디에든 기록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래된 책들로 가득 차 있는 집의 책장을 둘러보다 내게 가장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 표지에 사로잡혔었다.
책의 표지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굉장히 유명한 작품으로 요하네스 베르메르 화가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였다.
잘 알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인터넷이나 가끔 지나가다 책에서 문득문득 보았지 이렇게 가까이서 한 표지 가득 담길 정도의 크기로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책 표지에 시선을 머물렀고 어느 순간 완전히 그림 속 여자의 크고 사슴 같은 눈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 책은 이 그림의 배경과 뒷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대로 풀어놓았다. 작가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요하네스 베르메르 화가의 다양한 작품을 엮어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너무 재미있어서 읽기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절반의 내용을 정독해버렸다.
이 부분은 책의 줄거리로 넘어가도 좋다.
그림 속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그리트이다.
이 책은 그녀가 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들어오면서 시작한다.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화실(그가 그림을 그리는 장소) 청소를 맡게 되는데 그리트는 화실 청소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보게 되고, 그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베르메르는 그리트의 그런 관심을 거부하거나 그르치지 않았고 오히려 무지한 하녀가 그림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사실, 그리트는 굉장히 큰 눈과 선한 인상에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많은 남성들에게 호기심을 주고 관심을 얻고 있었다. 이는 주인 베르메르뿐 아니라 그의 후원자 반 라위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반 라위번을 위해 그리트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베르메르. -그림의 시작 또한 결국 그의 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리트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베르메르의 화실에 들러 그림의 모델이 되었고, 그와 눈을 마주치며 한두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서 그림은 완성이 되었다. 하지만 베르메르의 눈에는 그 그림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그의 아내인 카타리나의 진주 귀걸이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트는 하녀가 귀걸이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부정했다. 더군다나 카타리나(베르메르의 부인)의 물건을 몰래 손대는 것은 카타리나를 몹시 화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에 부정은 더 강력해졌다. 하지만 베르메르는 그의 작품을 위해서 어떠한 행위의 결과를 따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결국 그리트는 주인의 말에 거부할 수 없었고 피부 마취제를 사서 바늘로 귀를 뚫었다.
그렇게 집의 큰 마님의 도움을 얻어 작은 마님의 진주 귀걸이를 얻은 다음, 귀걸이를 달고 마지막 그림을 완성시켰다. 그렇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림이 정말로 완성되고 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반 라위번의 손에 들어가기 전, 카타리나에게 들킨다. 엄청나게 분개한 카타리나는 베르메르와 그리트를 모두 모은 자리에서 엄청나게 화를 내고 그리트를 다그치며 몰아세웠고, 결국 억울함과 쪽팔림 복합적인 감정의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집에서 뛰쳐나와 피터(푸줏간 아들)-그는 그리트를 짝사랑하고 있었다-와 결혼을 하고 아픈 기억들을 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그리트는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던 중, 베르메르의 집에서 일을 할 당시 또 다른 하녀였던 타네커가 푸줏간을 찾아와 그리트에게 카타리나가 그녀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린다. 10년이 지난 상태에서 카타리나가 갑작스럽게 그리트를 찾는다는 사실에 그리트는 궁금해서 그날 밤 저택에 방문을 했다. 시장 사람들의 얘기를 얼핏 들어 알고 있었지만 베르메르의 죽음으로 저택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카타리나가 그리트를 부른 이유는 베르메르의 유언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베르메르가 죽기보다 훨씬 전에 이미 반 라위번이 먼저 죽어 즉시 베르메르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그림을 자신의 집에 빌려왔고, 그 그림을 보며 그리트를 그리워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가 죽기 전 편지를 남겼고 그 편지에는 진주 귀걸이를 그리트에게 줘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카타리나는 어차피 한 번 하녀의 몸에 닿인 귀걸이를 다시 착용할 마음도 없었다며 그리트에게 그 진주 귀걸이를 건네어 주었다. 그리트는 그 귀걸이를 받고 완전히 그 저택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시장으로 되돌아가는 길, 물건을 거래하는 상인에게 가서 진주 귀걸이를 20길더라는 비싼 돈을 받아 팔아버리고 ‘한 하녀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라는 문장과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한 하녀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내게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 모든 이야기가 그리트의 관점에서 서술되었었다. ‘나’는 이라고 서술되던 이야기가 마지막에는 ‘한 하녀가’라는 3인칭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라고 끝이 났다면 분명 찝찝한 무언가가 남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1인칭 입장에서 서술했다는 것은 주관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하녀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라고 이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 제 3자가 단정 지어주었을 때는 정말로 더 이상 남은 것 없이 깔끔한 자유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책은 그 한 문장을 위해 처음부터 계획되어온 작가의 빅픽처라고 봐도 될까.
왜 사람들은 약자에게 더욱 말을 아끼는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베르메르의 태도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르메르는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서 3자인 것 마냥 태도를 취했고, 비겁한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에 그리트가 집을 뛰쳐나가기 전, 카타리나가 진주 귀걸이로 화가 났을 때 사실 진주 귀걸이를 착용하라고 강요한 사람은 베르메르였고 이를 거부한 건 오히려 그리트였다. 또, 진주 귀걸이를 무사히 들고 갈 수 있게 전달해 준 사람은 베르메르의 장모이자 카타리나의 엄마인 큰 마님 마리아 틴스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카타리나의 분개에 그리트를 변호해주거나 상황을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리트가 진실을 말할까 봐 다들 두려워했다. 이 모습은 독자 입장에서 화가 나고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진실을 말했다면 그리트가 그렇게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섬세하고도 미묘한 감정선
그리고 내가 느낀 다른 것은 이 인물과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작가의 필력에 대한 감탄이었다. 글의 초반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현관에 서 있는 여자는 어렸을 때 앓은 듯한 마마 자국이 넓적한 얼굴에 퍼져 있었다. 코는 주먹코에다 울퉁불퉁했고, 작은 입에 붙은 두툼한 입술은 불쑥 밀려 나와 있었다. 눈동자는 밝은 푸른색이었는데 마치 하늘을 그 눈동자에 담은 것 같았다. 흰 슈미즈 위에 회갈색 드레스를 입고, 모자를 단단히 묶어 쓰고 있었다. 여자가 두른 앞치마는 내 것만큼 깨끗하지 않았다. 현관에 떡 버티고 서 있어서 매지와 코넬리아는 여자를 비집고 나와야 했다. 여자는 무슨 도전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 문단,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사람들은 작가의 필력이라고 하면 누구나가 다 공감되는 멋있는 문장을 꼽고는 한다.-물론 나 역시 여기에 동감한다. 나도 그런 문장을 보면 메모를 해두거나 책 한 귀퉁이를 접어 기억에 담아두곤 한다-하지만 나는 그런 뭔가 대단한 비유를 하면서 적어놓은 문장뿐 아니라 이런 필력에도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이 문단은 내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한 여자를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잘 묘사할 수 있으며 나는 이 문단을 읽은 순간부터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타네커(그리트와 함께 일하던 하녀)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그리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문단 하나가 아니다. 이 작가는 모든 사람들과 상황, 건물들 하나까지 굉장히 섬세하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독자들의 상상력을 제대로 발휘시켜주고 있었다.
묘사라고 하면 그저 단순히 장면과 인물 묘사뿐만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모든 순간 인물 간의 굉장히 미묘한 감정들을 잘 표현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자들 간의 섬세한 기싸움부터 한 여자에게 이제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남자들의 감정까지. 또, 어린아이들의 장난 아닌 치밀한 꼼수를 포함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이 작가는 그런 감정선들을 아주 잘 담아내고 있어서 내가 이 책에 몰입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내게 잘 전달되어 사람들이 이 책을 왜 명작이라고 감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글을 쓰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런 필력을 볼 때면 부럽고 많이 배울 점을 느낀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단지 소설의 내용과 그림의 뒷이야기를 즐긴 것이 아닌 작가의 다양한 관점과 내용 전개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쉬운 점을 하나 꼽으라면 원작을 번역한 책이었기 때문에 오역이 조금 있었다는 것이다. 오역 때문에 잘 나가던 진도가 내용 이해가 안 돼서 흐름이 막힌 적이 있어 그 점이 좀 많이 아쉬웠다. 언젠가 이 책을 또다시 읽어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소설의 원작으로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