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또 다른 취향의 발견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이 어딘가로 향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온 감각이 무언가에 이끌리는 순간이 있다. 우연히 내 취향에 딱 맞는 것을 마주쳤을 때이다.
내 책이 입고된 곳에 방문 차 대전에 갔다. 모처럼 여기까지 온 김에, 내 스타일과 잘 맞을 것 같다며 추천받은 다른 책방도 찾아가 봤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것들을 구경했다. 마음에 쏙 들어오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당신은 잘 자고 있나요]라는 부제의 '컨셉진' 71호였다. 누군가가 무엇에 끌리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지금 갈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문장에 이끌린 그 당시 나는 심신의 피로가 많이 쌓여있었고, 푹 자는 게 절실했던 모양이다. '컨셉진'은 독립출판의 세계에 흥미를 갖게 된 이후 자주 들어봤던 매거진인데 그걸 이렇게 한 권 손에 넣게 되었다. 대전에 와서 어떤 특정 기념품보다도, 우연히 발견한 책을 사들고 귀가하니 이것도 의미 있다.
내 심장을 뛰게 하는 키워드는 이런 것이구나!
이후 어디선가 '재미'라는 주제의 컨셉진 77호 표지 이미지를 발견했다. 안 그래도 언젠가부터 '재미'라는 키워드에 푹 빠져있는데, 그런 와중에 이 단어를 보니 엄청 반가워서, 다시 컨셉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재미' 편을 구하려고 보니 여기저기 다 품절이었다. 컨셉진 과월호가 원래 이렇게 구하기 어려운 건가. 공식 홈페이지부터 시작해 수많은 서점을 뒤적뒤적했다.
그러다가 현재까지 나온 주제 인덱스를 쭉 보게 되었다. 관심 가는 키워드가 왜 이리 많은지, 읽고 싶은 과월호가 갑자기 늘어났다.
매거진 출판 워크숍을 하며 알게 된 '종이잡지클럽'이라는 곳이 있다. (주로) 독립출판 연속간행물을 다루는 공간이며, 이용료를 내고 무제한으로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과 만화방의 중간쯤의 느낌이다. 다양한 정체성과 색깔이 있는 잡지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이런 아지트가 있다니! 여기는 입장할 때 클럽지기에게 자신의 관심사 키워드를 알려주면, 그에 맞는 잡지를 추천해준다. 처음 간 날도, 보물찾기 하듯 마음에 드는 구절, 문장, 글, 출판물을 한 아름 발견했다. 컨셉진 과월호들이 여기에도 있을까 확인할 겸 오랜만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가면 어떤 관심사를 적으면 좋을까 고민해봤다. (처음 갔을 땐 '음악'을 얘기했으니 이번엔 다른 걸로 해볼까?) 요즘 구하러 다니는 컨셉진 과월호의 주제들이 머릿속에 쭉 지나갔다.
재미, 습관, 음식, 운동, 배움, 기록, 공간...
그 순간, 새로운 '알아차림'이 생겨났다. 그동안 몰랐는데, 내가 이런 것에도 끌리는구나. 이런 키워드에도 관심이 있구나. 내 마음을 움직이고,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엄청 다양하구나.
보통 '어떤 걸 좋아하세요?', '관심사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예전 같으면 한결 같이 '음악이요!'라고만 답했을 것 같은데, 요즘은 음악 외의, 혹은 음악을 아우르는 더 넓은 범위의 것을 떠올린다.
종이잡지클럽에 처음 갔을 때 보게 된 'achim'이라는 계간지가 있다. 방대한 양의 글이 아니라서 부담 없이 읽어보기 좋다. 종이 전체를 펼쳐보면, 뒷면 전체는 한 장의 사진에 글이 작게 쓰여있는 포토 에세이로 되어있다. 인스타 감성 카페의 벽에 붙어있을 법한 접은 형태의 포스터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흘러 15호가 나왔을 무렵, 이 'achim'을 우연히 다시 찾았다. 지금까지의 주제들 중, 특히나 시선이 꽂히는 주제도 있었고, 어떤 주제는 '아침'이라는 말과 유난히 착 붙어서 기분 좋게 느꼈다. 여기서도 또, '내가 이런 키워드, 이런 대상에 반응하는구나'를 깨달았다.
특정 주제에 대한 수필 단행본 '아무튼' 시리즈도 내 취향을 깨닫게 한 출판물이다. 이 시리즈는 디어클라우드의 이랑 언니가 쓴 '아무튼, 식물'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떤 개인이 '덕질'하는(푹 빠져 엄청난 흥미와 관심과 애정을 갖고 파고드는) 세부적인 무언가를 주제로 써내려 간 수필집이다. 그 대상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정보 나열보다는 그 대상을 통해 생기는 감정, 생각, 관련 에피소드를 진솔하게 풀어낸 글이라서 더 흥미롭다. 그동안 발행된 리스트는 뭐가 있나 살펴보니, '아무튼, 기타'라든가, 역시나 확 끌리는 주제들이 보인다.
가끔은 책 살 게 딱히 없어도 일부러 책방에 간다. 그곳에 가면, 지금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고민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서가에 놓인 수많은 책들을 무심코 둘러보면, 왠지 모르게 더 시선이 가는 책이 꼭 있다. 표지가 눈에 띄어서이든, 제목에 끌려서이든지 말이다. 어떤 책을 집어 들었다는 것은, 나를 그 책으로 이끈 무언가가 내 관심사이고 내 취향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요즘 계속 생각 중인 것에 대해, 나보다 더 먼저 고민해보고 파고들었던 다른 사람들의 통찰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책방에 한 번 가보자.
♬ BGM: Paige [Hit n Run]
https://youtu.be/uXsdXHK_nsI?t=144
https://www.youtube.com/watch?v=2NxULGrqa3A
이 글을 쓰는 시기에 이 곡이 자꾸 땡겼다. 어떠한 곡이 들릴 때 문득 귀를 기울이고 곡 제목이 뭔지 확인하려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나는 왜 이 곡에 끌린 거지?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이 곡을 들으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 좋아하는 곡이 생겨 감상글을 쓸 때 이것에 대한 내용을 항상 쓴다. 스스로에게 이걸 계속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고 표현하는 것 또한 자기 취향을 정립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