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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RYU 호류 May 14. 2023

이 소리가 몇 번이고 날 되살아나게 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직관의 매력

경기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벅차오른다. 뭔가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에너지가 남다르다. 선수들이 준비운동을 하며 힘껏 외치는 기합 소리, 삑삑거리며 날렵하게 움직이는 신발 소리, 패스받을 때 공이 손에 찹찹 달라붙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맞아, 이래서 직관 오는 거다!


2022-2023 SK핸드볼코리아리그 / 경남개발공사 핸드볼 선수단 웜업


드디어 이번 시즌 서울 SK핸드볼경기장에서 핸드볼 경기가 열릴 차례가 되었다. 콘서트 보러만 가던 핸드볼경기장에서, 본래의 용도인 핸드볼 경기를 직관하게 되다니. 핸드볼 경기장에서 핸드볼 경기를 하는 게 당연한데 생소하고도 신기했다. 이곳의 본 기능이 이뤄지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벅차올랐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의 준비운동, 양 팀 선수들이 입장하며 하이파이브하는 모습, 선수단 소개와 인사, 파이팅 세리머니, 그 후 관중석을 향해 선수들이 달려와 사인볼을 던져주는 짤막한 이벤트 등 경기 시작 전부터 매 순간순간이 다 새롭고 짜릿했다.


골을 넣거나 선방하는 장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박진감이 넘친다. 경기 중에 울리는 휘슬 소리마저 생동감 넘친다. 장 내 아나운서의 해설부터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음악, 같은 편 선수들끼리 서로 외치는 말, 골키퍼가 몸을 던지며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공을 막는 소리까지, 중계방송에 다 담기지 않는 모든 순간을 훨씬 입체적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격한 몸싸움으로 파울이 발생하고 선수들이 넘어지는 모습까지도 더 깊숙이 다가온다. 장 내 아나운서가 '부디 큰 부상이 아니길 바라며, 선수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칠 때, 나는 어느 편이든 상관없이 크게 손뼉 친다. 그때마다 그들의 열정과 투지에 벅차올라서 감정이 북받친다.


관중석에 앉아 경기에 워낙 몰입하다 보면 몸이 등받이에서 점점 멀어진다. 그 어느 때보다 열정이 솟아오른다. 내가 이렇게 응원을 열심히 하고 우렁차게 함성 지르는 사람이란 것도 알아차린다.


팽팽한 승부가 펼쳐질 때, 만약 이걸 TV 중계로 혼자 보고 있었으면 너무 긴장됐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쳐가면서 지켜보니까 훨씬 두려움이 덜하다. 이날 첫 직관에서는 응원하는 팀이 졌지만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함께 응원하는 열기 덕분에, 결과보다는 명승부를 펼치는 선수들에 대한 감동이 더 컸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지방으로 원정 직관을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처음으로 했다. 삼척시청의 홈경기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왕복 8시간의 삼척행을 택했다. 12년 전에 아주 즉흥적으로 강원도 동해시를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고속버스 종점이 삼척이었는데 그 삼척을 이번에 가보게 될 줄이야.


홈경기를 그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직관하는 것도 새로웠다. 지역 시민들과 함께하는 응원은 다른 때보다 더 신나고 뜨거웠다. 홈 팀 선수들이 한 골 한 골 넣을 때마다 그리고 선방할 때마다, 열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더니 삼척시청팀이 10점 차이로 대승을 거두며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경기 종료 후 자리를 뜨던 찰나에, 오늘 처음 본 옆 자리 시민 분과 서로 환희에 찬 눈빛을 나누었다. 그 짧은 순간 교감했던 벅차오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원정 직관의 맛을 알게 된 후, 나는 일정과 에너지가 되는대로 전국 방방곡곡 핸드볼 리그가 진행되는 지역들로 경기를 보러 다니게 되었다. 직관을 하면 할수록, 경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현장감에 계속 빠져들었다. 여기저기 직관을 다니게 되니 익숙한 팬분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반대로 나를 알아보시는 분들도 생겼다. 그저 핸드볼을 좋아하는 팬인 나를 다른 팬이 알아본다는 것도 엄청 신기했다. 나중에는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분들이랑 간식도 나눠먹고 전화번호 교환도 하고, 그러면서 알게 된 여러 관중 분들이랑 직관 후 뒤풀이를 하러 가기도 했다. 나중엔 이것저것 나눔을 주고받기도 했다. 경기 끝나고 좋아하는 선수들 만나서 사인받고 선물 전달하고 사진 찍는 것도 설레고 즐거운데, 이렇게 '핸드볼'이라는 한 가지 관심사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도 흥미롭고 신난다.


열정 넘치는 선수들의 활약에 집중하며, 관중들과 섞여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경기 마치고 나오는 눈에 익은 선수들과 인사말을 나누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열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돌아온다. 그러고 나면 일상에서 마주하는 각종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에 한동안 맞서 싸울 힘이 생겨 팔팔해진다. 당찬 패기가 차오른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또 그 힘이 바닥날 때쯤이면, 그다음 직관이 나를 일으킨다. 내게 주기적으로 직관 수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그 에너지가 날 되살아나게 한다. 몇 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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