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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Red (4)

4) 능력 개방

by 호서아빠

Chapter 2: 능력 개방


바람이 숲의 끝자락을 스치며, 나뭇잎들이 낮게 떨렸다.
레드는 다시 나무 끝으로 기어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아래, 짙은 덤불 사이로 익어가는 열매들이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위쪽 가지들은 이미 다른 유인원들이 한바탕 털어가 텅 비었지만,

그 아래 덩굴에 가려진 나무들에는 여전히 풍성한 열매가 붉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맑고 선명한, 생명력이 타오르는 색.


레드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무리를 향해 말했다.

“아래쪽에 더 많은 열매가 있어요. 우리가 먹은 것보다 훨씬 달콤할 거예요.”

무리의 리더, 브루노가 코웃음을 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땅으로 내려가자고? 너, 제정신이냐? 거긴 짐승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야.”

“하지만 전… 잘 익은 열매를 봤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른 유인원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야…”
“그래도, 저 아이가 가져온 열매는 정말 맛있었잖아…”

브루노는 침묵했다.


나뭇가지 위, 약간 뒤편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레드의 엄마 EJ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브루노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 좋아. 단 몇 분만이다. 열매 몇 개만 따고 바로 올라오는 거다. 전부는 안 내려가. 그리고...”
그는 날카롭게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열매가 네 말과는 달리 덜 익어서 맛이 없다면, 며칠간 우리 먹이를 네가 책임져. 레드, 알겠어?”

“알겠어요.”
레드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들은 가지를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땅에 닿는 건 몇 년 만의 일이었다. 무리의 몸이 하나같이 굳어갔다.
레드는 앞장서며 무리를 덤불 너머로 이끌었다. 숨결조차 조심스러웠다.

“이쪽이에요… 저기 보면—”


그 순간, 바스락.
말라비틀어진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꺄악!”

어린 유인원 ‘티노’가 발을 헛디뎌 덤불 속으로 떨어졌다.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티노!!”
EJ가 순간적으로 몸을 날리며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브루노와 몇몇 리더 그룹의 유인원들이 뒤따랐다.

땅 위에 착지하자마자 그들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숲은 너무 조용했다.

새소리가 사라졌다. 곤충들의 속삭임도, 심지어 바람의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레드의 시선이 잎사귀 사이, 어둠에 젖은 덤불 너머를 스쳤다.

무언가, 움직였다.

느리게. 아주 조심스럽게.
그 존재는 나무와 잎사귀로 뒤덮인 숲의 색에 완벽히 섞여 있었다.
다른 유인원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드에게는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녹색과 갈색 사이로… 미세하게 떨리는 줄무늬.
숨을 죽인 채, 그는 그 방향을 응시했다.

노란색과 검은색의 줄무늬.

그것은 어떤 본능보다 강렬한 신호였다.
경고의 색. 생명을 위협하는 색.
피부 아래로 전류가 흐르는 듯한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솟구쳤다.
레드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도망쳐야 한다.


“다들 조심해요!!”

레드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랐다.
작고 여린 존재에게서 뿜어져 나온 그 외침에 무리의 시선이 동시에 쏠렸다.
브루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어디지?'

하지만 브루노의 눈에는 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 뒤를 이어, 덤불을 가르며 거대한 몸집이 솟구쳤다.


그건 마치 호랑이처럼 생긴 포식자였다.
몸은 길고 유연했으며, 발톱은 땅에 깊이 박혀 있었다.
눈은 칼날 같았고, 그 입가엔 말라붙은 피가 남아 있었다.

무리의 유인원들은 너무 늦게 그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브루노는 달랐다.
그는 레드의 외침에 가장 먼저 반응했고, 가장 먼저 움직였다.
티노를 감싸며 포식자 앞을 가로막았다.

훅!
그 짐승의 앞발이 휘둘렸고, 브루노의 팔이 찢어졌다.
붉은 피가 공중에서 꽃잎처럼 터졌다.
하늘에 피의 곡선이 그려졌다.

유인원들의 비명이 터졌다.
몇몇은 허겁지겁 가지를 타고 위로 도망쳤다.

EJ는 레드를 껴안고 나무 위로 뛰어올랐고,

뒤따라 브루노도 마지막 힘으로 가지를 붙잡고 올라왔다.

숲 아래에는 짐승의 숨소리만 남았다.
진동하듯 낮고, 배고픈 숨소리만 고요한 숲 속에 진동할 뿐이었다.


한동안 모두가 말이 없었다.
공포와 안도, 그리고 혼란이 엉켜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레드는 또 다른 것을 깨달았다.

‘붉은색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고였다.’

열매의 붉은빛.
피의 붉은 흔적.
전부 같은 색이었다.


‘붉은색은 생명의 색이기도 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도 떠오르는 색이었다.’
그는 느꼈다. 자신이 본 그 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신호였다.

‘나는 그 신호를 볼 수 있다.’

위험을, 고통을, 상처를, 죽음을.
그리고 살아남을 길을.


레드는 나뭇가지에 조용히 앉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에는 여전히 덤불 아래서 따온 작은 붉은 열매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그 안에는 생명도, 위험도, 그리고 변화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레드는, 자신이 그 변화를 이끌 첫 번째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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