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른 것을 보는 능력
Chapter 3: 다른 것을 보는 능력
포식자는 사라졌다.
숲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침묵은 안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긴장, 의심, 두려움이 뒤엉켜 만들어낸 정적이었다.
마치 숲 자체가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브루노는 나무 위에 앉아 피 흘리는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피는 여전히 천천히, 끈적하게 흘렀다.
그의 눈빛은 흔들렸고, 굳게 다문 턱은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했다.
무리의 유인원들은 저마다 가지에 웅크려 앉아 속삭였다.
“쟤가 그 짐승을 부른 거 아냐?”
“항상 먼저 안다는 게… 너무 이상해.”
“눈이… 뭔가 이상해. 저 눈이…”
그 속삭임들은 칼날처럼 얇고 날카로웠다.
레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뭇가지 끝에 혼자 앉아 있었다.
포식자를 먼저 알아차린 건 그였고, 모두를 살리려 한 것도 그였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그들의 불안을 지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침묵조차—이질적으로 보였다.
그때 브루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네가 밑으로 데려가자고 했지.”
레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가 열매가 있다고 했어.
다른 누구도 그걸 못 봤어.
왜 너만 보는 거지? 왜 너만 아는 거야?”
레드는 침을 꿀꺽 삼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제가 보는 색이 달라서 그래요. 전… 붉은색을 볼 수 있어요.”
말을 끝맺는 순간, 레드는 몸을 동그랗게 말며 고개를 숙였다.
주위가 일순 조용해졌다.
“붉은… 색?”
“그게 뭐야? 그런 색은 들어본 적도 없어.”
“우리 할아버지도, 그런 얘긴 안 하셨어.”
속삭임은 곧 웅성거림으로 바뀌었다.
무리 전체가 웅성거렸지만, 레드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그 열매는 다 익은 거였어요. 위에 있는 건 아직 덜 익은 거고요.
심지어 우리 피도… 붉어요.
그 짐승도 선명하게 줄무늬가 보였어요.
전, 그걸 먼저 알아차릴 수 있어요.”
그 순간, 브루노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넌 너무 많은 걸 본다.
난 그게 무섭다.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 거야.”
그 말은 마치 칼과 같았다.
그냥 말인데도 온몸이 난자당하는 기분이었다.
침묵이 무리 전체를 뒤덮었다.
“그럼… 아픈 것도 보인다는 거야?”
“우리가… 언제 죽을지도 본다는 거야?”
“쟤가 죽음을 끌고 오는 거 아냐?”
“저 눈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어.”
누군가 조용히 내뱉은 말들이, 순식간에 다른 이들의 마음속을 물들였다.
레드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공기가 숨 막히게 느껴졌다.
"나는 분명 모두를 구했는데..."
지금은, 누구 하나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EJ가 나섰다.
“그 아이는 우리를 살리려 했어. 브루노, 네 아이를 구한 것도 레드야.”
하지만 브루노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 위험한 건 변하지 않아. 눈이 다르면… 머릿속도 다른 법이지.”
그 말은 판단이 아니었다.
재판관의 선고였다.
무리의 유인원들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레드를 향해 등을 돌렸다.
이튿날 아침, 레드는 말없이 EJ와 함께 무리를 떠났다.
누구도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는 나뭇가지조차, 발밑에서 마른 듯 삐걱거렸다.
숲은 더 이상 따뜻한 고향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조용히 ‘보지 않음’으로 그를 지웠다.
나무를 타고 조금 떨어진 숲 가장자리,
EJ는 말없이 레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넌 잘못한 게 없어.”
레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날 두려워해.”
EJ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건 네가 다르게 봤기 때문이야.
다르게 본다는 건 외로워. 하지만 그건… 네가 앞서간다는 뜻이야, 레드.”
그날 저녁, 두 유인원은 아무도 없는 나무 위에서 나란히 잠들었다.
밤하늘은 깊었다.
그리고 그 하늘 한가운데, 붉은 달이 떠 있었다.
레드는 그 달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했다.
‘내가 본 건 틀리지 않았어.
세상은 분명히… 색으로 말하고 있어.’
그 붉은빛은 생명의 외침이자, 죽음의 속삭임이었다.
경고, 욕망, 고통, 기회—모두 색으로 떠다녔다.
그리고 그날 밤,
레드는 더 이상 자신의 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