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붉은 기운이 사라진 날
Chapter 4: 붉은 기운이 사라진 날
숲은 여전히 넓고 푸르렀다.
하지만 레드에게 그 색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다.
푸른 숲, 검은 그림자, 갈색 나무껍질.
그는 이제, 그 모든 사이를 흐르는 보이지 않는 신호를 읽을 수 있었다.
무리에서 쫓겨난 이후,
레드는 어머니 EJ와 함께 숲의 외곽, 드물고 고요한 나무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먹을 것은 귀했고, 만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외로움은 레드에게 기회였다.
더 이상 의심스러운 눈길도, ‘그 눈’을 피하려는 시선도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레드는 쉼 없이 관찰하고 해석했다.
잎을 들추고, 열매를 비교하고,
작은 동물들의 몸에서 떠오르는 색의 변화를 눈으로 기억했다.
‘얼굴이 붉으면 화가 난 거야.
피부가 희어지면 아프거나 겁먹은 거고…
눈 밑이 붉으면 병이 시작된 걸지도 몰라.’
레드는 이제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색을 읽고 해석하고 있었다.
어머니 EJ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넌 혼자 있을 땐… 더 크게 자라는구나.”
그러던 어느 날,
숲을 거닐던 레드는 어디선가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도와줘… 제발, 제발 좀 도와줘…”
그건 브루노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과거의 강하고 위엄 있던 지도자의 음성이 아니었다.
그건 두려움과 절박함이 뒤섞인,
무너진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레드는 본능처럼 몸을 숨겼다.
그 순간 땅 위에 쓰러진 작은 몸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티노였다.
그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고,
숨은 거칠었으며, 눈은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그 얼굴은 마치 해가 진 하늘처럼 색이 빠져 있었다.
붉은 기운이 사라진 얼굴.
레드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열매야. 상한 열매를 먹은 거야.”
그 자리는 며칠 전, 레드가 지나치며 봤던 나무 아래였다.
노란 기운이 도는 물컹한 열매들.
근처엔 동물의 배설물까지 있었다.
티노는 배가 고파, 무리의 눈을 피해 혼자 내려와
그것을 먹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레드는 티노를 안아 들며 브루노에게 말했다.
“시간이 없어요. 마을로 가면 제가 티노를 구할 수 있어요.”
그리고 덤불을 넘어, 가지 위를 뛰고, 숨을 몰아쉬며, 무리의 영역을 향해 달렸다.
쫓겨났던 그 길을,
이제는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무리의 중심.
브루노는 조용히 나무 아래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팔에는 아직도 그날의 상처가 남아 있었고,
얼굴은 한층 늙어 있었다.
“브루노!! 아직 늦지 않았어요. 잘 익은 열매를 주면 회복될 거예요”
레드는 나무 아래, 가장 낮은 가지에 열매를 찾았다.
자신의 감각으로 익은 것과 덜 익은 것을 구분했고,
가장 선명한 붉은색을 골라 가져왔다.
그는 열매를 으깨 즙을 내었고,
티노의 입가에 그것을 천천히 흘려보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티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입술이 움직였고,
숨이 기침처럼 튀어나왔다.
그리고… 얼굴에,
조금씩 붉은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레드는 작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얼굴색이 돌아왔어요. 이제 괜찮아요.”
무리의 유인원들은 여전히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다.
'얼굴색이 어쨌다고? 그대로인데?'
브루노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입술이 떨렸다.
“… 네가… 구했구나.”
레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 보기만 한 거예요.
색이… 말해줬어요.”
브루노는 무리의 중심으로 걸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레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눈 말이야.
우린 그걸 무서워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걸 네가 본 거였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천천히 말했다.
“난 그게 무서웠어. 내가 모르는 걸 네가 볼 수 있다는 게 말이야.
이제… 우리와 함께 있어줘. 다시.”
그날 밤, 무리는 함께 나무 위에서 잠들었다.
레드는 중앙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자신의 눈빛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눈은 이제,
더 많은 생명을 지켜보는 눈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계절은 수없이 바뀌었다.
잎은 지고, 다시 피어났다.
여전히 숲은 변하지 않았지만, 무리는 변해 있었다.
이제, 레드는 가장 높은 가지에 머물고 있었다.
한때는 홀로 앉던 곳.
이제는 모두가 그의 곁에 모여 살았다.
그는 ‘다른 눈을 가진 자’가 아니라,
‘먼저 보는 자’,
무리의 길잡이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EJ가 조용히 그의 곁에 앉았다.
그녀의 털은 눈처럼 희어졌고,
움직임은 느렸지만, 눈빛은 따뜻했다.
“처음 네가 색을 본다고 했을 때…
난 정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
사실 정말 답답했지.”
레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그땐 저도 설명할 수 없었거든요.”
EJ는 작게 웃었다.
“이제야 알겠구나.
그 눈은 우리와 다른 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거였어.
새로운 우리의 미래를 말이야.”
레드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레드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는 가장 편한 나뭇가지 위에서 조용히 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여전히 아침 햇살이 숲을 가로질렀고,
나뭇잎들 위로 작고 붉은 점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더 많은 것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열매. 새의 깃털. 그리고 아이들의 얼굴.
레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아이들 중 몇몇은,
그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레드보다 더 잘 보았고, 더 빨리 느낄 수 있었다.
레드처럼 유난히 붉은색에 민감했다.
그들은 더 이상 돌연변이가 아니었다.
그건 인류의 시작을 알리는 찬란한 유산이었다.
레드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생각했다.
‘처음 봤던 그 열매.
그 색은 단순히 예뻐서 존재한 게 아니었어.
그 열매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지.
"이걸 먹어줘. 난 익었어. 난 너에게 좋아."
색은 소리 없는 언어였고,
나는 그 언어를 제일 먼저 배운 아이였지.”
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작은 아이 하나가 붉은 열매를 따서,
동생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레드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 무리는 더 잘 볼 수 있겠구나.
세상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