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돌연변이
Chapter 1: 돌연변이
바람이 숲을 가르며 지나갔다.
나뭇잎 사이를 미끄러지듯 흐르는 그 바람은 소리보다 더 조용했고,
마치 무언가의 속삭임처럼 낮게 울렸다.
숲은 마치 정지한 듯 고요했지만, 그 속에서는 무수한 생명이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날, 레드는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 혼자 앉아 있었다.
레드는 다른 유인원들에 비해 한참이나 작았다.
팔다리도 짧았고, 움직임도 느렸다.
게다가 레드의 눈만큼은 언제나 그들과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있는 걸 더 편하게 여겼다.
지금 레드의 시선은 하나의 열매에 고정되어 있었다.
초록빛 잎사귀 사이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 그것은,
다른 유인원들에게는 단지 ‘덩어리’로만 보였을 것이다.
회녹색의 배경 속에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존재.
그러나 레드에게는 그 열매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문자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작은 불꽃처럼, 숲의 공기마저 데우는 색이었다.
처음엔 다들 자신처럼 그것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열매를 주목하지 않았다.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원래 다들 관심이 없나 보지.' 하며 넘겼다.
자신이 유독 잘 익은 과일이나 어린잎을 잘 찾는 이유도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건 이상했다.
이토록 뜨겁고 깊은 빛을 띠는 것을, 왜 아무도 보지 못하는 걸까?
“왜 아무도 저걸 안 먹지?”
레드는 함께 자라온 친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게 왜?” 친구는 무심히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열매잖아. 저런 건 숲에 널렸어. 크기도 작고, 뭐.”
레드는 잠시 침묵했다가 조용히 말했다.
“근데… 저건 색이 다르잖아. 아주 뜨거운 색인데…”
“뜨겁다니? 무슨 말이야? 색에 온도가 어딨어? 난 그런 거 본 적도 없어.”
친구의 반응에, 레드는 다시 입을 닫았다.
내가 잘못 본 걸까?
하지만 그 열매는 며칠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숲의 그 어떤 것도, 그렇게 붉고 강렬한 빛을 뿜지는 않았다.
레드는 천천히 가지를 타고 열매에 다가갔다.
손끝으로 조심스레 열매를 땄고, 코끝에 가져갔다.
향기는 달콤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혀끝에서 과육이 녹아내렸다.
짙은 단맛. 충만한 익음의 풍미. 그리고 몸속 깊이 퍼지는 따뜻함.
그 순간, 레드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계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세계를—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과일을 나만 볼 수 있는 건가…?’
그날 이후로도 레드는 매일 아침이면 무리보다 먼저 나무 위를 헤맸다.
남들보다 약하고 작아서, 사냥에도 불리하고, 자주 밀려나는 존재였기에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방식은 ‘무언가를 먼저 찾아내는 것’뿐이었다.
그는 익은 붉은 열매를 따서 무리와 나누었다.
어린 잎사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리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저 “운이 좋았다”라고 했다.
왜 레드가 유난히 맛있는 과일만 골라오는지,
왜 그의 손에서 나온 열매가 더 부드럽고 달콤한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레드에게만, 이 세계는 찬란하고 선명했기에 역설적이게도 그는 언제나 외로웠다.
그 눈은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였다.
무리의 우두머리 브루노는 레드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꺼려했다.
브루노는 오래된 방식, 조상들이 써온 길을 따르는 것을 안전이라 여겼다.
새로운 눈, 새로운 방식은 질서의 균열처럼 보였다.
심지어 무리의 어른들은 레드가 괜히 우두머리에게 잘 보이려 ‘별난 짓’을 한다며 수군대기도 했다.
해가 중천에 떴다.
숲은 빛을 받아 숨 쉬듯 반짝였고, 잎사귀 위를 스치는 바람은 낮게 울었다.
한낮은 레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세상이 유독 다채롭게 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