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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seongi Kim Dec 31. 2018

쓸쓸함을 사랑한다는 것

그녀의 이야기는 슬펐고, 위로받기에 충분했다.


거의 2시간이었다. 환자의 큰 딸은 이야기를 눈물을 흘렸고, 우리는 지금껏 환자의 병력 및 그 병력에 따른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과 격려를 해 주었다. 우리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들도 다시 면담을 하고, 우리가 놓친 부분을 여러 면에서 보완해주었고, 사회복지사들은 의료진이 알지만, 접근하기 힘든 가족 역학이나, 경제적인 부분을 컨택하였다. 그리고 다학제 접근 회의에서는 수녀님, 신부님, 스님까지 같이 모여, 머리를 맞데고, 그 가족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것을 챙겨보고, 환자의 의학적, 심리적, 사회적 , 종교적 문제를 논의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상의하였다. 호스피스-완화병동에서 거의 매일, 매주 벌어지는 일들이다.


의료진에 '주인공'은 없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주인공이며, 우리는 뒤에서 그들의 마지막의 실타래가 잘 풀리게, 그들의 마지막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경 역할을 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좋은 죽음'이란 사람마다 각자 함의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삶의 시작과 삶의 끝은 혼자 '견뎌내야'하는 실존주의적 고통이 본질이겠으나, 그 본질의 뿌리에는 우리의 '관계성'이 내재돼
어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축복과 관심 속에 태어나는 '출생'과 같이 '죽음'도 그동안 삶을 같이 살아왔던 이들의 '감사'와 '의미'속에서 겪어야 하는 것이 일명, '좋은 죽음'에 가까울 것이다.


이 일에, 지금도 많은 이들이 헌신하고 있으며, 이들의 보이지 않은 수고와 노력으로 비로소 '호스피스' 운동이'죽음'을 아직도 적대시하는 유교적 문화 풍토와 현대의학의 세례 속에서도 조그맣게 싹을 틔어 그 환자에게처럼 조그 많지만 귀중한 매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은 수고와 노력이 된다는 것.
내가 이전에 참으로 좋아했던 '박완서'작가의 글이 있었다.


-아들은 홀연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까 그의 죽음은 하나의 세계의 소멸이 아니라 두 개의 세계의 소멸을 뜻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들이 인턴 과정을 끝마치고 전문의는 무슨 과를 택할까 의논해왔을 때 생각이 났다. 그 애는 나만 반대하지 않는다면 마취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뜻밖이었다. 나는 아들로 인하여 자랑스럽고 우쭐해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누가 시키거나 애써서가 아니라 그 애 스스로가 선택한 학교나 학과가 에미의 자긍심을 충분히 채워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내 무지의 탓도 있었지만 마취과는 어째 내 허영심에 흡족치가 못했다. 나는 왜 하필 마취과냐고 물었다. 그 애는 그 과의 중요성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 중요하지 않은 과가 어디 있겠니?
이왕 임상을 하려면 남보기에 좀 더 그럴듯한 과를 했으면 싶구나."
나는 내 허영심을 숨기지 않고 실토했다. 그때 아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머니,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장에서 환자의 의식과 감각이 없는 동안 환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가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별 볼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으로부터 고맙다든가 애썼다는 치하를 받는 일이 거의 없지요.
자기가 애를 태우며 생명줄을 붙들어준 환자가 살아나서
자기를 전혀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어요.
전 그 쓸쓸함에 왠지 마음이 끌려요."-


그 쓸쓸함,
박완서 씨 아들이 말하는 그 쓸쓸함과는 결은 다소 다르겠으나,
우리 완화의학팀은, 우리의 여러 노력을 지나- 결국엔 '임종'하는 환자를 보고 느끼는 '쓸쓸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깊은 새벽에 소천하여, 사망선고를 내리고 돌아올 때, 까만 밤하늘을 보며 느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다시 새로운 환자를 맞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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