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alliati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seongi Kim Dec 31. 2018

조용한 기도

Y환자는 나이가 마흔이 갓 넘었다.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그는 담관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하였으나 효과가 별로 없어 암은 진행하였고, 상태는 악화되었다. 그는 암으로 인해 매우 말라있었고 통증과 그로 인한 불면증을 호소하였다.  

2~3일 후 통증이 적절히 조절되었고, 그로 인해 정신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는 다시 치료에 대한 논의를 보호자와 하길 원했다. 젊은 아내는 병색이 완연한 남편의 바람을 의료진에게 넌지시 건네었다. 항암치료는 아니고, 면역 치료 및 한방치료를 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이런저런 희망과 기대 섞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선뜻 답을 꺼내어 언어로서 푸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은 검증받은 암 치료와 검증받지 못한 치료법에 대한 의사로서의 견해를 말하기 위한 지체가 아니었다. 그런 환자의 질문이 환자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상태에 대한 반증이며, 그것에 관해서는 환자가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시간' 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로에게 확인시키고, 기다리게 하자는 서로 간의 무언의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스스로의 상황을 파악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상황을 잘 모르는 시댁의 지속적인 3차 병원 항암치료 권유와 지속적인 쇠약에 의한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묵묵히 이겨내었다. 날이 좋은 날이면 서로 밀짚모자를 쓰고, 바캉스 차림을 한 체, 병원 뒤쪽 조그마한 응달에 앉아 피크닉을 즐겼다. 그들은 초여름의 숲과 같이 참을 수 없이 신선하고 젊게 빛났다.


어느 토요일 오후, 병실 회진 도중, 토혈을 하며 갑자기 쓰러지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고 의학적인 처치를 하다 본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 정도 급한 수습을 마치고, 일인실로 옮겼다. 혈압은 잡히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대량의 토혈을 하였다. 그 와중에도 놀라지 않으며,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과 그들이 읊조리는 조용한 기도가 나지막이 문틈을 타고 스테이션으로 들렸다.


그는 이튿날 조용히 소천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깜찍한 등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