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_모든 것의 시작에는 소통이라는 악마가 있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 사람들끼리 서로 생각, 느낌 따위의 정보를 주고받는 일. 말이나 글, 그 밖의 소리, 표정, 몸짓 따위로 이루어지는 것.
사전에서 정의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마치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두 손으로 공손히 주고받는 풍경처럼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현실 속의 '진짜 커뮤니케이션'이 그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내가 겪은 현장의 커뮤니케이션은 선물 교환보다는,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는 수많은 블록을 여기저기서 던져 주고 받으며 위태롭게 탑을 쌓아 나가는 행위에 가깝다. 아귀가 맞지 않는 블록들 탓에 탑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수시로 무너지며, 원하는 높이까지 쌓아 올리기도 전에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이것이 내가 매일 마주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민낯이다.
많은 선배들은 각자의 철학과 경험을 빌어 기획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들을 꼽곤 한다. 술자리 안주처럼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는 대개 이런 것들이다. 날카로운 전략,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 세상을 놀라게 할 아이디어, 혹은 끈기와 인내.
물론 저것들을 모두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개인적으로는 저 중 한 가지만 제대로 갖추더라도 한 명의 기획자로 살아남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한 가지를 제대로 갖추는 것조차 쉽지 않을뿐더러, 모든 것을 갖춘 육각형의 기획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일단 나 역시 한 가지를 갖추는 것도 어렵다고 느끼는 인간이다. 게다가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육각형 슈퍼스타를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기획이라는 업(業)의 본질을 파고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내 머릿속의 생각을 타인의 머릿속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아무리 좋은 전략도, 아이디어도 혼자만 알고 있으면 망상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시작해서 '커뮤니케이션'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획자의 제1 덕목은 단연코 커뮤니케이션이다.
문제는 앞서 말한 '서로 다른 모양의 블록' 이야기처럼,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100% 동일할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에 있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우리는 말과 문장, 이미지로 부단히 애를 쓰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You can say the right thing about a product and nobody will listen. You've got to say it in such a way that people will feel it in their gut. Because if they don't feel it, nothing will happen."
"제품에 대해 백번 옳은 소리를 해도 아무도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Gut)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들이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광고인 윌리엄 번벅(William Bernbach)이 남긴 말처럼, 우리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벽하다고 믿는 기획서를 들이밀어도 상대방의 가슴에 닿지 않거나 다르게 해석된다면 그것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실제 기획 업무가 시작되는 순간을 보자. 킥오프 미팅 때, 기획을 의뢰한 클라이언트도, 함께할 팀원들도 서로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인다. 심지어 “이번 프로젝트 느낌이 좋다”며 박수를 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회의실 문을 나선다. 하지만 뒤돌아서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보이지 않는 곳에 수많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말이 이런 뜻 아니었어?”
“그건 너만의 생각일 뿐이잖아.”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프로젝트가 시작된 순간부터 드러나는 모호한 요청사항, 제각각의 해석, 그리고 작은 오해에서 시작된 균열들은 시간이 지나고 개입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그것은 어느 순간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부지불식간에 덮쳐온다. 데드라인을 코앞에 두고 들이닥친 이 재앙 앞에서, 며칠 밤을 새우며 준비해왔던 노력들은 신경질적으로 쓰레기통에 처박힌다. 고성과 한숨이 오가고, 결국엔 모든 것을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이 반복되는 비극을 곱씹다 보면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소통’으로 이루어지고, 동시에 그 소통 때문에 처참하게 망가지고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비단 프로젝트뿐만이 아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도, 영원할 것 같았던 연인도,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었던 부모마저도. 관계가 틀어지고 상처받는 건 결국 그놈의 소통 때문이다.
세상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화법을 배우라고, 더 많이 소통하라고 등을 떠민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소통'은 악마다. 완벽한 소통을 하려 하면 할수록, 이 악마는 그 틈을 파고들어 우리를 무너뜨린다.
기획자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은, 이 악마와 함께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매일 확인해야 한다. 내가 뱉은 말이 상대방의 귀에 닿았을 때도 여전히 같은 모양인지, 우리가 합의했다고 믿었던 그 ‘느낌’이 사실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거나, 알고 있음에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매일 쓰레기를 생성해내는 일만 지속하게 될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나 역시 소통이라는 악마로 인해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만들어냈고,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쓰레기를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은, 그 수많은 쓰레기 속에서 악마의 괴롭힘을 피해 한 발자국씩, 덜 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요령을 조금은 파악했다는 점이다. (이 생각 역시 악마에게 속은 걸지도..)
확실한 것은,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쓰레기가 되거나, 메시지가 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쓸 이야기는 나의 생각이 메시지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의 생존 기록이자, 나와 마찬가지로 메세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당신에게 건네는 자그마한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