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진짜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People don't want to buy a quarter-inch drill. They want a quarter-inch hole!"
"사람들은 1/4인치 드릴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1/4인치 구멍을 원하는 것이다."
시어도어 레빗(Theodore Levitt)의 이 유명한 말은, 기획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일 것이다. 만약 직접 들어보지 못했더라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들을 어디선가 들었을 거라 믿는다.
이 문장은 우리가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받을 때, 그리고 그 결과물을 소비할 대중을 향해 메시지를 던질 때,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바로 '진짜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문제면 문제지, 진짜 문제는 또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기획 업무를 하다 보면 이 '진짜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야말로 프로젝트의 퀄리티와 성공을 가르는 중요한 시작점임을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기획이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시작된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다', '호감도가 떨어졌다', '경쟁사가 치고 올라온다' 등등. 기획 업무의 배경에는 언제나 해결해야 할 결핍이나 과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종이 위에 적혀 있는 표면상의 문제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가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익숙한 이야기이겠지만, 이것만한 사례는 없다)
나이키가 성장의 정체와 미래 고객인 청년층의 이탈을 걱정하던 시기가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 그 원인을 동종 업계 경쟁사에서 찾으려 했을 것이다. "아디다스의 디자인이 더 힙해서 그런가? 언더아머의 기능성이 더 뛰어난가? 그럼 우리도 더 푹신하고 더 멋진 신발을 만들어야 하나?"
하지만 나이키는 눈에 보이는 현상(점유율 경쟁) 너머의 '진짜 문제'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들은 경쟁의 대상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아디다스가 아니다. 닌텐도다."
그들이 발견한 진짜 문제는 경쟁사의 신발 성능이 아니었다. 주 타깃인 청년들이 예전처럼 밖으로 나와 뛰거나 운동을 하지 않고, 방 안에서 게임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서 움직여야 신발이 닳고, 그래야 새 신발을 필요로 할 텐데, 닌텐도를 비롯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기기들이 고객의 **'시간'**을 독점하고 있으니 나이키가 끼어들 틈이 없어진 것이다.
즉, 나이키는 이 싸움을 '신발 vs 신발'의 점유율(Market Share) 전쟁이 아니라,
고객의 하루 24시간을 두고 다투는 시간 점유율(Time Share) 전쟁으로 바라본 것이다.
만약 그들이 단순히 '신발 판매량'만 문제로 삼아 기능 경쟁에만 매몰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처럼 운동을 하나의 놀이 문화로 만들거나, IT 기술과 결합해 사람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혁신적인 시도(Nike+ 등)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예로,
영국의 전설적인 광고인 로리 서덜랜드(Rory Sutherland)가 TED 강연에서 언급한 '유로스타(Eurostar)' 이야기가 있다.
런던과 파리를 오가는 고속열차 유로스타의 승객들이 "이동 시간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학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수조 원의 예산을 들여 선로를 새로 깔고 엔진을 교체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해서 줄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0분 정도였다.
이때 로리 서덜랜드는 전혀 다른 접근을 내놓았다. "그 수조 원의 예산 중 아주 일부만 써서, 기차 안에 전 세계 최고의 슈퍼모델들이 최고급 샴페인을 서빙하게 합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기 싫어할 겁니다. 기차가 너무 빨리 도착한다고 불평할지도 모르죠."
물론 웃자고 한 극단적인 예시지만, 그 접근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고 날카롭다.
승객들의 불만은 표면적으로는 '물리적인 시간(Time)'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기차 안에 갇혀 있는 동안 느끼는 **'심리적인 지루함'**이었다. 공학자들은 페이퍼에 적힌 숫자를 줄이려 했지만, 기획자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진짜 결핍을 건드린 것이다.
우리가 받아 드는 페이퍼와 모니터 속 데이터 분석 자료들은 말 그대로 '현상'을 보여줄 뿐이다. "매출이 떨어졌다", "불만 접수가 늘었다"는 현상일 뿐, 진짜 문제가 아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누구나 다 아는 문제가 적혀 있다면 그것은 '진짜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누구나 아는 문제라면 이미 해결책도 나와 있었을 테니까.
기획이 어렵고 힘든 이유는 바로 그 '가짜 문제'들의 숲을 헤치고 숨어 있는 '진짜 문제'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획의 반, 아니 거의 모든 것은 '진짜 문제'를 정의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말처럼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