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에게
작년이었는지 재작년이었는지 기억이… 여튼, 간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 여름에 펜션을 잡고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땡볕이 들고, 산 지 얼마 안 되었던 예쁜 옷이 땀으로 절어버리는 더위였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 지었던 그 웃음은 오히려 땀방울 맺힌 얼굴에 더 어울렸던 것 같다.
우리 팀의 패배로 마무리된 족구 팀전을 끝내고서 우리는 다 같이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장에서 사 온 고기와 라면, 햇반으로 꽉 채워 넣은 상 위엔 친구들의 목소리가 바삐 오갔다. 자리에서 쌈을 싸서 조용히 한 입 넣던 그때였다.
“이상하네.” 친구가 나를 보며 그렇게 말하더랬다.
“석표가 확실히 예전이랑 많이 달라진 거 같아.”
그 말의 의미를 바로 가늠하지 못한 나는 친구와 얼굴을 마주했고, 친구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뒤이었다.
“석표 예전엔 진짜 재밌는 말 많이 하고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말을 잘 안 하더라.”
친구가 그렇게 말하자 그 뒤로 ‘맞아’, ‘석표 말 되게 많았는데 분명히’ 같은 끄덕임이 이어졌고, 나도 적당히 ‘그런가’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선 잠시 지나가는 한마디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가슴엔 오래 남았다. 실은 나도 동의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한 톤씩 낮아진 것 같다.
학창 시절 나는 굉장히 활발한 성격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말하는 걸 좋아하고 친구를 사귀는 걸 좋아했다.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친해지기 전의 그 어색함이 재밌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사람 앞에 나서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성인이 되면서 처음 들은 말은 ‘되게 점잖으시네요’였다.
점잖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장점으로, 단점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말이다. 한데 웬만하면 장점으로 말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이거 좋아해야 하나?’라고 고민이 들었다.
언제부터인진 모르게 나는 말이 줄었다. 말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거나 데인 적이 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예상치도 못하게 ‘점잖으시다’, ‘조용하신 것 같다’ 같은 말을 들으면서부턴, 나라는 사람의 톤이 한 층 차분해진 건 알 것 같다. 그래서 이젠, 궁금하다. 난 언제부터 그렇게 점잖은 사람이 되었을까.
물론 마냥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로 인한 실수를 줄일 수도 있고, 그래서 오히려 말의 중요성을 알고 신중해진 감도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인지 말을 부드럽게 한다는 좋은 말도 들었는데, 반대로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나다운 ‘밝음’이 사라진 거에 대해선, 솔직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예전같이 장난스럽고 웃긴 분위기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걸 보면 뭔가 외우지 못한 연극 대사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다. 이 변화는 뭘까, 가끔 떠오를 때마다 조금씩 붙잡는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려나. 나 철든 건가. 아니야 철든 건 아닌 거 같은데.
시간 속에서 얻은 성숙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무 생각이 많아진 요즘 들어선 어렸을 때의 마냥 순수한 맑음이 그립기도 하다. 그땐 자신감이 넘쳤고, 세상도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 순간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렸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어’, ‘운동을 열심히 해보겠다’, ‘자기 계발 필생즉사’가 아니라. ‘더 즐겁게 반짝여야지’하고 말할 거라는 걸 안다.
이렇게 글로 길게 써보니 알겠다. 내가 그리운 건 그 시절의 반짝임이 아닐까. 그때의 반짝임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가져갈 순 없는 거라, 수많은 0과 1의 어느 한편에 소년의 모습으로 둔 채 어른이 되기로 하며 떠난 게 아닌지.
만약 그런 거라면 나는 그 소년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이 모습으로 만난다면 미안할 것 같다. 그래서, 그때 그 소년을 다시 만나기 위해 나에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꼭 그 애를 만나러 가고 싶다. 그리고 마주 섰을 땐 서로 닮은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고 싶다.
“어?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