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리의 머리 위에도 나비는 날아온다.

추신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김광석 시인의 노래를 들으며 또 울었다.

by 전석표

1월 30일, 달의 마지막 평일이었던 날에 나의 20대 첫 연애는 한파라고 말하는 찬 바람 속에서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 아홉 달, 길다고 말하기엔 부족하겠지만 그 어떤 시간보다 농도 짙은 나날에 원치 않은 마침표가 찍힌 순간이었다.


내 20대 첫 연애의 시작은 작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린 사내 연애였다. 전 애인은 3월 초에 회사에 입사했었고, 나는 그 해로 경력이 1년 반 정도 쌓이고 있던 평범한 사원이었다.


전 애인은 나보다 사회 경험이 훨씬 풍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입사 당시엔 새 분야에 접어들게 된 것이기에 내가 업무를 가르쳐주어야 했다. 겉으론 능숙한 척했지만, 실은 나도 누군가에게 업무를 가르쳐준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업무를 알려주면서 자연스레 몇 마디를 나눠서일까. 어느 날엔 몇 번씩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고, 어느 날엔 집으로 가는 길이 서로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같은 시간에 퇴근하게 되었다가 어느 날부턴 서로 저녁까지 같이 먹고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연애 경험이 아주 부족한 사람인지라, 당시에 늦은 시간까지 같이 저녁을 먹고 들어가고 시간에 맞춰 같이 퇴근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가지려 하진 않았다. 그때 나는 그 회사가 첫 회사여서 사회 경험이 적었던 만큼, ‘아, 친해지면 이렇게 둘이서 밥 먹기도 하는구나’하고만 여기곤 했다. 하지만 이내 나의 그 마음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4월 말 즈음이었다. 5월 초까지 빨간 날과 대체 휴일이 겹치면서 꿀 같은 휴일을 보낼 수 있었는데,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 처음으로 사적인 연락을 보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에 소설 관련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걸 구실로 내가 집필했던 소설 파일을 보내주며 자연스레 먼저 연락했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에 약속을 잡았고, 나는 그 사람이 사는 동네를 처음으로 찾아갔다. 우린 저녁을 먹고 나서도 바로 돌아가지 않고 길을 걷다가, ‘다리 아프지 않나요?’라는 핑계로 들어간 호프집에서,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로 그렇게 말했다.


“사내 연애는 좀… 어렵겠죠.”


손까지 힘이 풀린 채로 떨었던 내 고백이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난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언젠가 그 사람 옆에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솔직히 축하해줄 자신이 없다고, 지금의 나는 한참 부족하지만, 그 옆에 있는 좋은 사람이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 마음을 건네자, 그 사람은 내게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럼 만나볼까요? 대신, 일은 서로 열심히 하는 걸로 합시다.”


그 대답을 듣고 나서도 나는 우리가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정말 며칠 간은 꿈을 꾸는 듯 몸이 붕 뜬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 20대 첫 연애가 시작되었다.

회사에서는 티 내지 않았다가도, 퇴근 후엔 항상 집을 같이 갔고 주말에는 데이트를 즐겼다. 함께 맛있는 걸 먹고 멋진 곳을 구경하며 하루를 나누는 소중한 날들이 정직하게 쌓여갔다.


물론 모든 날이 밝은 날은 아니었다.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에 있어선 오해가 있기도 했고, 내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날 아껴주었고, 나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서투르게나마 애썼다.


하지만 근래 들어, 우린 서로의 가치관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되는 일을 겪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도록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1월의 마지막 금요일 날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의 동네에서 다시 만나 우린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우린 서로 맞지 않았다. 여기서 끝내는 게 맞다. 이런 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알았다. 더는 그 사람의 기대치에 맞추기 어려울 것 같다는 걸. 그렇게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마지막임이 실감이 되었을 때, 나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멍청하게 쏟아버렸다. 그 사람은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내 첫 연애가 너라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눈가는 애수로 젖어있었고, 나는 그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고개만 푹 숙였다. 앞으로 더는 볼 수 없을 얼굴일 텐데, 떠나고 나서 그리워할 얼굴을 나는 또렷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곧 생일이니 선물을 사주고 싶다고. 봄이 오면 꽃놀이에 가자고 했던 말을 지킬 수 없는 게 너무할 만큼 슬프다. 그러나 어쩌면 여기서 이별을 말한 게 서로에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초라함과 어설픔이 그 사람까지 작아지게 해서는 안 되니까. 그 사람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내게 건넨 이별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잡아주었던 손이 품은 온기도,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미래를 같이하고 싶었지만, 나는 이제 과거에만 남게 되었다. 얼마나 될지 모르는 나날 동안 아프고 슬퍼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사람의 마지막 작별 인사처럼, 나는 나의 몫을 살아가려 한다. 부끄럽지 않게.


함께하는 동안 마음은 꽃이 필 때의 공기처럼 달큰하고 따뜻했다. 나를 행복하게 했고, 나를 버티게 했다. 그만큼 그 사람의 미래에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으면 좋겠다. 삼재라 불리는 이 시간 속에서, 바래지 않았던 그 꿈만을 남겨 둔 채, 나는 조용히 다음으로 걸어간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