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하늘은 늘 맑았다.
26년 2월 16일. 오전 여덟 시 반도 채 안 됐을 즈음, 우리 가족은 모두 차에 올라있었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외할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서였다.
아침 햇살을 가로지르며 차가 출발했다.
춘천의 경춘공원묘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열시 반이었다.
딱 두 시간 정도 소요된 셈이었다.
중간에 멈추지 않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일찍 출발을 해서인지 차가 그리 막히지 않아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곳은 계절을 타지 않는 것처럼 늘 하늘이 푸르렀다.
마치 세상 한군데에서 떼어져 나온 것처럼.
묘로 올라가기 전에 우리는 입구에서 조화꽃을 샀다.
사람들은 말한다. 조화는 가짜라서 싫다고. 그래서 이왕이면 생화가 좋다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할 땐,
늘 생화를 고르곤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조화가 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한 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변하지 않는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우린 그 꽃송이를 손에 쥔 채,
두 분의 묘소가 있는 꼭대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까지 딛는 걸음은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그냥 이 공간에서 가장 맞는 걸음걸이였다.
오르막길 끝에 다다른 꼭대기.
그곳에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를 마중해주셨다.
준비를 마치고, 이내 우리는 다 같이 절을 드렸다.
나는 두 분에게 속으로 그렇게 말씀을 드렸다.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게 해주시고,
앞으로 헤쳐나갈 내일을 위해 용기와 힘을 빌려주시라고.
그리고 닷새 뒤에 있을 누나의 결혼식이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지켜봐달라고 했고,
마지막으로 온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빌었다.
며칠 전부터 산소 얘기를 하며 기다리시던 엄마는
차 안에서도 밝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며 웃었다.
창문 밖으로 흐르는 산과 강을 바라보며
옛이야기를 하셨다.
마치 앞서 봄을 한숨 담아온 듯,
소풍을 떠나는 소녀의 얼굴 같았다.
그런 엄마는 이번에도 역시
외할아버지 산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 눈물을 몇 걸음 떨어진 옆에서 보았을 때,
내 마음 안에 있던 찌꺼기가 씻겨 흘러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참, 하등 쓸모없는 거였는데.
그걸 끙끙 안고 있었구나 나는, 미련하게.
“엄마 아버지, 갈게요.”
그 말이 끝나자
엄마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았다.
묘소를 내려가는 엄마의 발걸음은 전보다 후련하고, 힘이 들어가 있었다.
손을 잡아주는 누나를 보며 웃으셨다.
나는 가장 뒤떨어져 걸어 내려오다가,
차에 타기 전 마음으로만 말했다.
‘미워하는 마음을 이곳에 두고 가자.’
미움이 계속 내 안에 있다면
녀석은 언제고 나에게 말썽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나를 예민하게 할 거고,
믿어주는 사람을 아프게 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미움을
더는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면,
이곳에 두고 간다면
녀석은 그곳에서
하늘이 되고, 바람이 되고
햇살이 되고, 흙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새로 시작할 힘을 내 안에 채워 넣을 수 있기를.
구리에 있는 아울렛에 들러 나들이를 즐기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네 시가 채 안 돼 있었다.
가족들은 뒤늦게 몰려온 피로로 인해
잠이 들어 있다.
나도 잠시간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다가,
이날을 글로 남겨두고 싶어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이 글은 누나가 결혼식을 올린
토요일 저녁에 발행된다.
축의대를 맡기로 했는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무사히 잘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그날 저녁에
다시 이 글을 읽고 싶다.
마지막으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우리 가족을 앞으로도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특히,
정말 많이 보고 싶어 하시는 우리 엄마에게
행복을 가득 빌어주셨으면.
나는 오늘,
미워하는 마음 하나를 그곳에 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