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대충이라는 말은 너무 쉽게 나왔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한 달 남짓 흐른 무렵이었다.
“아, 씨….”
점심을 일찍 먹고 교실로 돌아와 자고 있었는데, 어깨를 흔드는 성가신 손길이 느껴졌다. 찌뿌둥했던 시야가 느리게 밝아지고 나니, 내 앞엔 같은 반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친하진 않았다.
“그, 담임쌤이 상담하는 거… 네 차례래.”
그 말에 얼굴이 단번에 구겨졌다. 필요 없다고, 짜증난다 진짜. 그렇게 중얼거리자 녀석은 그 말이 자기한테 향한 줄 알았는지 ‘헉’하고 어깨를 움츠리면서 자리에서 벗어났다.
슬리퍼를 끌며 내려온 교무실, 문을 연 그 안에는 담임의 머리만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어, 앉아.”
그는 나를 보지 않으며 말했고, 나는 일부러 들리도록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담임은 자기 얼굴 앞으로 생기부를 펼쳐 들고 있었다. 형광펜 자국 사이로 빈칸이 많았다. 얼마 뒤, 서류를 탁 내려놓은 담임이 입을 열었다.
“너, 학교 생활을 대충 하는 것 같다.”
안경을 고쳐 쓰며, 담임은 그제야 나를 바라봤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내가 널 이대로 졸업시켜도 될까?”
“아, 또 그 소리야. 진짜.”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담임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넌 이런 것도 못 채우냐? 봉사활동 몇 시간만 해도 적히는 몇 줄을, 그마저도 안 해?”
그는 보란 듯이 손가락을 뻗어 서류를 가리켰다.
“다른 애들 생기부는 장편이야. 네 건 단편도 안 되지. 이걸 인쇄한 종이가 불쌍할 지경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점심에 부르고 난리야.”
인상을 지으며 뱉어낸 목소리에, 담임이 입을 뗐다.
“그래. 그래서 내가 너한테 딱 맞는 봉사활동을 준비해 놨다.”
그러면서 담임이 책상 위로 내민 건 종이 한 장이었다. 그때, 무심하기만 하던 시선을 흘깃 종이 위로 옮겼다.
[교내 봉사활동: 학교 뒤 축사 토끼 돌보기]
“뭐야… 토끼?”
“그래,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라.”
어이없어하는 나를 두고 담임이 물었다.
“왜, 못하겠냐?”
“내가 왜 이딴 걸 해야 하는데요?”
반항심을 담아 던진 말, 그러나 담임은 여유롭게 받아쳤다. 아주 얄밉게도.
“그래, 그럼 안 해도 된다.”
이렇게나 싱겁게 끝날 리가 없었다.
“폼은 다 잡고 다니면서, 토끼 밥 하나 제대로 못 주는 놈이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거냐."
“뭐, 뭐라고요?”
사람 안에 자존심 스위치 비슷한 게 있다면 담임의 그 말이 그걸 한순간에 수백 번은 연타한 것 같았다.
“하면 될 거 아냐! 하면!”
“그래. 해봐라.”
결국 크게 외쳐버린 내게, 담임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토끼 돌보기 이러고 있네.”
종례가 끝나고 나면 늘 미련 없이 정문을 넘었던 나는 지금, 학교 뒤편의 축사로 향하고 있었다. 학교 안에 있지만 좀처럼 존재감이 없던 곳, 그래서 졸업까지 가볼 일 없다고 여겼는데, 그런 사람이 지금 스스로 찾아가고 있었다.
“별로다. 정말로.”
굳게 닫힌 철문, 굳이 열고 싶지도 않았다. 그 인상만큼이나 문고리를 잡은 손끝으로 올라오는 촉감은 불쾌할 만큼 차가웠다.
한숨 몇 번 쉬다가 문을 여니 볕이 비스듬히 들어왔고, 건초 냄새가 불어왔다. 하얀 털의 작은 토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문턱을 다 넘지는 못하고 있다가. 엉거주춤 안으로 몸을 들였다. 그러고서 입을 열었다.
“…너, 여기 원래 하던 애냐?”
거기엔 어느 여자아이가 있었다.
내 물음에도 여자아이는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이기만 했다. 나는 바지 양 주머니에 손을 넣고 헛웃음을 흘렸다.
“난 뭐 그냥 대충 하는 척만 할 테니까, 너나 하던 대로 돌봐라.”
그때였다. 뒤쪽에서 문이 쾅 닫혔다.
“대충?”
그 소음보다도 나를 흠칫하게 한 건, 어느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담임이 두 팔을 꼬고 서 있었다.
“넌 대충이라는 말이 참 쉽게 나온다. 그렇게 살아서 어디 가겠냐?”
“뭐, 뭐야.”
“대충 할 거면 하지 마. 대신, 책임질 각오도 하지 말고.”
담임의 검은 뿔테 안경테가 번쩍였고, 빛이 지나가고서 마주한 눈빛은 예상보다도 날카로웠다.
말문이 막혀 시선을 피하자, 담임은 축사 안쪽을 한 번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둘이서 같이 토끼 돌본다. 너, 빠지는 거 없다.”
그렇게 떠나는 줄로만 알았던 담임은 문턱을 넘고 나서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핸드폰을 든 손을 흔들어댔다.
“연서야, 이 새끼 뺀질거리면 바로 연락해라. 알지?”
문이 닫히고, 나는 맨바닥을 한 번 짓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