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

by Luel

배가 고프다.

꿈이 너무 생생한 탓에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한다.

해는 이제 막 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잠깐의 빛을 입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나는 어둡고 습한 이 공기가 편하다.

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TV소리는 다소 날카롭지만 백색소음 정도로 치부할 수 있었다.

저 소리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장을 올려다 본다.

물이 샌 자국을 몇 초간 바라보면 점점 자국이 퍼져가지만,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돌아온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의 밀물과 썰물을 만들고, 그 속에 어부와 물고기, 그보다 작은 물고기, 플랑크톤, 그리고 나를 그려넣는다.

내 침대 위엔 바다가 보이는 창문이 있고, 그 작은 틈으로 회색의 태양이 떠오르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백색소음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려본다.

냉장고엔 포장을 뜯지 않은 반찬이 있지만, 나는 식탁 위에 남겨진 김밥에 더 눈이 간다.

놓여져 있지만 아직 쓰지 않은 젓가락은 분명 나를 위한 것이라는 확신은 나름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깐 멈춰놨던 바다를 다시 재생하고, 노을을 상상하다 사라지는게 싫어 달을 가져왔다.

나는 달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안다.


내 방 한 켠엔 오래된 책들이 쌓여있다.

사람의 손길이 오래 닿지 않은 탓에 쌓인 먼지가 굳어 떼어내려고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깨달았다. 책은 이미 박제된 것이다.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알싸한 포르말린 향은 분명 저기서 비롯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내 연구실에도 지진이 찾아와 내 물병을 다 엎어주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 생각 끝에 나는 역시 불완전한 시신경이 문제라고 결론 지었다.

전자파의 파장은 보지 못하면서도 네모 상자 안의 것들을 믿는다.

그럼 내 이름도 부여된 믿음일까.

머리가 아파온다. 나는 다시 잠에 들어야만 한다.


태양이 떠오른 시간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알싸한 향이 내 목을 조르면 나는 다시 잠에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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