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경험이 영감으로 재탄생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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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모험담을 늘어놓거나 현란한 글솜씨로 감탄을 자아내는 회고록이 있다. 반면에 누구나 겪을 법한 경험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전하고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는 체험기도 있다. <H 마트에서 울다>는 후자에 좀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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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자우너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일상 속 긴장과 함께 자랐다. 방학 때 방문하는 외갓집이나 한 번씩 푸드코트에서 사 먹는 한식으로는 한국식 교육관을 가진 엄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혼혈 외양으로 인해 한인 모임에서는 외부인, 학교에서는 아시안으로 규정되며 혼란한 시절을 보낸다. 원서로 읽으면서 작가가 외부인으로서 한국 음식, 문화, 사람을 바라보며 느낀 이질감, 생경함이 더 생생히 전달되었다. 이제까지 당연하게 체화한 것들이 사실 환경에 의해 주입되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새삼 깨닫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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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엄마의 암 진단 소식을 듣고 미셸은 6개월간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 시간 동안 엄마의 가족, 엄마의 언어, 엄마의 음식, 엄마의 생각을 온전히 접하고 공감하고 간직한다. 미셸의 이야기는 엄마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움과 함께 적어 내려간 솔직담백한 글과 엄마와의 추억을 바탕으로 만든 음악을 통해 비로소 혼란스러운 정체성이 승화되고 유일무이한 아티스트로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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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은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흔한 소재지만, H 마트 이야기는 소재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살리며 진부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다만, 엄마의 죽음이 영감이 되어 창작한 작품들로 성공한 아티스트가 염원하는 떠난 엄마가 현재 모습을 목격했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나 아이러니하고 공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