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잃은 청춘이 아닌 용기를 만드는 청춘이 되자.
2015년에 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었다. 혼자 맛있는 식사를 하러 갔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왠지 꼭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루고 싶었다.
신호등이 바뀌었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3곡정도를 열심히 부르기 시작했더니 지나가던 행인들이 약 1링깃씩 5링깃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두려워 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야성을 길러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안정감을 취하지 아니하고 모험성을 가지고 과감히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는 시간이 다시 길어졌고 한국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안정감과 완벽하지 않으면 도전하지 않는 완벽주의에 나도 모르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내가 잃어버렸던 야성을 찾을 기회가 필요했다. 그 기회가 오늘 찾아왔고 결국 어찌됐건 노래를 불렀고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야성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가 접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꺼려하는 경향이 짙다. 그 이유는 사람은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본인 스스로가 세워 놓은 기준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이 쌓여 기준점이 생기고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을 따로 구분하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해 반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경험이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지혜를 건네주기도 하지만 경험을 오랫동안 의지하게 될 경우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앗아가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들이 내면에 모두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바램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치부하고 피해버리고 만다. 어려울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스스로 단정짓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스로 야성을 잃어가게 되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야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하고싶은 일과 관련된 최소한의 일들을 도전해보는 시도를 이어 나가야 한다. 사진이 찍고 싶다면 핸드폰으로라도 사진을 찍어서 올려보고 글을 써보고 싶다면 페이스북이든 네이버든 글을 올리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혹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면 당장 작은 사물이라도 그려보는 시도를 어떻게든 이루어 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야성을 잃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용기를 잃어 버리면 절대로 사람은 성공할 수가 없다. 좋아하는 여성을 얻기 위해서도 용기를 내야 하고 일하고 싶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적어낼 용기가 필요하다. 유투버가 되고 싶다면 동영상 컨텐츠를 제작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들이 모일 때 비로소 야성을 지닌 멋진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모험중심적인 삶이 옳은 삶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삶에서 고군분투 하기 위해 직장을 찾는 행동이 더 멋지다고도 표현한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분명히 멋지고 박수받을만한 삶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성취를 위해 한 번쯤은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야성을 길러야 한다고 나는 분명히 답하고 싶다.
그것이 청춘이라는 두 글자가 가진 힘이고 청춘이 가진 생명력인 것이다. 경험이 적어 지식은 적고 위험해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청춘이라는 것은 꺼지지 않는 재적 에너지라는 재산을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러니 인생에 있어서 아직 시도해 보지 못한 일들이 있다면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도전해보라. 그리고 야성을 길러라. 그 야성이 당신을 분명코 성공이라는 길로 인도해주는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