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를 향한 1인 기업가의 몸부림"
퇴사 한지 거진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퇴사 당일날 당당하게 아침에 실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퇴사하겠노라고 말이다. 생각 없이 퇴사를 결정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2018년 1월 150권의 책을 읽기로 결정했던 그 어느 날 친구 녀석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빌리게 되었다. 한국과 전 세계에서는 이미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부의 추월차선"이 그것이다. 그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나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곧 노예를 뜻한다.
이 말이 너무나도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꼭 나를 지칭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틀을 위해서 5일을 희생하는 5:2 비율의 말도 안 되는 삶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꼬락서니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틀의 자유를 위해 5일을 희생하고 5일을 버티기 위해 이틀을 쉬거나 휴일을 보낸다는 논리 자체가 나로 하여금 화를 내게 만들었다. 내 삶이 딱 그러했다. 한 달, 한 달을 버티기 위해 돈을 버는 근근이 먹고사니즘에 파묻혀 있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퇴사하는 그 날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심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이것이었다.
노예를 벗어나기 위해 일단 퇴사한다.
누군가는 내게 그렇게 말하긴 했다. 무턱대고 퇴사하는 것이 꼭 답이겠냐고. 다음 달 생계비는 어쩔 것이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들을 내놓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물론 생각보다 가능성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간 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향해 한 발 내딛기로 했다. 어차피 회사에 있어도 고민은 사실상 별반 다르지 않다. 차라리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시도하는 편이 좀 더 현실적인 가능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이 섰다.
노예의 삶을 살지 않고 1인 창업가로 살기 위해서는 퇴사 후의 액션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부의 추월차선 외에도 몇몇의 책들의 이야기를 통해 부를 쌓기 위한 방법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었다.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는 것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소비하는 방법이 아니라 생산하는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자면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다면 사회가 심어준 노예 사상에서는 메커니즘이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물건을 보니 예쁘다. 수중에 있는 돈도 적당한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곧 월급날이다. 그래 좋다. 구매하자. 왠지 이 물건은 꼭 봄에 나에게 딱 이쁠 것 같아.'
그러나 생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생각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옷을 판매하는 사람은 어디에서 물건을 얻어오고 어떤 방식으로 물건을 세팅하고 마케팅 활동을 활성화하며 하루에 매출은 얼마가 나올까?'
다만 생산자 마인드를 주변인들에게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한결같다. '머리 아프고 생각하기 싫다.' 이러 반응이 튀어나오게 된다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앞으로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10년 후쯤 수십 가지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회사들은 사라지고 프리랜서와 Gig Economy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이는 시대가 다가오는 가운데 좀 더 밝은 미래를 살아가고자 한다면 가치를 생산하는 가치 생산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머리가 아프고 생각하기 싫다면 경제적 자유도 시간적 자유도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물어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지금 큰돈을 벌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물론 나도 아직 만들지 못한 상황이다. 아니 이제야 하나둘씩 내가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시도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혹은 내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너나 잘해라.' 사실상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글을 남겨서 공유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콘텐츠라는 것을 만드는 생산자가 되기 위한 한 사람의 발버둥이기 때문이다. 발버둥을 치다 보면 일어서게 될 것이고 일어서게 되면 보는 관점이 달라지니 뛰어갈 목표가 생겨날 것이다. 그래서 나라도 잘하기 위해 글을 남기는 행위를 지속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항상 '속력'이 빨라야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다고 배웠다. 속력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살다 보니 다이내믹함도 있었고 남부럽지 않은 경제성장도 이루어 내었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배달의 민족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속력만 외치다 보니 브레이크가 마모되었고 이는 방향을 제어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이 사회라는 구성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각 개개인마다 동일하게 적용된 탓에 우리 모두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방향을 알지 못하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시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방향성이 대두되었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를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알지 못했다.
퇴직금 아닌 퇴직금으로 짧은 시간 동안 살아가려니 나도 쉽지는 않다. 하나 적어도 나의 '삶'이라는 시간을 누군가의 부를 쌓아주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지는 않기에 적어도 노예생활처럼 괴롭지는 않다. 생산품은 고스란히 나의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것도 기쁨 중에 하나다. 이제는 이 생산품을 내다 팔 시기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성공할 수 없지만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반복한다면 서두에 주장했었던 나의 생각과 사상을 증명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