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평균점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대단한 착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이 진리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런 시대 속에서 저자는 수 십년전 미국에서 이루어진 파일럿의 평균을 내려 했다가 수 많은 추락 사고가 있었음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저자가 말하기를 평균적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몸무게도 평균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무엇 하나 평균에 가까운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평균'이라는 허상에 매여 있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평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케틀레라는 사람은 과학자였다. 그것도 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 당시 그가 살던 시대는 지금처럼 활자중심의 빅데이터가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는 여러가지의 수치를 나타낼 수 있는 평균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 때에 케틀레는 천문학에서 사용되었던 평균산술을 사람들에게도 적용해 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정부는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한 기법이 필요했고 케틀레는 그에 대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타이밍이 너무나 잘 맞아 떨어졌던 것일까. 케틀레의 평균적용법은 바야흐로 평균의 시대를 여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평균이 정상이 되고 개개인이 오류가 되며 과학이 정형화에 정당성을 각인시켜주는 시대가 되어진 것이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월층과 저능층으로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한글을 깨우치는 평균적인 기간이 1년이라고 했을 때 A라는 사람이 1년이 아닌 3년이 걸리면 우리는 그를 저능층으로 판단하기 일쑤다. 반면 B라는 사람이 6개월 안에 깨우치면 신동이라며 치켜 세우기 바쁘다. 정확한 판단은 A와 B는 결국 한글을 깨우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동등해질 수 있다. 우리는 이렇듯 평균이라는 허상에 가깝지 못하면 뒤떨어진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고 이는 개개인이 가진 특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평균이라는 족쇄에 갇힌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평균이라는 허상은 기업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관리자'라는 존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쉽게 생각해보면 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제조업'이라는 업종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자리가 많이 생산된 것은 맞다. 다만 개개인이 가진 특성이나 개성은 무시한 채 모든 사람이 크든 작든 평균적인 능률을 낼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을 시킨다. 그러한 관리를 할 수 있는 중간 관리자가 탄생하게 되었고 수 많은 기업들이 이전에도 지금도 평균적인 능률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을 한다.
사람은 평균에 가까운 능률을 낼 수도 없을 뿐더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상상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조금 더 빠르게 일할 수도 있고 느릴 수 있지만 마치 기계 부속품처럼 평균에 맞추도록 사람을 조련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기계에서 사용하는 부품의 대우를 하게 되고 이는 사회의 불만을 키워내고 자존감을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균주의는 교육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사회에 각자의 개성에 따른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말 잘듣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런 덕택에 한국은 사교육 열풍이 심각하게 불어왔고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사교육에 목을 매달고 있다.
우리는 일단 모든 학생들을 국,영,수,사,과 와 같은 과목으로 점수를 채점한다. 그리고는 평균점수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은 열등반(?)으로 그리고 평균이상의 점수에 미치는 학생들은 우등반(?)으로 나누어 버린다. 그리고는 열등반(?)이라 불리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며 쓸모없는 존재 취급을 한다. 무의식적으로 공부 속칭 공부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으로 나누어 버리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굉장히 잘못된 방식으로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누군가는 수학공식을 글자가 아닌 실생활에서 이해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림으로 공부하거나 기하학으로 공부할 때 깨우칠수도 있다. 누군가는 천천히 깨우치지만 평생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좀 더 빠르게 기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과정적으로 보았을 때 빠르고 느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 깨우쳤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고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을 땐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내 나이때에 대부분 보습학원선생님이 아니고서야 그다지 기억하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어떠한 이유로 발생하게 된 것일까? 상황별 맥락에서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을 구분짓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중 하나로 이루어지는 MBTI가 그 중 하나다. MBTI는 나름 과학적으로 설계되어서 사람을 16가지로 구분한다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할 때마다 바뀌기도 하며 외향적인 사람이 모든 상황에 있어서 외향적이지 않고 내향적이라 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사람을 만날 땐 외향적일수도 있으나 일을 처리할 때 있어서는 내향적인 사람도 존재한다. 즉, 상황별로 사람의 성격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황별로 다른 개개인에게 맞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물론 데려다가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는 기업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기업에서 제공하는 수업이나 스킬중에 선택하여 익히도록 한다.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고 그에 따른 증명서를 발급한다. 기업은 그 사람을 채용한다. 실제로 이런 일들을 인도에 있는 기업은 진행하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인재들로 인해 기업의 경쟁력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교육시스템이 다음과 같이 변하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한다. 저자가 제안한 것은 자격증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만일 내가 프로그래밍이 공부하고 싶다면 그에 따른 자격증처럼 수업을 이수하고 취득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자격증이 존재하지만 허얼 좋은 자격증일 뿐 쓸모 있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12년이라는 시간을 아깝게 쓸모없는 과목에 투자하는 것이 옳지 않다.
어느 시점부터 자격증제처럼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실제적인 스킬을 익힐 수 있음은 물론 부담이 큰 학자금을 내야하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을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수준 낮은 강의는 듣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갖추어지게 되면 교수들의 수업도 질이 향상 될 것이고 이것은 결국 대학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이렇듯 평균의 허상에 휩싸여 살아온 우리는 지금이라도 눈에 가려진 베일을 벗고 진실을 마주하고 더 나은 대안을 가지고 미래를 살아가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