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화장품 회사로 취업이나 이직을 생각하고 계시나요?
뷰티업계에서 일한 지 어언 8년 차, 화장품 대기업(정확히 규모로 따지자면 '아모레퍼시픽'은 중견기업이나 편의상 대기업으로 칭함), 스타트업, 뷰티 크리에이터를 모두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오늘은 화장품 회사 취업을 꿈꾸는 분들에게 굳이 아모레퍼시픽이나 로레알처럼 큰 회사를 고집할 필요가 없는 이유 3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현실을 직시합시다. 대기업은 입사 자체가 힘듭니다. 아래는 최근 아모레퍼시픽의 마케팅 신입 채용 공고(역시나 수시 채용)인데요. 사실 이 공고를 보고 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우대사항
영어 능통자
디지털 트렌드, 디지털 마케팅 관련 관심자
뷰티산업 또는 디지털 직군의 인턴 경험 보유자
마케팅 관련 대외활동 및 마케팅 관련 수상 경험
SEO, SEM, GA360, GA태깅에 대한 이해도 보유 및 수행 경험
데이터 기반한 UI/UX 개선 및 최적화 경험
JIRA&Confluence Tool에 대한 이해도 보유 및 사용 경험
공고를 읽어보면 최소한 공모전 수상이나 인턴 경험이 있는 사람을 원하고, 대학 생활 열심히 하고 갓 졸업한 신입이 데이터 기반한 UI 최적화 경험을 어디서 쌓을 수 있나요...? 우대 사항을 만족시키려면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필요한데 회사에서는 경험이 없는 사람을 뽑질 않는, 창과 방패의 싸움 같은 상황이죠.
2017년을 기점으로 공채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경력직 선호 현상 때문에 대학생들의 취업문은 매년 좁아지고 있죠. 꼭 대기업이 아니라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라면 저는 스타트업에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예전에는 화장품 회사들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분류했다면 요즘은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화장품 시장에서 전통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높았다면 요즘은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또 새로운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있어요. 소비자 입장에서만 생각해봐도 예전보다 화장품 브랜드 개수가 확 늘어났죠.
요즘은 정말 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생겼잖아요. 특히 과거보다 실력 있는 신생 브랜드들이 눈 뜨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요. 올해 초부터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님들과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진행하고 있는데 인터뷰를 할 때마다 크게 체감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예를 들면 비건 화장품 브랜드인 ‘멜릭서'는 3년 만에 아마존에서 한국 제품 탑 10 셀러로 선정이 됐을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브랜드고요. 아로마티카도 MZ세대의 그린슈머&비건 트렌드와 만나면서 매출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또, 한국콜마와 같은 화장품 제조업체에서 직접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하고요.
제가 화장품 회사에 취업을 준비하던 2012년~2015년에는 화장품 회사라고 하면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그리고 외국계 기업으로는 LVMH, 로레알, 시세이도 크게 5개 회사가 있었어요. 취업할 수 있는 회사도 굉장히 한정적이었고 백화점 vs 로드샵 브랜드로 화장품의 급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때도 대기업 취업은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갈 수 있는 화장품 회사의 선택지 자체가 적었어요. 그에 반해 지금은 오히려 기회가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화장품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모두 경험해본 입장에서, 스타트업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해볼게요.
먼저 스타트업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트렌드에 민감한 화장품 업계의 특성상 대기업에 비해 시장의 변화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서 유리합니다. 예를 들면 회사 SNS 계정에 올리는 포스팅도 대기업에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 컨펌을 받은 후에야 가능하다면, 스타트업에서는 담당자의 판단 하에 일단 올린 후 반응이 별로면 내리는 방식으로 즉각적으로 소비자들의 반응에 대응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 현재에는 스타트업의 빠른 업무 방식이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회사 안에서 다양한 일을 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아모레퍼시픽에서 화장품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브랜드 매니저로 직무를 변경했는데요. 브랜드 매니저가 무슨 일을 하냐고요? ‘제품 개발 빼고 모든 일을 다 하는 일’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제가 했던 일을 읊어보자면, 제품 주문받아서 엑셀 시트 정리하고, 물류창고 입고 넣고, 제품 개발 검수도 하고, 인플루언서 공구 마켓도 진행하고, 회사 SNS 계정도 만들고, 퍼포먼스 마케팅까지 정말 다~했어요.
물론 이건 사람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스타트업을 다니다 보면 ‘내 직무가 아닌데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하고 현타가 올 때가 분명 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대기업은 담당 부서와 직무가 명확한 만큼 주어진 일만 해야 하잖아요. 내가 물류 관리 팀인데 마케팅 팀의 업무까지 하면 오히려 업무 범위를 침범한다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업무 방식을 모두 경험해보니 여러 가지 직무를 경험해보는 게 넥스트 커리어에 훨씬 도움이 되더라고요. 지금의 개인 사업을 할 때 스타트업에서 쌓은 업무 경험들이 정말 좋은 발판이 되어줬어요. 요즘 대기업에서도 MZ세대의 이직을 막기 위해 원하는 사람에 한해 직무 전환 기회를 준다고 하잖아요? 한 회사에 다니면서 다양한 직무 경험을 쌓는 게 요즘 트렌드에도 잘 맞는 것 같고요.
또, 화장품 회사에서 일은 하고 싶은데 뾰족하게 어떤 직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더더욱 스타트업을 추천하고 싶어요.
화장품 회사 안에서도 다양한 직무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온라인 MD, 디지털 콘텐츠 제작, 마케팅 …
단순히 화장품이 좋아서 화장품 회사에서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자기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을 때 만족하는지 찾아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취업 준비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작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는 게 커리어 쌓기에도, 어떤 일이 나와 맞는지 아닌지 판단하기에도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라 생각해요. 여러 직무를 경험하며 화장품 업계에 몸을 담글 탐색전을 하는 시간인 거죠.
요즘 같은 퍼스널 브랜딩 시대에는 꼭 회사에 입사를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화장품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사서 발라보고, 그 과정을 찍어서 올리고.. 취미나 놀이처럼 뷰티 유튜브를 시작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좋아서 올린 영상이 관심을 많이 받으면 협찬이나 광고도 들어오고, 요즘은 뷰티 인플루언서들이 자기만의 화장품 브랜드를 만드는 경우도 있죠. 이처럼 뷰티업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화장품을 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진 것 같아요.
또, 글로벌 진출도 개인 SNS 채널을 활용해 너무나 쉽게 가능하죠. 틱톡이나 유튜브는 한국 사람들만 보는 플랫폼이 아니니 뷰티 콘텐츠로 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요. 그래서 뷰티 업계에서는 외국어 실력도 갖춰두면 무조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 혹시 차이나 드림을 꾸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솔직히 호시절은 끝났다고 말하고 싶어요. 중국도 기술이 굉장히 많이 발전했고 중국 사람들도 더 이상 한국 화장품에 열광하지 않아요. 여전히 K콘텐츠의 영향으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높긴 하지만, 중국의 글로시에라 불리는 퍼펙트 다이어리와 같은 자국 로컬 브랜드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 진출하기만 하면 성공한다?! 이젠 옛날 얘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리하자면 대기업뿐만 아니라 작은 화장품 브랜드여도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곳을 알아보자!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보자! 길이 열릴 것이다!입니다:) 읽기만 하고 실행에 안 옮기면 다 소용없는 거 아시죠~? 취준생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하네요. 의견 자유롭게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