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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선 Jul 03. 2024

대화가 필요해

주저리주저리 대화법

주저리주저리의 사전적 의미는

'너저분하게 이것저것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요즘의 내가 꼭 이런 모양새다.


언제부터였을까?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핵심만 짧게 말을 하는 편이다)

말이 많은 사람도 별로 좋아하거나 신뢰하지 않던 내가 어쩌다가?

큰 아들 덕분(?)이다.


큰 아들은 대학생활을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인서울 대학이고 집도 서울에 있지만 통학이 멀다고 하길래 독립을 시켰고

졸업 후에야 집으로 들어왔다. 


아들은 말이 없고 생각이 깊은 아이다. 

무엇을 물어봐도 늘 단답형의 대답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아들의 별명은  '응' 도령이다.

카톡에 긴 글을 보내도 대답은 '응' 한마디뿐이라서 내가 별명을 지어줬다.


(지난해) 전문자격증 공부를 한다고 기숙학원을 들어갔던 아들이 개월 만에 돌아왔다. 

시험을 안 보고 다른 취업준비를 하겠다면서.

자격증시험에 합격해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바랐는데.. 

본인이 다른 선택을 하겠다니 도리가 없다.

자식인생을 부모가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일이고

"너의 선택이니 존중하고 잘 알아서 하라"고만했다.


아들과의 조금은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주택의 2층과 옥탑방이 분리된 공간이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수발(?)을 들고 있다.

빨래며 청소, 식사까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취업이 언제 될지 확정된 것도 아니고..

취업스트레스받을까 봐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주저리주저리 대화법이다. 

아들과 조금 더 편하고 친밀해지고 싶어서.


주저리주저리 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들이 밥을 먹으러 내려오는 시간이 적절한 타이밍이다.

오늘은 어떤 얘기를 할까? 머릿속이 소용돌이친다. 

미리 생각해 두었던 주제를 까먹을 때도 있다.


뉴스나 유튜브에서 본 것, 일상적인 얘기와 친척들 소식을 간간히 전하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취업준비는 잘 되고 있나? 엄마가 도울 일은 없을까?" 

그 정도 얘기를 넌지시 던지며 아들의 대답과 얼굴을 살피기도 한다.


묵묵히 밥을 먹고 간간히 핸드폰을 보면서도 아들은 내 얘기를 듣고 있었다.

안 듣는 것 같지만 듣고 있는 것이 맞다.

대답도 하고 되묻기도 하는 것을 보면 분명 그렇다.


대화 주제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때 그때 달라요!

사회적인 이슈나 관심사를 얘기하고 아들의 생각을 묻기도 한다.

돈, 결혼, 미래, 취업, 투자, 읽은 책 이야기 등에 대해서.


"아들은 평생 얼마 정도의 자산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아? 10억 아니면 20억?"

"모르지."

"엄마는 울 아들들이 열심히 자산을 모으고 불려서 돈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네."

".... "


매일경제 뉴스 기사 (24. 6.24일 자)


"뉴스를 보니까 요즘 MZ세대들의 결혼관이 많이 바뀐다고 하네. 

 결혼식을 생략하고 그 비용으로 신혼여행을 업그레이드한다거나 필요한 쓴다고.

 엄마도 그 생각에 공감하네. 결혼식에 그렇게 많은 비용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어. 

 어차피 예식장에는 부모들의 손님이 많을 테고 

 신랑신부는 얼굴도 모르는 손님에게 인사하는 것이 부담일 수 있고. 결혼비용도 그렇고.

 엄마는 울 아들들은 스몰웨딩으로 했으면 좋겠네. 

 엄마는 굳이 청첩장 많이 뿌리고 결혼비용에 몇 천만 원씩 지출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많은 손님을 초대할 생각도 없고. 부조금으로 지인들에게 부담 주는 것도 싫고..

 결혼은 너희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엄마 생각은 그렇다는 거지."


"취업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사'자 들어가는 직업만이 최고는 아니고 눈높이를 조금 낮춰도 돼.

 남들 시선 의식할 필요도 없어. 내 인생 내가 사는 거지. 남들과 비교하고 의식하면서 살 필요는 없어.

 내가 행복하면 되는 거지. 뭐."


얼마 전에는 약국을 갔다 온 얘기를 했다.

"약사도 꼭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더라. 

 약국 들어가는데 약 냄새가 확 풍기는 데~  

 하루종일 아픈 사람들 상대하며 약을 만지는 직업이 좋기만 할까 싶더라.

 이모도 약사니까 돈은 잘 벌겠지만.. 엄마는 별로 부럽지 않더라. 의사도 그렇고." 


가끔은 우리(나와 남편) 얘기도 해준다.

부모가 자식을 잘 모르는 것처럼 자식도 부모를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어떻게 자랐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울 아들들은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그저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다.

아들은 내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수다(주저리주저리)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관심과 작은(?) 노력임을 느낄 것이다. 


대화가 필요해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미디와 노래가 인기였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대화가 부족한 가족이 많다.

모처럼 외식을 가서도 각자 핸드폰만 보고 있는 모습이 흔하기도 하고.


대화는 얼굴 맞대고 '자~ 지금부터 대화하자. 시작 땡~~'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주저리주저리도 대화다.

이 대화법을 통해 관심과 이해와 공감, 친밀감을 느끼는 가족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부모가 먼저 주저리주저리 대화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자식들에게 양보하지 말고.


오늘은 또 무슨 주제로 아들과 주저리주저리 대화를 할까?


관심은 사랑이다.


지금 행복하자.

happy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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