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례식도… 그랬으면 좋겠다

by 김태선

우리가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부모님의 마지막을 보내드리는 순간일 겁니다.

우리 나이쯤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장례를 치러본 경험도 생기곤 하지요.
그 시간을 떠올려보면, 정말 부모님과 제대로 작별할 시간이 있었나…
문득 마음이 멈춰 서게 됩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슬픔보다 먼저 밀려오는 건
끝없이 이어지는 조문 인사와 복잡한 의례 절차,
그리고 누가 화환을 보냈는지 확인해야 하는 어색한 사회적 계산들입니다.
정작 고인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음을 다독일 시간은 거의 없고,
슬픔은 뒤로 밀린 채 ‘형식’이 하루를 채워갑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수와 화환 크기로 가세를 가늠하던 오래된 기준들.
우리 세대는 이제 그런 장례문화를
조금씩 내려놓아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세대는 형제, 자매가 많았기에
장례의 모든 절차를 나누어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 세대는 다릅니다.
형제도 많지 않고,
한 명뿐인 경우도 흔하지요.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 자녀가 감당해야 할 장례는

지금의 방식과 같아도 괜찮을까요?
조문객도 많지 않은데
큰 장례식장을 3일 동안 빌리고,
음식과 접객, 예의와 절차로
체력과 마음을 모두 소진하게 해도 되는 걸까요?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부모는 늘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합니다.
몸이 아파도, 외로워도,
괜히 신경 쓸까 봐 말하지 않고 참고 살아온 게 우리 부모였고,

지금의 우리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마지막 순간만큼은
조금 더 단순하고,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본질’에 가까운 방식이면 좋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1일 가족장’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조문객을 따로 받지 않고,
정말 가까운 가족끼리만 하루 동안
조용하고 온전히 고인과 시간을 보내는 장례.
형식은 줄었지만, 마음은 더 깊어졌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코로나 시기, 우리는 의도치 않게 조용한 장례를 경험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슬픔 앞에서 꼭 복잡할 필요는 없다는 것,
시간이 길다고 마음이 더 깊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오히려 “짧지만 진심을 담은 이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더군요.

자식에게 큰돈을 쓰게 하거나,
너무 과한 절차 속에서 지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내 마지막이 누군가의 부담이 되기보다
조용한 감사와 작별의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나의 장례식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끔씩 생각해 봅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되고,
큰 장례식장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가족이 잠시 모여
내가 살아온 시간을 떠올리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한마디 해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오래 남지 않는 꽃보다는
짧지만 따뜻한 기억 하나면 족합니다.


세상이 바뀌고, 삶의 방식이 바뀌듯
장례문화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세대가 먼저 가볍게 바꾸면
자식 세대는 덜 부담스럽고,
우리도 더 따뜻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정리해 봅니다.

“나의 장례식은…
조용한 하루, 가족끼리만.
부담 없이, 따뜻하게.
그렇게 보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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