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싫어하는 사람이 주는 위안

by hosu네

생각해 보니 일한 지 올해 벌써 18년 차가 되었다. 한 해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일하고, 또 헤어지기도 많이 반복했다. 넓고 큰 이 공간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을 줄 여력이 있나 싶지만, 누가 그랬던가. ’ 생각보다 세상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고. 내가 느낀 바는, ’ 생각보다 세상은 당신에게 관심이 꽤나 있다.‘쪽이다.


특히 내가 20대였을 때는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세상에 불만이 가득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불합리한 것에는 나서서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내가 일하는 학교라는 곳은 보수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에 -특히 약 20년 전 그때 환경은 더더욱 그랬다- 그런 내가 남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한 번은 교장선생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업무를 맡았다. 외국과 교류하는 업무였는데, 당시 국제 정세의 변화로 국제 교류가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여기서 국제 교류라 함은 학생들을 데리고 외국에 나가는 걸 말한다. 갈 학생들을 선발하고, 숙박 및 일정을 짜고, 비행기 티켓이라던가 보험 등 다양한 보조 업무가 함께 곁들여진 업무였다. 3번이 미뤄지자 교장선생님은 ‘그냥 가지 말자’고 하셨다. 나는 그 해 하반기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가 이미 6월이 지난 시점이었으니 그 이후로 추진하기에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교장선생님은 다시 이 일을 추진해 보자고 했고, 나는 반대했다. 국제 정세가 변화하지 않았으니 추진을 해 봤자 결국엔 가지 못하고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권위를 들이밀며 막 화를 내시는 그분 앞에서 나도 결국 화를 내버렸다. 못하겠다고. 그러자 ‘관둬!’라고 하시며 내 교실을 나가버리셨다.


그 이후 부장님들이 내 교실에 찾아왔다.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들이 대신 이 일을 해야 하는데 넌 죄책감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한 번 교장에게 가서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라고 말했다. 나는 다들 이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진해 봤자 결국 딜레이 끝에 무산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화를 내고 무례하게 대한 교장에게 고개를 숙이라니, 차라리 미움을 사고 말지.라는 생각을 하며 다 싫다고 했다. 이후 나 대신 추진하는 분이 생겼고, 그 해 교류는 얼마 뒤 결국 취소되었다.

그때 나에 대한 소문이 아주 안 좋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이었다. 협조적이지 않은 교사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나서 그랬겠구나 싶었다. 직장에는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모두가 깎아내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한 불만을 말하면 반드시 그에 동의할 사람이 많을 걸 모두가 아는 사람이. 그때 잘 알지는 못했지만, 희미하게나마 그 학교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안 좋구나라고 느낀 건, 교장과의 일 2년 뒤 한 부장님의 지나가는 말로부터였다. ‘선생님, 생각보다 사람이 되게 괜찮다.’라는 그 말.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싫어하는 사람은 그 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 소재가 된다. 왕따와는 다르다. 얼굴을 완전히 바꾸어 끼는 것처럼, 그 사람 앞에서는 다른 사람이 된 듯 대화를 하게 된다. 그 사람이 온화하면 웬일이래, 기분이 좋아 보이네.라는 평가가, 그 사람이 까칠하게 굴면 오늘도 이상하다는 평가가 뒤따라온다. 내 이야기가 남들에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 않을까-라고 나를 검열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싫은 그 사람은, 역설적으로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을 묶어주는 끈이 된다. 직접적으로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이상한 그 사람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게 퍽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미친놈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래서 몇 번째 그 사람이 되려나. 딱히 나쁜 이 없는 학교 안에서,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의 일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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