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꼭 맞는 거리를 찾아서
테니스를 배우면서 참 잘 안 되는 게 ’ 거리를 잡는 ‘ 것이다. 공이 날아오는 위치를 잡고 라켓을 휘둘러야 하는데, 나에겐 공이 바운드되고 올라오는 위치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이다. 코치님이 던져주시면 그나마 대충 예상이라도 되는데, 나와 비슷한 혼란을 겪고 계시는 분이 공을 날려주시면 정말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가 된다. 테니스가 아니라 공 빨리 주워오기 게임으로 변하는 그 순간.
너무 붙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좋은 위치를 찾아야 하는 건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남들과의 관계에서 편안하게 여기는 위치는 조금 멀게 설정되어있지 않나 싶다. 누군가는 바싹 붙어 숨소리도 들리는 위치를 찾는다면, 나는 멀찍이 서서 배에 힘을 주고 잘 지내시죠? 하고 헤어지는 위치를 좋아한다. 다른 이들에게 평가받기도 어렵고, 내가 나를 드러내기도 어려운 그런 위치를 말이다.
이건 스몰 토크 이야기랑 연결이 된다. 좀 멀찍이 서서 사람을 바라보니 그에 맞는 주제들을 찾는 것이다. 누군가와 가까울수록 상대가, 혹은 내가 불편할 일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걸 수용하고 편안해지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시간을 가져본 게 언제였던가. 나를 중심으로 한 원에서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닐까.
어릴 때는 그런 게 있었다. 절친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내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는 침대의 인형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20대에도 내 많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사람의 마음의 크기가 모두 같다면, 나는 아마 그중 9할은 그 친구 한 명에게 내 마음을 모두 쏟았으리라.
그런데 마음을 다 쏟은 친구에게 내 존재가 점점 작아진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생겼다. 처음엔 그 순간을 외면했다. 내가 더 잘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친구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친구에게 화를 내지 못하고 불만이 생기면 마음속 그 친구의 방에 하나씩 쌓아둔다. 그리고 그 방이 가득 차버리면, 나는 그 방을 버려 버린다. 칼처럼 잘려나간 마음과 함께 그 친구와의 관계를 끊는다. 그 친구는 영문을 모른 채 나와 소통하려 하지만, 나는 이미 끝나버려 더 이상 줄 마음이 없었다.
거리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한 건 20대 후반, 학교에서 만난 언니들과 친해지고 난 뒤였다. 굉장히 우연하게 비슷한 나이 또래가 동학년이 되었는데, 우리의 관계가 꼭 그랬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느낌. 여행을 함께 갈 만큼 가까울 수도 있지만, 2달 동안 연락이 없어도 갑작스러운 톡에 반가울 수 있는 사람들. 지금 내가 만들어 놓은 거리는 그때보다 훨씬 멀찍해진 것 같긴 하지만. 그때가 나의 베스트 포지션이었던 것 같다.
테니스 레슨을 받으면 코치님의 말대로 라켓을 준비하고 휘두른다. 어느 순간 잘 맞는 것 같다. 그러다가 또 점점 처음과는 다르게 이상한 방향으로 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게 그렇다.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내 몸이 준비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맞는 순간은 찰나다.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다. 이 거리에도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