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일을 맞아
내 MBTI의 두 번째 알파벳은 N이다. 일을 하면서 많이 죽기는 했지만 나는 어디에서나 갑작스레 상상을 하고, 혼자 역할극도 할 수 있는 멋진 N 인간이다. 잠에 들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멍 때리는 시간이 없다.
어제는 자려는데 나에게 가족이란 어떻게 구분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1차 가족은 남편과 나, 호수. 2차 가족은 우리 엄마 아빠와 동생. 3차 가족은 남편의 가족들 포함. 이런 집합 관계를 한 번 그려 보았다. 1차와 2차의 교집합은 오로지 나 하나다. 남편을 우리 엄마 아빠가 상당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 모두를 하나로 묶지는 못하겠다.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념일은 나의 생일이다. 그리고 남편의 생일, 우리의 결혼기념일. 이건 우리 부부가 챙기는 기념일들이다. 결혼 전에는 서로 선물을 사주느라 항상 고민하고는 했지만, 이제 대놓고 원하는 걸 말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비싼 걸 생각지도 않는다. 어차피 그 돈이 내 돈이니 내 돈으로 내 선물을 사는 기분이라 그렇게 신나지는 않는다.
내가 요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생일의 식사이다. 몇 년 전부터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서 남편과 가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옛날에는 가격이 부담스러웠는데 이제 돈도 예전보다는 좀 더 버니까. 그리고 내가 사는 부산에서는 수도권에 살 때보다 핫플까지의 거리가 더 가깝다. 예전에 위에서 살 때는 한 번 나가려면 1시간 내외를 잡고 움직였어야 했는데, 지금은 택시 타고 20분 정도면 광안리에 닿는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가고 싶어서 태그 해둔 레스토랑들이 여기에 잔뜩 모여있다. 정말 좋은 환경이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맥주에서 와인으로 자주 먹는 주종이 바뀌었다. 웃기는 건 나나 남편이나 술은 잘 먹지도 못하는 술찔이들이라는 것이다. 남편과 해외여행을 가면 절대 칵테일은 먹지 않는다. 그 한 잔에 남편은 곧잘 먹은 걸 게워내고는 해서, 잘해봤자 맥주 한 잔 정도를 시킨다.
와인을 반드시 시켜야 하는 레스토랑이 늘어나는 건 좀 부담이다. 가격이 부담이라기보다는, 와인 한 병을 둘이 절대 다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켜 놓은 와인을 들고 가자니 조금 예의도 아닌 듯싶다. -가져가도 되면 아마 한 달은 족히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콜키지를 해서 와인을 들고 간다. 나보다도 술을 잘 못 마시는 남편은 또 와인에 흥미가 생겨서, 맛있는 와인을 잘 찾아서 픽업을 한다. 레스토랑에 가서 다 마시지 못해도 큰 부담은 없다. 그대로 들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한 5모금만 마셔도 둘 다 얼굴이 벌게진다. 경제적이다.
남편과 같이 벌게져서 광안리 바닷가를 조금 걷다 보면, 이렇게 매년 맛있는 걸 먹고 남편과 손을 잡고 걷는 게 진짜 선물은 아닐까 싶다. 나이의 먹음은 사람이 조금만 많아지면 당황스러워지는 내 마음이 말해주기는 하지만. 올해 생일도 그렇게, 행복하게 보냈다. 우리 둘이.